Home 박태식의 함께 사는 이야기 고통중의 부모님 – 방탕한 아들

[가족관계]고통중의 부모님 – 방탕한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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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관계]고통중의 부모님 – 방탕한 아들

박태식 신부(성공회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원장)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을 두었는데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제 몫으로 돌아올 재산을 달라고 청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재산을 갈라 두 아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며칠 뒤에 작은 아들은 자기 재산을 다 거두어가지고 먼 고장으로 떠나갔다. 거기서 재산을 마구 뿌리며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다가 돈이 떨어졌는데 마침 그 고장에 심한 흉년까지 들어서 그는 알거지가 되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그는 그 고장에 사는 어떤 사람의 집에 가서 더부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주인은 그를 농장으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그는 하도 배가 고파서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로라도 배를 채워보려고 했으나 그에게 먹을 것을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많아서 그 많은 일꾼들이 먹고도 남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게 되었구나! 어서 아버지께 돌아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저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으니 저를 품꾼으로라도 써주십시오 하고 사정해 보리라.’ 마침내 그는 거기를 떠나 자기 아버지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멀리서 본 아버지는 측은한 생각이 들어 달려가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아들은 ‘아버지, 저는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저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하인들을 불러 ‘어서 제일 좋은 옷을 꺼내어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겨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내다 잡아라. 먹고 즐기자! 죽었던 내 아들이 다시 살아왔다.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았다.’ 하고 말했다. 그래서 성대한 잔치가 벌어졌다. 밭에 나가 있던 큰아들이 돌아오다가 집 가까이에서 음악 소리와 춤추며 떠드는 소리를 듣고 하인 하나를 불러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하인이 ‘아우님이 돌아왔습니다. 그분이 무사히 돌아오셨다고 주인께서 살진 송아지를 잡게 하셨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큰아들은 화가 나서 집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서 달랬으나 그는 아버지에게 ‘아버지, 저는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위해서 종이나 다름없이 일을 하며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일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저에게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 주지 않으시더니 창녀들한테 빠져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날려버린 동생이 돌아오니까 그 아이를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까지 잡아주시다니요!’ 하고 투덜거렸다. 이 말을 듣고 아버지는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모두 네 것이 아니냐? 루가 15,11-31

흔히 이 이야기는 탕자의 비유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내용을 세세히 따져 보면 탕자가 아니라 아버지가 주인공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돌아온 탕자를 너그럽게 맞아들인 아버지의 비유’라고 해야 옳습니다. 혹은 비유라고 하기에는 내용이 복잡한 편이니까 ‘예화’라 부를 수도 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 1/3을 받았습니다. 유대 율법에 따르면 상속을 받을 때 큰 아들의 몫은 1이고 작은 아들은 1/2이었습니다. 둘째는 그 돈을 몇 년 안에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몸도 마음도 병들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돼지 치는 집에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돼지는 유대인들이 부정하다고 치는 동물 중에 처음이니 둘째는 거의 인생의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것입니다. 거의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둘째는 결국 아버지에게 돌아옵니다. 염치가 없으니 그저 종으로라도 써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신발을 신겨주고 반지를 끼워줍니다. 이스라엘에서 반지는 어떤 사람의 지위를 알려주는 표시였으니, 아버지가 가족 내의 아들자리를 회복시켜 준 셈입니다. 알토란같은 재산을 낭비하고 거지꼴로 돌아온 아들을 보면서도 싫은 내색 한번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큰아들을 위로하기까지 합니다. 참으로 너그러운 마음씨를 가진 어른입니다.

이 이야기가 재미있는 이유는 둘째 아들이 극적으로 변한 데 있습니다. 아들은 한 때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망나니였고 아버지의 사랑을 과신하는 철부지였습니다. 그러나 크게 뉘우칩니다. 그래서 차마 집으로 바로 못 오고 돼지 치는 일을 한 겁니다. 그런 이야기 구성을 통해 둘째의 변화된 모습이 잘 드러납니다. 아버지를 뵐 면목이 없었던 게지요.

예수님의 말씀을 처음 들었던 사람들은 아마 듣는 재미가 솔솔 났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비유의 주인공이 둘째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합니다. 비유의 주인공은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누가 봐도 알 수 있듯이,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보여주는 은유입니다. 하느님은 그와 같은 분입니다. 망나니에 철부지인 죄인도 너그럽게 받아주시는 분입니다. 끝 간 데 없는 사랑의 하느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