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박태식의 함께 사는 이야기 나의 욕구 – 마르타와 마리아

[나의 정체성 발견하기]나의 욕구 – 마르타와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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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체성 발견하기]나의 욕구 – 마르타와 마리아

박태식 신부(성공회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원장)

루가 10,38-42 예수의 일행이 여행하다가 어떤 마을에 들렀는데 마르타라는 여자가 자기 집에 예수를 모셔 들였다. 그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 시중드는 일에 경황이 없던 마르타는 예수께 와서 “주님, 제 동생이 저에게만 일을 떠맡기는데 이것을 보시고도 가만두십니까? 마리아더러 저를 좀 거들어주라고 일러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주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마르타, 마르타, 너는 많은 일에 다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오늘의 이야기는 상황으로 시작해서 말씀으로 끝나는 전형적인 ‘상황어’(아포프테그마)입니다. 상황어는 고대 그레코-로만의 문학양식으로 상황보다는 말씀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그 제자들은 광야에서 삼년간이나 유랑생활을 했습니다. 복음서에 따르면 제자들이 모두 열둘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고정된 제자들의 수자 일뿐 실은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동행했습니다. 예를 들어 배신자 유다의 보궐선거에 나온 요셉과 마티아가 있습니다(사도 1장). 루가복음에서는 그들의 숫자를 모두 합쳐 72명이었다고 합니다(10,1) 그리고 식사준비나 기타 생활을 하는 데 여성들의 도움이 컸다고 합니다(8,1-3).

나자로 삼남매 집에 갔을 때도 많은 동행이 있었습니다. 한꺼번에 수많은 사람이 들이닥쳤을 테니 집안 여자들이 얼마나 바빴겠습니까? 아마 부엌에서 눈코 뜰 새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사람 하나가 안보입니다. 마르타는 예수님 옆에 척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는 마리아를 보고 눈 꼬리가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말을 해도 마리아가 꼼짝을 안했던지 그만 예수님에게 부탁을 합니다. 원래 집안사정을 손님한테 알리거나 부탁하는 일은 경우에서 한참 어긋나는 처사입니다. 오랜만에 손님을 초대해 놓고 ‘내 아내 버릇을 고쳐 달라.’거나 ‘자식을 좀 혼내 달라.’고 부탁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결례도 이만저만한 결례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당황은커녕 마르타를 나무라십니다. 마리아가 택한 좋은 몫을 빼앗지 말라는 것이지요.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습니다. 번역이 그렇게 되어 있지만 글자그대로 하면 예수님의 ‘무릎 아래에서’가 맞습니다. 이 표현은 예로부터 율사들이 제자를 가르치는 경우에만 선택적으로 사용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마리아를 정식 제자로 받아들여 공부를 시키는 중이었다는 말입니다. 당시의 여성경시풍조에서 예수님이 여성을 제자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서 대단한 파격입니다. 예수님의 대범하심이 돋보이는 내용입니다. 남녀차별? 우리들의 예수님에게는 안 통하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