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말씀과 신앙나눔 강릉교회 부활 3주일 설교입니다.

강릉교회 부활 3주일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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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간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보냈습니다. 시내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또 함께 희생자들을 기억하며 교우님들과 함께 기도를 바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그러면서 참 많은 것들을 느꼈습니다. 작은 행동일 수 있더라도 아픔이 있는 곳에, 슬픔을 나누는 자리에 교회가 세상을 섬기는 의미로 함께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세월호 사건을 기억하면서 제 마음속에 떠 오른 질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저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었을 것 같습니다. 

 

  

하느님은 어디에 계시냐고

하느님은 무엇을 하고 계시냐고

하느님은 책임지라고…

사실 하느님께 직접 묻고 싶은 질문들일 것입니다. 네 맞습니다. 꼭 물어야할 질문입니다. 특히 스스로 신앙인이라고 여기는 이들은 반드시 질문해야 합니다. 불경스럽고 두려운 일이지만 하느님께 철저하게 묻고 따져야 할 것입니다. 가슴 속에 슬픔과 분노가 있다면 굳이 그것을 억누르거나 숨길 필요도 없습니다. 야뽁강에서 밤새 씨름했던 야곱처럼 하느님을 붙잡고 늘어져야 합니다. 자신의 억울함을 해소하기위해 매일 재판장을 찾아간 과부처럼 우리도 하느님 앞에 계속 나아가 이 문제를 풀어야 할 것입니다. 진솔되고 끈질기게…

  

그런데 하느님은 대답하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의 침묵이 더욱 참기 힘듭니다. 그러나 이 질문의 답변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질문이 던져집니다.

  

너는 어디에 있느냐고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우리에게 던져진 이 물음 앞에 솔직하게 답변하지 않는 한 하느님은 계속 침묵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이 질문 앞에 답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의 대답을 듣게 될 것입니다. 나는 이미 그곳에 함께 하고 있다는 그 분의 대답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하고 계시다는 답변을 아마 우리는 듣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좀 더 솔직한 대답을 위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참담한 심정 속에서 내 놓는 우리의 답변은 결코 말로만 그칠 수 없습니다. 이미 함께 하시며 우리를 그 자리에 부르시는 하느님의 부름 앞에 응답하며 나아가야만 합니다.

  

 

오늘 복음 성경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두 사람의 제자는 예수님에게 희망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너무도 허무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들의 희망은 철저하게 부서졌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부활의 소식이 전해졌지만 그들의 실망은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든 희망을 잃고 실망과 슬픔 그리고 분노를 가슴에 담고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나 실망과 슬픔 그리고 분노에 머물러 있는 그들의 눈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을 듣고 그 분이 빵을 떼어 주실 때 비로소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그분의 말씀을 들었을 때, 자신들의 실망과 슬픔 그리고 분노가 치유되고 다시 희망을 가지게 되었음을… 부활의 사건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일을 통해 우리는 치유되고 다시금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이 부활의 사건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너무도 필요한 일 아닙니까?

  

우리가 매 주일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바로 이 부활의 사건과 매우 비슷합니다. 헨리 나우웬신부님은 이 성경의 이야기를 가지고 성찬식의 신비를 풀어 책을 썼습니다. 우리가 그 분의 말씀을 들으며, 그분과 함께 빵을 떼고 나누는 이 예배를 통해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는 일이 바로 우리 성찬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살아계신 예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 분을 바로 지금 이 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그러했듯이 우리의 삶을 치유하고 변화시키고 용기와 힘을 줍니다. 삶의 열정을 다시금 회복시킵니다.

  

 

부활을 경험한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고, 그분의 죽음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임을 선포했을 때, 그 죽음으로 하느님의 구원이 이루어졌음을 선포했을 때,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그들을 불러 말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는 절대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명령하였다.”

사도행전 4:18

 

그러나 그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그들의 말을 따를 수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생명과 삶을 위협하는 그 말 앞에 당당하게 선포합니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 사도행전 4:20

설교의 서두에 말씀 드린 것처럼 우리는 하느님 앞에 따지고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과정에서 속을 진솔하게 드러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질문과 대답의 씨름을 통해 듣게 되는 주님의 말씀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세상의 권력은 우리에게 침묵하기를 명령하겠지만 우리는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우리의 희망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도저히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현실의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의 희망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과의 깊은 관계와 교제 속에서 우리의 삶을 생명과 정의 그리고 평화로 채워나가게 될 때, 우리의 삶은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변화와 새로운 삶의 모습이 바로 하느님의 일이 되며, 세상을 비추고 치유하고 생명을 얻게 하는 놀라운 기적의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삶의 한 가운데서 경험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가려진 눈이 열려 이미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신 그 분을 알아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분의 부름에 따라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그 분의 뒤를 따라 나갑시다. 세상에 복음을 들고 힘차게 나아갑시다.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예수의 가르침과 삶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 진정한 진리를 외치는 일, 이것이 바로 우리의 희망이고 세상의 희망이 됩니다. 그 희망은 그 어떤 이도, 그 어떤 것도 막거나 깨뜨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증인입니다. 그 분이 우리에게 주신 생명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고 안전한 길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좁은 길이며 험한 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길이 바로 생명의 길이며, 믿음의 길이고 참 삶의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려움을 떨쳐 내고 기필코 가야하는 길입니다.

  

 

오늘 모든 희망을 잃고 절망 속에서 슬퍼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참된 생명의 길은 바로 희망을 잃었던 그 자리로 가서 나의 모든 것을 던지는 것임을 다시금 기억하며, 자신을 희생하여 우리에게 생명과 구원을 주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그 분의 길을 함께 갑시다.

  

 

주중에 함께 읽었던 복음 성경의 말씀으로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 1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