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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교회 사순 3주일, 김문영(키프리안)신부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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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인생이 바뀌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았던 그는 눈이 보이지 않는 괴로움과 더불어 주위 사람들의 편견과 판단으로 더욱 고통을 당했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불편뿐 아니라 장애로 더해진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그는 매일을 고통 속에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정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눈을 치유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사건을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은 참으로 이상합니다. 함께 기뻐해주지 않고 그 일이 옳은가를 따집니다. 어떤 이들은 안식일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잘못된 일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런 일을 행하신 예수님의 정체에만 관심을 쏟습니다. 그의 치유와 회복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참으로 끔찍합니다. 마지막 부분의 예수님 말씀처럼 그들의 시선은 참으로 엉뚱한 곳에 머물며, 정작 보아야 할 것은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많은 것들을 시사합니다. 우리의 시선은 어떻습니까? 제대로 보고 있습니까? 신앙은 제대로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저도 한 1년 정도 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통해 장애인들과 자주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처음 장애인분들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라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장애인분들과 지내면서 알게 된 것은 그들 역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으로 그저 조그마한 불편을 가지고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불편함은 우리의 관심과 배려로 얼마든지 극복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평범하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이 가장 견딜 수 없다고 합니다. 경멸하거나 무시하는 태도도 불편하지만 자신들을 동정하며 지나치게 친절한 태도도 매우 불편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시선 속에서 그들은 어떠한 행동을 해도 사람들의 이상한 시선을 받게 됩니다. 사람들과 만날 때마다 사람들의 행동으로 인해 상처를 받습니다. 그들이 겪는 고통은 그들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겪는 고통은 우리의 연약함과 어둠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도 우리의 죄와 어둠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장애인은 몇 명일까요? 통계를 찾아보니 2012년 약 250만명의 장애인이 있습니다. 강원도에 10만명, 강릉에 1만 3천명이 있습니다. 전국으로 볼 때 약 5%, 강릉은 6.5%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주변에 장애인이 얼마나 됩니까? 이 통계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을 우리가 철저하게 격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단지 장애인들에게 국한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가 약자들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장애인들은 가난과 소외 그리고 편견 속에서 지금도 매우 힘든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초능력을 발휘해 그들을 온전하게 할 수 없다고 흔히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복음 성경의 이야기에서처럼 기적의 사건에 초점을 맞추어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 일을 한 사람에 대한 경탄을 보내는 일을 하게 되기 쉽습니다. 정작 보아야 할 것은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만 배려하고 노력한다면 그들을 물리적으로 온전하게 만들 수는 없어도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 되게 할 수는 있습니다. 이는 대단한 일이면서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들과 진솔한 시간을 보낼 용기만 있다면, 그들의 말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일 마음만 있다면, 그들을 위해 아주 작은 불편 혹은 배려를 할 의지만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그들을 격리하거나 소외시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니 그들과 더불어 사는 삶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 겪는 고통은 바로 우리 모두의 악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그들의 고통은 우리의 악함을 깨우쳐 주는 것이며, 우리의 구원의 기회가 됩니다. 바꾸어 말하면 지금 고통받는 이들은 바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우리의 변화를 위해, 우리의 치유를 위해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만나고 그들과 더불어 사는 것을 통해 진정한 삶의 의미와 회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헨리 나우웬 신부는 페루의 가난한 사람들과, 또한 라르쉬 공동체에서 정신장애를 지닌 이들과 더불어 살면서 통해 역복음화라는 단어를 깊이 깨달았습니다.

  

“역(거꾸로, 逆)”이라는 단어는 하느님의 성령의 징표이다. 가난한 이들은 부유한 이들에게, 흑인들은 백인들에게, 장애 있는 사람들은 소위 “정상인들”에게, 동성애자 사람들은 이성애 사람들에게, 죽어가는 사람들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사명이 있다. 세계가 희생자로 만든 사람들을 하느님께서 선택하여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게 한다.

– 헨리 나우웬

  

성서의 중심 메시지 중 하나는 바로 이러한 역전현상입니다. 하느님은 어리석은 자를 통해 지혜롭다는 이들을 깨우치시고, 가난한 이를 통해 부자를, 억압과 착취를 당하는 이를 통해 지배자들을 깨우치십니다. 하느님은 늘 약자들의 편에 서 계시며, 그들의 회복을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 주십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 사회의 가장 연약한 이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생각하게 합니다. 장애인 뿐 아니라, 가난한 이들, 아이들, 여성, 노인, 외국인…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우리의 삶을 돌아보기 원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오늘 복음 성경의 이야기에서 무엇을 발견합니까?

      

“1800년 동안 교회는 사회적 고난을 보면서도 항상 영, 내면새활, 하늘을 가리켰다. 교회는 설교하고 전도하고 기도했지만 도와준적은 없다. 실로 교회는 모든 시대에 사회적 고난을 보면서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선한 행위로서 도움을 권했다. 그러나 도움은 그 실천행위 그 자체라는 사실을 교회는 감히 말하지 못했다.”

– 칼 바르트

  

우리 모두 이 사순절을 통해 우리의 어두워진 눈이 밝아지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애써 가리고 외면하려 했던 우리의 시선을 다시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제대로 보는 것이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끝까지 우리의 시선을 돌린다면 결코 우리는 이미 우리 곁에 계시는 하느님을 깊이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순절, 이 쇄신의 시기를 통해 우리의 가리워진 눈이 밝아지며 바르게 보는 것을 통해 바른 삶을 살아가고, 이를 통해 더불어 살며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너희가 차라리 눈먼 사람이라면 오히려 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지금 눈이 잘 보인다고 하니 너희의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