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박태식의 함께 사는 이야기 나의 내일 – 물위를 걸으시다

[나의 정체성 발견하기]나의 내일 – 물위를 걸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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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체성 발견하기]나의 내일 – 물위를 걸으시다

박태식 신부(성공회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원장)

예수께서 곧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를 태워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 동안에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군중을 보내신 뒤에 조용히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올라가셔서 날이 이미 저물었는데도 거기에 혼자 계셨다.
그 동안에 배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역풍을 만나 풍랑에 시달리고 있었다.
새벽 네 시쯤 되어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다.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본 제자들은 겁에 질려 엉겁결에 “유령이다!” 하며 소리를 질렀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나다, 안심하여라. 겁낼 것 없다.” 하고 말씀하셨다.
베드로가 예수께 “주님이십니까? 그러시다면 저더러 물 위로 걸어오라고 하십시오.” 하고 소리쳤다.
예수께서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 위를 밟고 그에게로 걸어갔다.
그러다가 거센 바람을 보자 그만 무서운 생각이 들어 물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는 “주님, 살려주십시오!” 하고 비명을 질렀다.
예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왜 의심을 품었느냐? 그렇게도 믿음이 약하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함께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쳤다.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주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들이 바다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렀을 때에
그 곳 사람들이 예수를 알아보고 그 부근 지방에 두루 사람을 보내어 온갖 병자들을 다 데려왔다.
그리고 그들은 병자들이 예수의 옷자락만이라도 만지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만진 사람은 모두 깨끗이 나았다.
마태 14,22-36

예수님은 하느님의 사람입니다. 따라서 어느 인간도 갖지 못하는 탁월한 능력을 소유하셨기에 깜짝 놀랄 만한 기적을 베푸십니다. 복음서가 씌어졌던 당시에 이 기적이야기는 유랑전도사들이 전도를 할 때 큰 효과를 발휘했을 겁니다. 그 정도의 능력을 가진 분이라면 믿을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을 테니 말입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에 강조점을 두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시고, 음식을 많게 하여 사람들을 배부르게 하셨고, 마귀를 내쫓았으며 성난 풍랑을 가라앉힙니다. 그런 기적들을 분류하면 각각 ‘치유기적’, ‘구마기적’, ‘음식기적’, ‘자연기적’이 됩니다. 예수님이 물 위를 걸은 기적사화는 당연히 ‘자연기적’에 속합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본디 예수님이 물 위를 걸은 기적사화이기는 하지만 베드로의 등장으로 해서 색다른 묘미를 갖습니다. 베드로를 포함한 제자들은 새벽녘에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유령이 나타났다.’며 소리를 지릅니다. 원래 인간이란 초자연적인 현상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법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알아보자 베드로가 자기도 물 위를 좀 걸어보겠다고 합니다. 그 뒤에 결과는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그리 좋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시도만큼은 한 번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생각한 바를 이리저리 따지지 않고 그대로 행동에 옮기는, 말하자면 성미 급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기도 예수님처럼 물위를 걸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고 실제로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조금만 더 확신을 가졌다면 거의 성공할 수도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가졌던 확신의 정도를 볼 때 꼭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2% 부족합니다. 그 부족분을 예수님께서 채워주시지 않았다면 베드로는 영원히 물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기적사화의 초점은 베드로의 유약함이 부각시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예수님이 세상의 혹독한 시련 앞에 놓인 교회와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는 데 있습니다. 그 점을 절대 착각하면 안 됩니다. 주인공은 예수님이지 절대 우리가 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