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박태식의 함께 사는 이야기 만성적인 병

[나의 문제 해결하기] 만성적인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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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제 해결하기] 만성적인 병

박태식 신부(성공회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원장)

하루는 예수께서 가르치고 계셨는데 거기에 갈릴래아와 유다의 여러 마을과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앉아 있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능력으로 병자들을 고쳐주기도 하셨는데
그 때 사람들이 중풍 들린 사람을 침상에 눕혀가지고 와서 예수 앞에 데리고 가려 하였으나
사람들이 많아서 병자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지붕으로 올라가 기와를 벗겨 구멍을 내고 병자를 요에 눕힌 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예수 앞에 내려보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을 들은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저 사람이 누구인데 저런 말을 하여 하느님을 모독하는가? 하느님말고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하고 수군거리기 시작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알아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희는 그런 생각을 품고 있느냐?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것과 어느 편이 더 쉽겠느냐?
이제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사람의 아들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그리고 나서 중풍병자에게 “내가 말하는 대로 하여라. 일어나 요를 걷어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하셨다.
그러자 병자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벌떡 일어나 깔고 누웠던 요를 걷어들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사람들은 모두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면서도 마음은 두려움에 싸여 “우리는 오늘 참으로 신기한 일을 보았다.” 하고 말하였다.
루가 5,17-26

지붕에서 내려온 중풍병자

갑자기 낯선 사람들이 나타나 우리 집 지붕을 부서뜨린다면? 그러면서 사과는 커녕 사람부터 살려내라고 소리소리 지른다면? 아마 황당해도 그렇게 황당한 경우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2천년 전에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주인은 아마 할 말을 잊을 정도로 어이가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집주인의 입장은 안중에 없었습니다. 집 가운데 예수님이 앉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큰 불행을 당하면 우리는 동정을 합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 문득문득 저런 불행이 찾아온 데는 혹시 원인이 있지 않을까? 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과거 유대인들도 그랬습니다. 모든 병은 죄에서 비롯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 ‘너의 죄를 용서받았다’고 할 때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이 의문을 품은 겁니다.

우리는 비록 저 사람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저 사람은 틀림없이 하느님 앞에서 죄를 지었다. 그러니까 저 모양이 되었지. 원인 없는 결과가 있는가? 그런데 예수가 나서서 죄를 용서한다고. 그렇다면 하느님에게 지은 죄를 하느님도 아닌 저 사람이 대신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구먼!

복잡하게 따지면 한없이 복잡해질 수 있는 상황을 예수님은 지극히 단순화시킵니다. 두 가지 선택이 가능합니다. ‘죄가 용서받았다.’, 혹은 ‘일어나 가거라.’ 실증적인 관점에서는 ‘일어나 가라.’가 훨씬 힘듭니다. 중풍병자가 진짜로 일어나서 가야 하니까요. 그러나 실존적으로는 죄를 용서받는 것이 훨씬 어려운데, 바로 천지를 지으시고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니까요.

예수님은 ‘일어나 가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중풍병자는 일어나서 요를 집어 들고 갑니다. 일거에 사람들의 입이 딱 벌어지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죄를 용서하는 하느님의 행위이기도 합니다. 기적의 목격자들이 하느님을 찬양한 까닭입니다. 중풍병자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마음에 품고 집으로 돌아갔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