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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교회 9월 22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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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를 읽다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을 만나게 됩니다. 특히 오늘 복음서에서 읽은 구절은 해석하기도 우리 삶에 그 말씀을 적용하기도 참 어렵습니다. 처음 이 구절을 읽었을 때 느꼈던 당혹감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게 무슨 말씀인가? 정직과 의로움이 신앙에서 얼마나 중요한데…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저는 일주일동안 말씀을 묵상하고 주로 토요일에 설교를 준비하는데, 지난 주일날 이 본문을 읽자마자… 걱정부터 앞섰습니다. 설교 준비를 어떻게 해야하나….. ^^

성서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찾아오시고 우리를 변화시키고 변화를 넘어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게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서의 능력을 믿고, 성서를 꾸준히 읽고 묵상하는 일이 우리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많은 신앙인들이 너무 쉽게 말씀을 읽으려고 합니다. 아무런 수고와 노력도 없이, 남의 것을 그냥 취하려고 합니다. 스스로 그 말씀을 붙들고 씨름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마치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듯이 책, 텔레비전, 인터넷 등을 뒤적여 자기 입맛에 맞는 해석을 찾고는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 앞에서 내가 변화되어야 하는 신앙이 사라지고 내 뜻대로 하느님을 변화시키는 신앙이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시류에 편승해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고, 진리를 선포하기 보다는 웃음과 축복을 남발하는 말씀이 차고 넘칩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는 변화의 장소가 아닌 스스로의 생각을 결코 변화시키지 않는 고집스러운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기독교 외부에서 기독교인들을 바라보는 시각인 “문자주의적, 반지성적, 자기의로움에 사로잡혀있고, 남을 판단하기 좋아하고 독선적이다.”는 문제는 이러한 말씀의 잘못된 읽기와 해석 그리고 적용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읽는다는 것은 야뽁강 나루에서 밤을 세워 씨름했던 야곱처럼 나의 모든 것을 걸고 붙잡는 과정입니다. 때로는 그 과정에서 나의 죄와 허울, 약점, 어두움, 참담함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너무 힘들고 아파서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나의 가치관, 나의 상식, 나의 신념이 무너지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 수 없는 혼란 속으로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거꾸러지고 혼란에 빠져 있을 그 때 비로소 하느님의 참된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렇기에 말씀을 읽을 때 우리는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각오를 하고 뛰어든 성서 읽기는 우리를 어둠 속에 머물러 있게 하지 않습니다. 넘어진 그 자리에 그대로 우리를 두지 않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이 드러나 수치스럽고 어디로 도망치고 싶은 그 상태로 우리를 두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를 비추고 치유하고 회복시키며 새로운 삶으로 이끌어 갑니다. 어두워진 눈이 뜨여 새롭게 보게 되고, 닫혀진 귀가 열려 생명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하느님과 모든 것을 내어 놓은 씨름을 한 후에야 하느님의 말씀은 그 이전에 편견과 대결, 증오, 분열, 욕심이 있던 곳에 사랑, 일치, 평화, 이해, 자유를 가져다주는 그 변혁시키는 능력으로써 자신을 드러내고 우리는 그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시고 두려움을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의지하여 진리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믿음이며 이 믿음이 우리를 하느님과의 깊은 사랑의 관계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 헛된 두려움과 걱정을 내려놓고 다시 하느님 앞에 서시기를 바랍니다. 십자가의 수난만을 바라보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누구든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예수님처럼 죽음에 머물지 않으며 참된 부활도 경험하게 됩니다. 어둠과 수난을 넘어서는 참 생명과 축복을 믿음으로 바라보시고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하느님 앞에 나의 모든 것을 드러내는 것이며, 그로 인해 헛되고 거짓된 내가 죽고 하느님의 영으로 인해 새로운 내가 태어나는 것입니다. 죽음이 아닌 부활과 생명이 바로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을 향해 어둠을 향해 빛을 의지하여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 역시 우리의 가치관으로 본다면 참으로 이상한 이야기일 뿐이지만 그 속에 귀한 보물이 있습니다. 말씀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우리는 청지기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것을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가진 모든 것,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의 주인은 “내”가 아닌 하느님이라는 것입니다. 출발점이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면 우리 인생에서 너무도 많은 것이 변화됩니다.

우리가 예배 가운데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기에 우리가 받은 것을 하느님께 바칩니다.”라고 늘 고백하듯 이 우리 삶의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맡겨 주신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사용하는 일은 참된 재물을 얻는 일, 즉 구원의 시작입니다.

어느 부유한 유다 지도자가 예수님 앞에 나와 “선하신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계명을 어려서부터 잘 지켜왔다는 그에게 “너에게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더 많은 것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더 큰 것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거짓된 “나”를 드러내고 높이려는 헛된 일에서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 그 자체가 바로 가장 중요한 보물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으로 그저 하느님의 영광과 사랑을 드러내는 일이면 족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축복이 있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참된 생명의 길로 우리를 초대하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강릉교회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해 나가는 거룩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삶을 선택하는 것은 시작일 뿐이며 늘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