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말씀과 신앙나눔 김호관(크리스핀) 신부 설교-예루살렘의 키릴 성인축일 “쉐마, 이스라엘”

김호관(크리스핀) 신부 설교-예루살렘의 키릴 성인축일 “쉐마, 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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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13일(금) 예루살렘의 키릴 성인축일 정오성찬례 
서울주교좌 외국인교회 김호관 신부의 설교입니다.

쉐마, 이스라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오늘은 예루살렘의 주교였던 키릴 성인의 축일입니다. 성인 키릴은 315년경 예루살렘에서 로마제국 황제가문의 그리스도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성인 키릴은 성서학자이면서 뛰어난 설교가였습니다. 347년의 사순절 기간에 사용한 그의 “교리서”는 세례 준비자를 위한 명쾌한 교리 해설서가 되었으며, 4세기의 팔레스티나 전례를 알 수 있는 유명한 교리서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인 키릴은 새롭게 그리스도인이 되는 이들을 위해서 헌신했으며, 그 당시 교리 논쟁으로 인하여 갈라진 교회의 일치를 위해 애쓰신 분입니다.

그의 교리서에 담긴 성령에 대한 그의 가르침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샘물처럼 솟아올라 영원히 살게 할 것이다.” 이것은 마음이 준비되어 있는 이에게만 샘물처럼 솟아오르는 새로운 종류의 생명수입니다. 그런데 왜 여기서 성령의 은총을 물이라고 합니까? 이는 모든 것이 물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물은 풀을 자라게 하고 생명체를 만들어 줍니다. 물은 비로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물은 언제나 같은 형태로 내려오지만 그 효과는 다양합니다.그것은 팔마나무에 미치는 효과가 다르고 포도나무에 미치는 효과가 달라도 모든 것에 모든 것이 됩니다. 물 그 자체는 항상 같은 것이고 변함이 없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는 아무 변함이 없이 내립니다. 그러나 물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물의 성질에 적응하여 각각 적합한 것으로 됩니다.

성령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이시고 한 본성이시며 나뉨이 없으시지만 각자에게 당신께서 원하시는 대로 은총을 나누어주십니다. 마른 나무가 물을 받으면 새싹을 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죄에 빠진 영혼도 회개함으로써 성령의 은총을 받으면 정의의 열매를 맺습니다. 성령은 비록 본성상 하나이지만 하느님의 뜻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양한 효과를 일으킵니다.

성령께서는 지혜를 주시기 위해 사람의 입을 사용하시고 예언의 은혜로 다른 이의 이해력을 비추어 주시며 또 다른 이에게는 악마를 쫓는 권능을, 또 다른 이에게는 하느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은혜를 주십니다. 그분은 어떤 이에게 절제심을 강하게 해주시고, 다른 이에게는 자비심을, 또 다른 이에게는 단식하고 고행하는 것을, 또 다른 이에게는 순교의 용기를 주십니다.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의 선물을 주셨는데 그것은 공동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라는 말씀대로 그분 자신은 변화되지 않으시지만 여러 사람들 안에서 각각 다르게 활동하십니다.

매우 명쾌한 해설입니다. 그렇지요!?

오늘 복음에서, 새신자가 아닌 율법학자 한 사람이 “모든 계명 중에 어느 것이 첫째가는 계명입니까?”하고 예수님께 묻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명쾌하십니다. 신명기 6장의 말씀을 인용하여 하시는 이 응답은 그 이상 분명할 수 없을 만큼 명쾌합니다.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의 하느님은 야훼시다. 야훼 한 분뿐이시다.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의 하느님 야훼를 사랑하여라.”

또 둘째가는 계명은 레위기의 말씀을 인용하시어,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라고 하십니다. 이 두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이보다 더 간단한 명령은 없습니다.

제가 무슨 설명을 더 할 수 있을까요? 어떤 해설이 더 필요하십니까? 이 예수님의 말씀 중에 그 어떤 단어도 우리가 문자적으로나, 의미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없습니다. 그저 행동으로 옮기면 되는 것입니다. 쉬운 일이지요?

이 천년 전 유대인들이나 오늘의 우리들에게 여전히 어려운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왜 어려울까요? 우리가 자꾸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왜 잊어버릴까요? 우리가 가끔씩 보기 때문입니다. 매일 미사를 드려도 이 년에 한 번일 것이고, 주일만 미사를 드리면 삼 년에 한 번 접하게 되는 말씀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율법학자와 유대인들이 저희보다 낫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 즉 ‘쉐마 이스라엘’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이 ‘쉐마 이스라엘’은 유대인들이 우리의 신경처럼 매 예배때마다 외웠던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신명기에는 이 배경이 되고, 근거가 되는, 구체적인 지침이 있습니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라. 이것을 너희 자손들에게 거듭거듭 들려주어라. 집에서 쉴 때나 길을 갈 때나 자리에 들었을 때나 일어났을 때나 항상 말해 주어라. 네 손에 매어 표를 삼고 이마에 붙여 기호로 삼아라.”

매우 구체적이고, 실천할 수 있는 지침입니다.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의 하느님 야훼를 사랑하여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이 큰 두 계명은 성인 키릴의 말씀처럼 우리에게 물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물을 마시지 못하면 죽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물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겨내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생명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큰 두 계명을, 예수님의 손과 발의 못 자국처럼, 우리 마음에 새길 때, 매일 매번 되뇌어 들을 때, 그 실천도 우리에게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이 사순절기는 이 일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때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 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