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박태식의 함께 사는 이야기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힙니다.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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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힙니다.

박태식 신부(성공회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원장)

마르 7,18-2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그토록 깨닫지 못하느냐?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그를 더럽힐 수 없다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느냐? 그것이 마음으로 들어가지 않고 뱃속으로 들어갔다가 뒷간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고 밝히신 것이다. 또 이어서 말씀하셨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잘 먹고 죽은 귀신은 혈색도 좋더라!’ 지도 교수 신부님이 곧잘 하시던 말씀이다. 그 말씀을 들을 때마다 실소를 금치 못했는데 실제로 당신은 그리 많이 드시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당시 신부님은 심장이 안 좋아 기름진 음식을 철저히 피하는 형편이었고 덕분에 호강을 누린 사람들은 필자를 포함한 대학원생들이었다. 신부님 댁에 가면 수녀님들이 맛깔스레 준비한 음식과 수도원에서 공수된 독일식 소시지에다 미사주까지 반주로 준비되어 있었으니 대학원생 모두는 당장 배불러 죽더라도 화려하게 혈색이 돌 판이었다. 요즘도 그 때만 생각하면 향긋한 포도주 냄새가 코앞에 감돌 정도다.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음식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이른바 ‘웰-빙’이 현대인의 주요 관심사가 되면서 잘 살기 위해서는 과연 무엇을 먹어야할까 하는 질문이 제기된 까닭이다. 그래서 친구들 몇이라도 만날라 치면 몸에 이로운 음식이 무엇이며, 암 예방에 도움 되는 음식은 무엇이고, 체질에 맞는 먹을거리는 무엇인지 정보 나누기에 여념이 없다. 모이면 먹는 이야기뿐인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이로운 것만 성의껏 골라 먹다보면 효과가 있기는 분명히 있을 터다.

종교적인 견지에서는 과연 어떤 음식이 좋을까? 아마 불교의 사찰음식이 으뜸일 것이다.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풍광을 바탕으로 야채식을 하는 산사山寺의 음식 전통에 그만큼 매력적인 요소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서에도 음식전통에 관한 가르침이 있을까? 여기서 예수님의 음식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자.

예수님과 음식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사람들이 와서 예수님에게 물어보았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단식하지 않습니까?” 보나마나 예수님에게 적대감을 갖고 있었던 종교지도자들임이 분명한데 예수님이 세례를 받은 요한까지 끌어들여 예수님의 제자들을 공격하는 게 예사 솜씨가 아닌 까닭이다.

유대인들은 주기적으로 단식을 했다. 구약성서의 율법서(토라, 모세오경)에 보면 ‘속죄의 날’에 모든 유대인은 반드시 단식을 했고(레위 16,29이하; 23,27이하), 바빌론 유배(기원전 587-538년) 이후의 기록에 보면 매달 4.5.7.10일에 단식을 했으며(집회 8,19), 부림절 역시 단식을 동반하는 절기였다(에스더 9,20-32). 단식 전통은 신약성서 시대까지 이어져 예수님과 동시대의 유대인들은 주중에 월요일과 목요일에 단식했다고 한다(디다케 8,1; 루가 18,12). 그처럼 단식이란 유대인이라면 당연히 지켜야할 의무였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도무지 단식을 하지 않았기에 이런 질문을 받는 게 당연한 이치였다(마르 2,18). 사태는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제자들은 단식을 안 했음을 물론, 한 걸음 더 나아가 시도 때도 없이 먹을 것을 밝혔기에 아예 “먹보에 술꾼”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고 한다(마태 11,18-19; 루가 17,33-34).

