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박태식의 함께 사는 이야기 교회의 민주화

[공동체]교회의 민주화

625
0
공유

교회의 민주화

박태식 신부(성공회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원장)

그러나 여러분은 랍비라고 불려서는 안 됩니다. 사실 여러분의 선생은 한 분이요 여러분은 모두 형제들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땅에서 (누구를) 여러분의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시오. 사실 여러분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분입니다. 여러분은 사부라고 불려서도 안 됩니다. 여러분의 사부는 오직 한 분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마태23,8-10)

서품식 유감

몇 년 전인가 어느 수도회의 서품식에 간 적이 있었다. 그 수도회 수사님 한분이 마침 제자였던 게 인연이 되어 참석한 서품식이었는데 볼만한 광경이 벌어졌다. 수도회와 관련을  맺은 여러분의 주교님이 제대에 자리를 잡았고 파파스를 비롯한 수도회 어른들과 외국에서 날아온 손님 신부님들이 대거 앞자리를 차지했다. 족히 서른 분은 되어 보였다. 그리고 사제로 추천받은 수사님을 ‘어디에 있느냐?’고 부르자 그 수사님은 목소리도 우렁차게 “네, 여기 있습니다.”하며 제대 위로 뛰어 올라갔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시는 내용이지만 가톨릭교회의 전형적인 신품성사 예식이다. 앞에서 그리도 정연하게 예식이 진행되는 동안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랬더니 성당 뒤쪽에서는 전혀 다른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성 신자들과 양복을 좍 빼입은 신사들이 이리저리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손님들을 대접하고, 간간히 들리는 대화는 밑의 식당에 음식이 제대로 차려졌는지 수소문하는 것이었다. 주문한 떡이 왜 제때 안 도착하는가, 예식이 끝나 주교님들이 밑에 도착했을 때 잡채가 딱 알맞게 데워져 있어야 하는데 걱정이다, 형제님은 왼쪽 두 번째 줄까지 책임지고 밑으로 모셔라…….

앞과 뒤가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화려한 복장에 멋진 모자를 쓰시고 지팡이까지 짚으신 분들이 제대에 대거 모여 예식에 집중하는 동안 성당 뒤쪽과 식당에선 누군가 맘을 졸이며 죽어나고 있는 실정이었다.

교 회

그리스도교가 처음 탄생했을 무렵 아직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된 공동체를 선택적으로 일컫는 호칭이 없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리스도교가 아직 유대교의 일파인지 로마제국에 새로운 종교로 등장했는지 구분이 모호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일부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유대교 뿌리를 강조하며 예수님을 이스라엘 종교의 수호자로 여겼던 반면 일부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와의 단절만이 그리스도교의 미래를 보장하는 길이라며 목청을 높였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지칭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졌는데, 이를테면 마르코복음에서는 ‘군중’, 루가복음에서는 ‘백성’, 마태오복음에서는 ‘제자’, 요한복음에서는 ‘양떼’에 견주곤 했다. ‘회당’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시나고게’라는 단어는 이미 디아스포라(국외) 유대교에서 선점先占했기에 무엇인가 변별력을 주어야 했던 것이다.

사도 바울로는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표현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용어를 선택했는데 그것이 바로 ‘교회’, 헬라어로 ‘엨클레시아’였다. 신약성서에서 교회를 뜻하는 낱말인 ‘엨클레시아’는 모두 114회 나오고, 그 중에서 70회 정도는 바울로의 편지에 등장한다. 바울로가 이 단어를 통해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규정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이다. 하지만 엨클레시아라는 낱말이 원래부터 그리스도 교회를 뜻했던 것은 아니다. 이는 헬라 사회에서 널리 통용되던 용어로, ‘집회’, 혹은 ‘민회民會’가 보다 정확한 번역이다. 특히, 민회는 직접 민주주의를 실천한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전 시민이 출석한 모임을 두고 ‘엨클레시아’라 불렀던 데서 나온 번역이다.

‘교회’라는 개념을 통해 바울로가 드러내려 했던 의도를 역 추적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교회는 마치 모든 구성원이 직접 참여해 공동체의 앞날을 결정했던 도시국가의 엨클레시아처럼 주인, 노예, 남성, 여성, 이방인, 유대인 가리지 않고 세례 받은 이면 누구나 차별받지 않는 공동체여야 한다.(갈라 3,27-30) 거기에 더해 지혜, 지식, 믿음, 병고침, 기적, 교사, 식별, 영언, 해석 등등 각자가 받은 성령의 은사(카리스마)가 존중받는 공동체로 예수님을 머리로 한 유기체 몸을 이루어야만 하는 것이 교회이다.(1고린 12장) 시민-자유민-노예로 이루어진 계급사회였던 로마제국에서 바울로는 어떻게 그런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을 가져왔을까? 답은 자명하다. 역사의 예수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이상이 그렇게 표현된 것이다.

