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박태식의 함께 사는 이야기 나의 자아상 – 죄 많은 여자를 용서하시다

[나의 정체성 발견하기]나의 자아상 – 죄 많은 여자를 용서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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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체성 발견하기]나의 자아상 – 죄 많은 여자를 용서하시다

박태식 신부(성공회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원장)

예수께서 어떤 바리사이파 사람의 초대를 받으시고 그의 집에 들어가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다.
마침 그 동네에는 행실이 나쁜 여자가 하나 살고 있었는데 그 여자는 예수께서 그 바리사이파 사람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신다는 것을 알고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예수 뒤에 와서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었다. 그리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발에 입맞추며 향유를 부어드렸다.
예수를 초대한 바리사이파 사람이 이것을 보고 속으로 “저 사람이 정말 예언자라면 자기 발에 손을 대는 저 여자가 어떤 여자며 얼마나 행실이 나쁜 여자인지 알았을 텐데!” 하고 중얼거렸다.
그 때에 예수께서는 “시몬아, 너에게 물어볼 말이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 선생님, 말씀하십시오.” 그러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돈놀이꾼에게 빚을 진 사람 둘이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졌고 또 한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이 두 사람이 다 빚을 갚을 힘이 없었기 때문에 돈놀이꾼은 그들의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 두 사람 중에 누가 더 그를 사랑하겠느냐?”
시몬은 “더 많은 빚을 탕감받은 사람이겠지요.” 하였다. 예수께서는 “옳은 생각이다.” 하시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말씀을 계속하셨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머리카락으로 내 발을 닦아주었다.
너는 내 얼굴에도 입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맞추고 있다.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발라주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발라주었다.
잘 들어두어라. 이 여자는 이토록 극진한 사랑을 보였으니 그만큼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네 죄는 용서받았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예수와 한 식탁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속으로 “저 사람이 누구인데 죄까지 용서해 준다고 하는가?” 하고 수군거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하고 말씀하셨다.
루가 7,36-50

예수님이 식사하시는 자리에 어떤 여성이 들이닥치면서 상황이 시작되고 논쟁이 오가다가 예수님의 말씀으로 이야기가 끝납니다. ‘상황어’입니다. 영미 계통에서는 ‘에피소드’로 분류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당시에 죄인이라고 하면 두 부류가 있었습니다. 목동, 창녀, 백정, 의사, 개똥수거꾼 등은 천한 직업을 가졌다고 하여 죄인취급을 받았고, 날 때부터의 장애인, 이방인, 사마리아 사람, 그리고 모든 여인은 태생 죄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본문의 경우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죄인취급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행실이 부정했다.’는 것을 보아 분명 창녀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 있는 경우였을 겁니다. 그런데 복음서를 읽어보면 비슷한 분위기인데 다른 내용을 가진 이야기들도 나옵니다.

마태 26,6-13;마르 14,3-9;요한 12,1-8에 보면 역시 예수님에게 기름을 부은 여인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요한에서는 ‘마리아’(나자로의 동기)로, 마태오와 마르코에는 ‘어느 여인’이 기름을 부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에게 기름을 부었던 사건이 네 번씩이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한 번 있었는데 전승과정에서 다양하게 변한 것입니다. 아무튼 어느 여인이 예수님에게 기름을 부은 일이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기름을 붓는 경우는 어떤 이를 관직에 임명하는 때입니다. 소뿔의 안을 파서 기름을 채운 뒤에 머리 위로부터 들이붓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예로는 다윗의 경우가 있습니다. 그 후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의미로 ‘메시아’라는 용어가 생겼고 원래는 그저 관직에 오른 사람을 일컫는 가치중립적인 언어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이 말은 이스라엘을 구원해주실 분이라는 의미를 획득하게 됩니다. 이른바 ‘메시아 대망 사상’의 내용입니다.

예수님에게 기름을 부었으니 그분이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메시아라는 사실이 상징적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에게 기름 부은 여인을 예수님이 받아들이고 칭찬하셨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죄 많은 여인’인데 말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주변에 있던 점잖은 바리사이들보다 훨씬 낫다고 합니다. 이야기 사이에 들어있는 40-43절의 비유가 예수님의 입장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