잘 알다시피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선택받기 전까지만 해도 그저 그런 사람들이었다. 어부에 세리였으며 과격한 열혈당 소속도 있었다. 눈에 띄는 유일한 인물이 배신자 유다인데 사제와 율사와 원로들에 끈이 닿아 있었으니 사회적으로 상당한 위치에 있었던 듯하다(마르 14,43-44). 이들 평범한 제자들은 율법규정의 준수가 엄격하게 요구되었던 이스라엘에서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할 처지는 아니었다. 그런데 먹고 마시는 일에 그만큼 자신 있게 행동하고 율법에서 정한 단식일마저 지키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단 하나, 스승 예수님의 가르침을 본받아 그분이 하시는 대로 따라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인가 예수님이 추종자의 집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때 바리사이와 율사들이 시비를 걸었다.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마르 2,16) 마침 예수님이 먹보에 술꾼이자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서 자신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던 모양이다. 그들의 비난을 들어보면 언뜻 의인인 예수님이 죄인들과 한자리에 앉아 식사하는 모습을 책망한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바리사이와 율사들이 시비를 건 문제는 정작 누구의 집에서 먹는가에 있었다. 레위기 11장에 거론된 음식규정에 보면 의인이 먹을 수 있는 음식과 없는 음식이 분명하게 구별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먹을 것 못 먹을 것 가릴 여유가 있는 의인의 경우고 흔히 죄인으로 분류 되었던 하층민들이나 주변부 사람들은 이것저것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산 입에 거미줄 치지 않으려면 부정한 고기라도 먹을 수밖에! 예수님이 식사를 한 곳은 마침 죄인의 집이었고, 종교지도자들은 그 집에서 예수님에게 대접한 음식이 혹시 부정하지 않은지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상이 차려지고 예수님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출처 불명의 수상한 음식을 입에 넣자 기다렸다는 듯이 시비를 걸었던 것이다. ‘하느님의 사람으로 자처하던 당신이 어찌해서 율법에서 금한 음식을 드시는 것이오?’

어떻게 살 것인가?

예수님은 율법에서 정한 음식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단식을 하지 않았고 부정한 음식을 자유자재로 먹었다. 율법 규정에 따른 단식과 부정한 음식이란 무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이 단식을 근본적으로 반대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오히려 예수님은 단식을 단식처럼 보이지 않게 하라는 가르침을 준 바 있다.

마태 6,16-18: 여러분은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시오. 사실 그들은 단식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려고 자기들의 얼굴을 찌푸립니다. 진실히 여러분에게 이르거니와, 그들은 이미 자기들의 보수를 받았습니다. 당신이 단식하려거든 당신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당신의 얼굴을 씻으시오. 그리하여 당신이 단식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말고 숨어 계시는 당신 아버지께 드러내시오.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당신의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갚아 주실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단식할 때 제발 티를 내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단식이란 궁극적으로 단식하는 이와 하느님 둘 사이의 문제라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단식을 한다면서 동네방네 드러내놓고 과시해야 알아채는 주변 사람의 눈이 아니라 숨은 일마저 은밀히 보시는 하느님의 눈에 드는 단식만이 참된 법이다. 단식을 해야 하는 이유를 잘 밝혀놓은 말씀이다. 음식물에 대한 예수님의 시원한 입장은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마르 7,15의 말씀에 따르면 모름지기 “사람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이란 없다. 도리어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유대인들은 음식을 먹기에 앞서 손을 씻고 그릇을 씻고 정해진 순서에 따라 부정을 타지 않게 요리를 하는 데 익숙했다. 예수님은 그 모든 번거로운 ‘웰-빙’ 음식을 거슬러 일갈을 했다.

무엇을 먹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먹고 나서 하는 행동이 문제다. 좋은 음식 먹고 나서 한다는 짓이 고작 패를 갈라 없는 사람 괴롭히고, 위장 전입에, 부동산 투기에, 뇌물 공여에, 대통령 미국방문의 수행원으로 따라가 딸 같은 인턴 직원 건드리고, 자식 군대 빼기인가? 아무리 자연식을 하고, 아무리 저칼로리로 골라가며 먹고, 아무리 수준 높은 유기농작물을 섭취하고, 아무리 감사의 말을 연발한들 먹고서 나오는 게 더러우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성서에는 음식물과 관련된 이야기가 헤아릴 수 없게 많이 나온다. 성서가 원래 인류 역사와 함께 한 고전이기에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정작 요즘 불어대고 있는 건강식 열풍과 관련해 유익한 정보를 얻기는 어렵다. 성서가 씌어졌던 때만 해도 무엇을 먹을까 보다 굶어죽느냐, 살아남느냐가 최고의 관심사였기에 하는 말이다. 예수님이 강조했던 점은 음식 자체가 아니라 음식으로 이어나가는 인간의 삶이다. 단적으로 말해, 먹는 게 문제가 아니라 사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음식물에 관해 알려주신 예수님의 투명한 가르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