평등의 공동체

역사의 예수님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는 것은 비단 복음서 보도가 아니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유대교에서 죄를 씻는 유일한 방법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느님께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길뿐이었고 제사를 드리려면 제물과 제기가 필요했다. 게다가 죄의 성격과 경중輕重에 따라 바쳐야 제물의 종류가 다양했다. 말하자면 죄를 씻기 위해서는 경비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니 가진 것이라곤 겉옷과 속옷 딱 두벌밖에 없는 가난뱅이의 경우, 죄를 지었으면 지은 대로 그저 절망감에 싸여 살아갈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바로 그 때 예수님은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구원을 선포했다. “때가 차서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시오.”(마르 1,15) 누구라도 회개하고 복음을 믿기만 하면 값없이 구원이 주어지는 길이 열린 것이었다. 공짜 구원! 이렇게 기쁜 소식을 전에 들어본 적이 있었을까? 사람들이 예수님 주변에 구름처럼 모여드는 게 당연한 이치였다.

예수님은 의인과 죄인에 차별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죄인을 보다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았던 분이다. 예수님에게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차별도 없어서 시로페니키아에 살던 이방여인의 딸을 선뜻 고쳐주었다(마르 7,24-29). 비단 시로페니키아 여인 외에 예수님이 “이런 믿음을 이스라엘에서도 본 적이 없다”라고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은 로마인 백부장(루가 7,1-10)이나 예수님이 숨을 거두는 현장에서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라고 고백한 백부장(마르 15,39)도 이방인이었다. 또한 예수님에게 남녀 차별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예수님은 여성에게도 남성과 동등한 교육의 기회를 주었고(루가 10,38-42), 공동체의 살림을 남성들과 나누어 맡겼으며(루가 8,1-3), 여성 역시 부활의 증인으로 삼아주었다(마르 16,1-8;마태 28,9-10;요한 20,14-18). 여성도 남성과 비교할 때 하등 손색없는 제자였던 것이다.

그 모든 이들이 나와 예수님의 식탁에 앉을 수 있었다. 복음서에 보면 추종자들이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셔 식사를 대접했다는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예수님은 바리사이의 초대를 받아들여 식사를 나눈 적도 있었지만(루가 11,37-54;14,1.12), 세리의 초대에도 선선히 응했다(마르 2,15-17). 어디 그뿐인가. 로마에 빌붙어 유대인을 수탈하는 악명 높은 세리장 자케우스의 초대마저 예수님은 받아들였다(루가 19,1-10). 어느 바리사이는 예수님이 세리의 집에 초대받아 죄인들과 한 자리에 앉아 음식을 나누는 것을 보고 “저 사람이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음식을 나누고 있으니 어찌된 일이냐?”라고 불만을 표시했다(마르 2,16). 예수님은 비록 재야의 인물이기는 했어도 엄연한 야훼 종교의 지도자들 중 하나였으니 ‘의인’임이 분명했다. 그런데 죄인들과 한 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눈 것은 대단히 파격적인 행동이었다. 그런 처사들은 바리사이의 불평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예수님의 입장은 확고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르 2,17)

돌들이 소리칠 것이다

과거에는 계급 질서가 자연스러워 사회적, 경제적, 교육적 혜택이 소수에게만 돌아갔다. 그에 따라 성직자(특히, 주교)와 평신도 사이의 문화 격차는 실로 엄청났다. 그런 역사에 힘입어서였는지는 몰라도 오랫동안 교회 내의 민주화란 남의 일처럼 여겨졌다. 세계 대다수 국가에서 민주주의와 평등사상이 당연한 이치로 자리 잡은 오늘날까지도 교회만은 여전히 과거의 계급적인 위계질서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그리스도교가 처음 시작했던 그 시절의 상황은 오히려 통쾌했다.

예수님은 유대 세계에서 체질화되어 있던 의인과 죄인, 유대인과 이방인,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없애고 모든 이에게 평등한 구원을 선포했다. 바울로 역시 예수님의 생각에 십분 부응해 주변 헬라-로마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평등의 공동체를 추구했다.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교회 모습니다.

교회의 민주화는 시대의 과제다. 아무리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져 온 교회가 힘을 모아 반독재 투쟁을 벌인다 한들 교회 내의 민주화를 이루지 못하면 요란하게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할 뿐이다. 이제 한국 교회의 어른들은 교회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아래로부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안 그러면 권위적인 교회에 실망한 그리스도인들이 떠난 자리엔 고색창연하고 텅 빈 성당 건물만 남게 될 것이다. 한 때 기세등등했던 유럽 교회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말이다.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 두어야 한다. 그리스도교의 시작이 평등이었음을!

예루살렘 입성 때 군중의 환호에 질려버린 바리사이들이 “선생님, 제자들이 저러는데 왜 꾸짖지 않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대답했다. “잘 들어라. 그들이 입을 다물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루가 1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