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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제 해결하기] 도덕적 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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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제 해결하기] 도덕적 낙관

박태식 신부(성공회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원장)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서시자 총독은 “네가 유다인의 왕인가?”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그것은 네 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러나 대사제들과 원로들이 고발하는 말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빌라도가 “사람들이 저렇게 여러 가지 죄목을 들어서 고발하고 있는데 그 말이 들리지 않느냐?” 하고 다시 물었지만 예수께서는 총독이 매우 이상하게 여길 정도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명절이 되면 총독은 군중이 요구하는 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관례가 있었다. 마침 그 때에 (예수) 바라빠라는 이름난 죄수가 있었다. 빌라도는 모여든 군중에게 “누구를 놓아주면 좋겠느냐? 바라빠라는 예수냐? 그리스도라는 예수냐?” 하고 물었다. 빌라도는 예수가 군중에게 끌려온 것이 그들의 시기 때문임을 잘 알고 있었다. 빌라도가 재판을 하고 있을 때에 그의 아내가 전갈을 보내어 “당신은 그 무죄한 사람의 일에 관여하지 마십시오. 간밤에 저는 그 사람의 일로 꿈자리가 몹시 사나웠습니다.” 하고 당부하였다. 그 동안 대사제들과 원로들은 군중을 선동하여 바라빠를 놓아주고 예수는 죽여달라고 요구하게 하였다. 총독이 “이 두 사람 중에서 누구를 놓아달라는 말이냐?” 하고 묻자 그들은 “바라빠요.” 하고 소리질렀다. 그래서 “그리스도라는 예수는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하자 모두들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하고 소리질렀다. 빌라도가 “도대체 그 사람의 잘못이 무엇이냐?” 하고 물었으나 사람들은 더 악을 써 가며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하고 외쳤다. 빌라도는 그 이상 더 말해 보아야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것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폭동이 일어나려는 기세가 보였으므로 물을 가져다가 군중 앞에서 손을 씻으며 “너희가 맡아서 처리하여라.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 하고 말하였다. 군중은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지겠습니다.” 하고 소리쳤다. 그래서 빌라도는 바라빠를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게 한 다음, 십자가형에 처하라고 내어주었다. – 마태 27,11-26

빌라도 앞에서의 예수

유대 땅은 대대로 식민지 신세를 면치 못했기에 수많은 총독들이 있었습니다. 나라가 힘이 약해 독립 국가를 형성하지 못했던 탓입니다. 그러나 다른 어떤 총독보다 빌라도라는 이름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세계 어느 가톨릭교회 건 공통의 신앙 고백문으로 바치는 사도신경에 그 이름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 절로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그 이름이 비록 오명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예수님을 평결할 때 빌라도는 결코 사태를 과소평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산헤드린에서 고발한 예수님의 죄목을 자세히 살피고 십자가형에 처할 정도로 심한 죄를 짓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매질이나 적당히 하고 풀어주자는 관대한 처분을 내렸는데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의 입장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코드가 맞지 않았던 것이지요. 유대인들의 강력한 어필에 대한 마지막 방법으로 사면권을 사용합니다. 로마 총독에게는 사면권이 있었는데 군중에게 ‘만족을 행한다.’는 의미에서 라틴어로 Satis Facere라 했습니다. 영어의 satisfy를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사면권은 ‘예수 바라빠’라고 부르는 엉뚱한 자에게 돌아갔습니다. 그가 도둑으로 소동을 일으켰다는 점을 미루어보면 아마 열혈당원이었을지 모릅니다.

두 명의 예수

두 명의 예수(예수 바라빠와 예수 나자렛) 중에 군중은 바라빠를 선택했고 빌라도는 종교지도자들이 조작한 군중의 외침에 밀려 비극적인 결정을 내리고야 맙니다. 손을 씻었다고 했지만 어디 결정을 내린 장본인으로서의 책임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한번 쯤 숙고하는 게 좋습니다. 빌라도는 중요한 순간에 자신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주위 압력에 밀려 최악의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그의 잘못을 다 알고 있습니다. 손은 소용도 없이 괜히 씻은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