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박태식의 함께 사는 이야기 커가는 고통 – 두 번째 성전 방문

[가족관계]커가는 고통 – 두 번째 성전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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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관계]커가는 고통 – 두 번째 성전 방문

박태식 신부(성공회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원장)

해마다 과월절이 되면 예수의 부모는 명절을 지내러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는데 예수가 열두 살이 되던 해에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명절의 기간이 다 끝나 집으로 돌아올 때에 어린 예수는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의 부모는 아들이 일행 중에 끼여 있으려니 하고 하룻길을 갔다. 그제야 생각이 나서 친척들과 친지들 가운데서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으므로 줄곧 찾아 헤매면서 예루살렘까지 되돌아갔다. 사흘 만에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거기서 예수는 학자들과 한자리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듣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의 지능과 대답하는 품에 경탄하고 있었다. 그의 부모는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머니는 예수를 보고 “얘야, 왜 이렇게 우리를 애태우느냐? 너를 찾느라고 아버지와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는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부모는 아들이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하였다. 예수는 부모를 따라 나자렛으로 돌아와 부모에게 순종하며 살았다. 그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예수는 몸과 지혜가 날로 자라면서 하느님과 사람의 총애를 더욱 많이 받게 되었다. 루가 2,41-52

복음서를 통틀어 예수님의 소년기 이야기가 나오는 곳은 여기 루가복음서 한 군데 뿐입니다. 유대인 남자의 성년 나이는 13세입니다. 우리나라는 성년이 20세인데 비하면 무척 어린 편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평균연령(40-45세)을 염두에 두면 그럴 법도 합니다. 유대인 남자에게 성인이 되면 일년에 세 차례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대표적인 명절이 과월절, 오순절, 초막절인데, 일년에 세 차례는 너무 번거로워 그저 과월절 한번 방문으로 족했습니다. 그리고 국외에 흩어져 살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는 일생에 한번만 예루살렘 순례하도록 의무를 지워 놓았습니다. 고향을 그리워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큰 소망은 고향땅에 묻히는 것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예수님도 성전을 방문했습니다. 원래 13세부터 순례를 하게 되어 있는데 소년 예수님의 나이는 12세였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경건한 가정에서는 성인 나이보다 한살을 앞당겨 순례를 시작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성전순례는 개인적으로 이루어지기보다 큰 가족 단위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모님도 어딘가 ‘가족 중에 예수님이 끼어있겠지.’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결코 무심해서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유대교의 중심지이자 학문의 전당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당대의 유명한 율사들이 성전을 중심으로 활동했고 그만큼 많은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루 종일 성전에 앉아서 율법을 공부했습니다. 율사들의 공부방법은 일방적인 주입식이 아니라 서로 묻고 답하는 대화 식 교육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흔히 산파술이라고 합니다.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제자들 스스로 답을 찾아가게 만드는, 제자들의 통찰력을 키워주는 교육방법입니다.

소년 예수님의 상황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예수님의 총명함이 돋보입니다. 당대 최고 율사들의 어려운 질문들에 예수님이 척척 답을 했고 그 답을 들은 율사들의 말문이 막힐 정도였습니다. 후에 예수님의 율법 해석을 살펴보면(마태 5,21-48) 실제로 탁월한 면이 돋보입니다. 율법 규정들을 과격하게 폐지하시는데 당시의 정서로 보면 대단한 배짱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우리 식으로 좀더 친숙하게 말하면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