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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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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의 핵심 메시지는 새로 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3절. “정말 잘 들어두어라.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5절, “정말 잘 들어두어라.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 개역개정으로는 “거듭나야 한다”고 합니다. 제 입에 익숙한 표현이 거듭남이어서 “거듭남”이라는 단어로 사용하겠습니다.

우리가 보통 “저 사람 거듭났어.”라고 말할 때 어떤 전제가 있나요?그 사람의 삶이 전에는 뭔가 문제가 많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거듭나야한다는 말을 누구에게 하셨지요? 니고데모라는 사람입니다. 니고데모가 인격적으로 결함이 있거나 뭔가 그 인생이 망가진 실패자여서 이 말씀을 하셨나요?

1절, “바리사이파 사람들 가운데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다인들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는데”
– 니고데모는 바리사이파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의 기준으로 흠이 없는 완전한 삶을 살아온 사람으로 더할 나위 없이 도덕적인 사람입니다. 또 나이가 지긋한 유다인들의 지도자입니다. 권력과 명예를 얻은 성공적인 인생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나자렛 촌놈 젊은 예수에게 와서는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는 학교를 다닌 적도 없고 지위도 없는 무명의 사람인데 그런 예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인격적으로 겸손한 사람이다. 이렇고 도덕적이고 종교적이며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왔고 겸손하기까지 한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당신은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거듭난다는 말의 헬라어 (아노덴) 의 뜻은 “(1) 처음부터, 완전히, 철저히, (2) 다시, 두 번째, (3) 위에서부터, 하느님께로부터”입니다.
– 즉, 하느님 나라를 살기 위해서는 위로부터 주어지는 생명을 힘입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새롭게 시작하는 삶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한 1:12-13, 그러나 그분을 맞아들이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그들은 혈육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욕망으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것이다.
– 이렇게 거듭남이란 하느님의 생명을 지닌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종교적으로 열심을 다해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해 왔던 사람 니고데모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 뭔가 망가진 인생 – 창녀나 범죄자나 알콜 중독자나 그런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 아니야?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완전히 다시 시작해야 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예외없이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거듭남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이 말하는 죄를 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란 I-Centeredness, 자기중심의 삶을 말합니다. 내 욕구 내 행복을 중심으로 삼는 태도입니다. 내가 만족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면 친구도 사귀고 결혼도 하고 온갖 일을 다 하는 것이다. 심지어 내가 가진 것을 가난한 자에게 나눠줄 수도 있습니다.

자기 중심으로 사는 인생은 두 가지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나쁘게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무시하면서 자기 육체의 욕망에 따라 살아갑니다. 남을 짖밟고 거짓말하고 속이고 죽이고 해를 입히며 삽니다. 자기 중심으로 사는 두 번째 모습은 선하게 착하게 사는 것입니다. 규칙이란 규칙은 다 지켜서 하느님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나를 우러르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날 축복하고 존경하게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자기 중심의 삶의 모습이 모두 세상을 끔찍하게 만든다는 것 잘 압니다. 나쁘게 살아가는 삶은 말할 것도 없다. 착하게 사는 삶도 그 마음에는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고 타인을 무시하는 교만함이 가득합니다. 이것이 세상을 끔찍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는 자기 중심의 죄는 영혼을 파괴하고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이사야 59:2, 너희가 악해서 너희와 하느님 사이가 갈라진 것이다. 너희가 잘못해서 하느님의 얼굴을 가려 너희 청을 들으실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도 적지 않은 기독교인들이 신앙 생활을 노력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난 더 노력할거야, 지금까지 잘 해왔지만 실패도 했어, 그러니까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새로운 단계로 올라서도록 노력해야지… 이렇게 생각하고 결단합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좀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노력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노력해도 변하지 않는 자기의 노력을 포기하고 무언가를 이루려는 자존감을 완전하게 내려놓은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거룩한 절망이 희망의 시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이런 자아와 자기중심의 삶과 그로 인해 이 세상을 망치는 모든 것들의 죽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나서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구하는 것입니다. 완전하게 새로운 기반을 찾는 것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정체성을 갖는 것입니다. 이 일은 바로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내 안에 이루어지는 놀라운 구원의 신비입니다. 힘써 노력하던 자기를 내려놓고 예수님을 믿으면 내 삶에 하느님이 새로운 기반이 되고 나는 하느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20세기 기독교의 지성으로 유명한 C.S.루이스라는 분이 있습니다. 루이스는 무신론자였고 독신으로 학문에만 전념하는 옥스퍼드의 교수였습니다. 그런 그가 어느날 발견한 자기의 모습이 겉으로는 그럴듯하지만, 속으로는 욕심과 음란함과 어둠이 가득한 이중적인 자기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규칙이란 규칙은 다 지켜서 하느님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나를 우러르게 하고 날 축복하고 존경하게 만들겠다는 두 번째 유형의 죄인이었던 것입니다. 하여 어느 날 그는 십자가 앞에서 그런 자기를 내려놓고 예수님을 그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는 기도를 했습니다. 자기에 대해서 죽은 것입니다. 그 이후로 그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하느님을 자기 삶의 기반으로 하는 전혀 새로운 인생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거듭남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렇게 거듭나는 구원의 은총이 우리 인생 가운데 가능하게 된 것일까요?

윤재은 노아 위원의 아내 최은영자매가 슬하를 출산할 때의 일이 일이 생각납니다. 슬하를 출산하면서 은영 자매는 나면서 출혈이 멈추지 않아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습니다. 엄마의 피흘림과 고통이 있기에 새생명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 하느님을 자기 삶의 기반으로 살아가는 구원의 은총은 절대적으로 인간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피흘림과 고난으로 인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I-Centeredness 죄의 결과는 죽음입니다. 죽음의 운명이 분명하여 슬퍼하는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우리의 죄을 대신하여 죽게 하셨습니다. 자기 아들의 피흘림과 고통을 통해 하느님과 사람 사이를 가로 막고 있던 죄의 값을 치르시며 그 죄를 치워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하느님의 자녀로 받아주시고 그에게 성령을 주시어 새생명으로 살게 하십니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이 다 예수님을 믿고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 하느님의 나라에서 살기를 원하신다. 오늘 복음 3장 16-17절에 그 마음이 잘 나와 있습니다.
3:16-17,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주셨다. 하느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단죄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시켜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은영 자매가 또 다시 둘째를 임신하고 출산했습니다. 죽음의 두려움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출산의 고통 뒤에 얻게 되는 새생명의 기쁨이 그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하느님은 죄인이 예수님을 믿어 새생명을 얻고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사람들이 거듭나는 것이 하느님 아버지가 가장 기쁨입니다. 이를 알기에 예수님은 기꺼이 자기의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스스로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자기의 노력을 모두 내려놓고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느님이 주시는 생명으로만 살아가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또한 아직 예수님을 믿지 못한 채 죽어가는 인생들을 주님께 인도함으로 하느님께 기쁨을 드리고 하느님의 기쁨을 함께 누리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