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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교회에 관해 스크렙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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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교회>에 대해 여러분들이 묻습니다. ‘너는 누구냐?’ 에서부터 예배는 어떤 형식으로 할 것인지, 비가 억수같이 오거나 도저히 걸을 수 없는 날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
이 모든 것이 아직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함께 걷는다는 것 말고는, 몇 가지 원론적인 생각 말고는 보다 구체적인 안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입니다. 우리가 걷는 길목 길목에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리라 믿습니다. ‘협업’, 각자의 지혜를 모아야겠지요. 그 과정 자체가 우리 <걷는교회>의 중요한 정체성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저도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혜를 궁구하고 있습니다.
최 재범님이 출범에 즈음한 발문을 빨리 쓰라하시는데 예상보다 훨씬 빠른 첫 준비 산행이니 보다 구체적인 내용은 천천히 쓰기로 하고(양해해주십시오!!) 우선 몇 가지 생각만 간략하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걷는교회>는 특정 현상에 대한 단순한 반작용이 아닙니다. 만연되어 있는 성장과 물신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서만 인식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래서 물리쳐야 할 대상을 인위적으로 상정하거나 도달해야 할 목표를 설정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스스로 또 다른 목표에 사로잡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똑 같은 패러다임 안에서 형태만 다른 모습이 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고와 인식, 형식과 실천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 보자는 것입니다. 분명히 우리가 살고 있는 동시대의 사회적, 종교적 현상 안에서 성찰된 것이기는 하지만 신앙 활동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예수님의 삶에서, 그를 본받아 끊임없이 걸었던 신앙의 스승들의 삶에서 본받자는 것입니다. 앞으로만 달려가라 하고 달려가는 세상에서 거꾸로, 그러나 근본으로 돌아가 보자는 것입니다.
개인적이며 사회적인 차원에서의 화해와 평화, 구원의 안식, 연대와 일치, 모든 피조물에 대한 사려 깊은 배려와 공경, 그 모든 것들과 더불어 삶을 추구하며 살고 싶은 마음,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끊임없이 걸으셨던 예수님을 닮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이 있었음에도 관계와 습관, 두려움, 낮 설음 때문에 불편함을 안은 체 주저하며 앉아 있던 사람들이 ‘더 늦기 전에, 더 늙기 전에’ 자연, 사람, 하느님의 품으로 함께 걸으며 그런 마음을, 그런 삶을 실현해보자는 것입니다. 자유를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도하지 않아도 우리의 걸음이, <걷는교회>가 하나의 대안으로, 닮고 싶은 아름다운 삶으로, 공동체로 여겨진다면 영광이고 기쁨이 되겠지요. <걷는교회>는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그의 가르침대로 노력하기 위해 모입니다. 독립적이며 독자적이고 스스로 그러한(自然) 교회입니다.
<걷는교회>는 울도 담도 지붕도 없을 것입니다. 길을 찾아 길을 걷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느님의 현존이 드러나는 바로 성전입니다. 각자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과 사람들의 마을이, 숲길이, 강둑이, 들판이, 그 길에서 만나는 새와 바람과 물과 흙과 하늘이 우리들의 교회당, 예배당이 될 것입니다.
<걷는교회>는 위계적인 계급(Hierarchy)도, 경영(Management)을 위한 구조도 없습니다. 모두가 길잡이이고 길동무입니다. 모든 생명은 하느님께서 주신, 그리고 세월을 겪으며 쌓여진 독특한 소리가 있습니다. 그 소리에 좀 더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고(Pay Attention) 공경(Reverence)하면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서로가 서로에게 새로운 관계로 다가올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 갈 것입니다. 아주 작은 소리로도 서로의 존재를, 그 존재의 의미와 갈망을 알아듣는 ‘지음지기(知音知己)’,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길벗들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영성이고 공동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