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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교회 연중 7주일 설교(김문영 키프리안 신부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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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설교 준비를 하면서 참 어려웠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

이론이 아닌 실제로 이 말씀을 실천하려고 하니 머리로는 이해가 되어도 적용한다는 것이 참 힘들었습니다. 어떻게 하느님처럼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저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전해야 하니 참으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제가 그런 상태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말씀의 뜻과 의미를 묵상하면서 희망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을 통해 내 삶이 조금 더 완전해지기를.. 주님을 조금 더 닮아 가기를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말씀은 참 공평한 법입니다. 자기가 받은 피해 이상을 앙갚음하지 않는 것… 강자든 약자이든 자신이 한대로 책임을 지는 것 이것은 강자의 힘을 남용하는 것을 막고 약자도 자신을 지킬 수 있게 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뛰어 넘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른뺨을 치는 자에게 왼뺨을 내어주고, 오리를 가자고 하는 이에게 십리를 가주고, 속옷을 달라는 이에게 겉옷까지 주라고 하십니다. 어찌보면 참으로 억울한 일입니다. 특히나 약자의 입장에서 너무도 억울하고 살 길마저 닫아버리는 것 같은 말입니다. 게다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을 실천하려니 부족한 저로서는 도저히 실천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오늘 완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다른 말로 표현해 본다면, 완전한 사랑의 삶을 살라는 의미입니다. 너를 버리고, 너를 온전히 내어주는 사랑의 삶이야말로 하느님을 닮아가는 삶이며, 자신을 버리지 않고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경지입니다. 나를 온전히 내어주는 일, 곧 십자가를 지시고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신 예수님처럼 살아가라는 의미와도 같은 의미입니다.

 

우리는 모두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우리를 사랑에서 멀어지게 만듭니다. 내가 가진 것을 다 내어주면 결국 아무거도 남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 한 번 얕잡아 보이기 시작하면 끊임없이 내어주어야 하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과연 생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우리를 하느님의 사랑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생존의 욕구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합니다. 더 많이 가져라. 더 강한 힘이 필요하다. 내어주는 것은 너가 더 많이 가진 후에 너가 필요한 것을 뺀 나머지만을 나눌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내가 살지 못하면 그 어떤 것도 소용없다고 계속해서 나를 짓누릅니다. 그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면 사랑의 삶은 결국 살아낼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를 말하고 천사의 말까지 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과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온갖 신비를 환히 꿰뚫어 보고 모든 지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산을 옮길 만한 완전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비록 모든 재산을 남에게 나누어준다 하더라도 또 내가 남을 위하여 불 속에 뛰어든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모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고전 13:1-3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결국 나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고,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아닌 하느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그 사랑을 가장 우선으로 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삶을 살 때 우리는 결코 높은 자리를 차지하거나 강한 힘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끊임없니 낮아지고 핍박을 받고 때로는 고통 속에서 무능력을 경험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사도 바울은 이런 삶을 살면서 감사와 기쁨이 충만함을 고백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약해지는 것을 만족하게 여기며, 모욕과 빈곤과 박해와 곤궁을 달게 받습니다. 그것은 내가 약해졌을 때 오히려 나는 강하기 때문입니다. 고후 12:10

 

하느님의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은 이러한 나의 약함을 통해 하느님을 드러내는 삶입니다. 사도 바울의 삶은 정말 참혹하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들보다 수고를 더 많이 했고 감옥에도 더 많이 갇혔고 매는 수도 없이 맞았고 죽을 뻔한 일도 여러 번 있습니다. 유다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를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고 몽둥이로 맞은 것이 세 번, 돌에 맞아 죽을 뻔한 것이 한 번,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고 밤낮 하루를 꼬박 바다에서 표류한 일도 있습니다. 자주 여행을 하면서 강물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도시의 위험, 광야의 위험, 바다의 위험, 가짜 교우의 위험 등 온갖 위험을 다 겪었습니다. 그리고 노동과 고역에 시달렸고 수없는 밤을 뜬눈으로 새웠고 주리고 목말랐으며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며 헐벗은 일도 있었습니다. 이런 일들을 제쳐놓고라도 나는 매일같이 여러 교회들에 대한 걱정에 짓눌려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고후 12:23-28

 

기독교의 신앙은 결국 나를 버리는 일입니다. 버리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나를 버리는 일이며 이것이 바로 십자가를 통해 드러났고, 사도 바울을 비롯한 신앙인들이 살았던 삶입니다. 놀랍게도 그들은 두려움을 이겨내고 사랑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삶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을 경험했고, 결코 버려지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모진 고난과 핍박 속에서 십자가에 달려 참혹하게 죽었지만, 부활의 영광을 경험하였습니다. 사도들은 대부분 참혹하게 죽어갔지만 그들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났습니다.

 

우리 앞에 있는 고통과 고난 그리고 버리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결코 우리는 두려움을 이겨낼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의심과 회의 그리고 번뇌 속에서 끊임없이 갈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하느님을 바라보고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그 사랑에 모든 초점을 맞출 때 두려움을 이겨낼 용기를 얻게 되고, 오늘 저를 부담스럽게한 하느님처럼 완전하게 되는 길을 시작하게 됩니다. 신앙은 끊임없이 하느님을 바라보는 일이며, 하느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일이고, 자신을 버려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일입니다.

 

누구든지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인정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계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알고 또 믿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있으며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살게 되었으니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성된 것이 분명합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을 가지고 심판 날을 맞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두려움은 징벌을 생각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을 품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요한1서 4:15-18

 

사랑은 우리 앞에 있는 두려움을 이기게 합니다. 자신을 던지고, 낮추고 비우는 일은 사랑을 경험할 때에만 가능한 일입니다. 첫 걸음을 내딛기도 전에 골인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너무도 빨리 과정을 넘어 결과로 향합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결말이 아닌 우리의 첫걸음,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그 곳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시선이 다시 주님께로 향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충만하신 그 사랑을 경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통해 우리 안에 가득한 두려움을 이겨내는 힘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인간은 어떤 존재입니까? 약하지만 강하고, 아무것도 아니지만 가장 중요하며, 악하면서도 선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의 형상을 발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그저 공평함을 통한 정의를 실현하려고 할 때, 그 정의는 결코 완전할 수 없습니다. 불공평함을 감수하고 그것을 실현하게 될 때, 하느님의 정의가 우리 안에 시작될 것입니다. 내가 먼저 내어놓고, 내가 먼저 섬기고, 내가 먼저 온전히 사랑할 때 비로소 희망이 생겨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 아니 나 자신부터 변화되는 일은 결국 하느님의 사랑에서부터 시작할 때 가능합니다. 그 어떤 힘도, 그 어떤 능력도, 그 어떤 권세도 완전함에 이를 수 없습니다. 오직 사랑이 있을 때, 그 때에만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오늘 좀 어려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설교 중에도 나누었듯이 그 일의 과정과 결과, 그리고 내 삶에 찾아올 고통과 핍박을 생각할 때 우리는 두려움에 빠지게 되고 그 두려움은 우리를 하느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만듭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의지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그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우리 강릉교회가 오직 사랑으로 충만한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 일은 불가능해 보이지만 가능하며, 도저히 걸을 수 없는 좁은 길이지만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우리의 약함과 낮아짐을 통해 놀라운 일들을 이루실 것이며, 이 길을 통해 우리는 결코 피할 수 없는,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는 죽음까지도 이겨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