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김영호박사 칼럼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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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로마서 9:27)
한국의 기독교인의 숫자는 통계상으로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4천만 인구 가운데 천만 명이 기독교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독교인들의 절반이 서울에 살고 있어서, 천만 서울 시민들 가운데 절반이 기독교인들이라는 것입니다. 서울에서 길을 가다가 만나는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기독교인이라니 참으로 놀랍지요.
그런데 이렇게 많은 기독교인들이 다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글쎄요, 이들이 모두 기독교인들이기에 다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만약 이들이 기독교인들임에도 불구하고 다 구원을 받지는 못할 것 같다면, 이는 우리들에게 무언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는 중요한 과제를 던져 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 교인들의 숫자를 보면, 구원을 받을 자가 어마 어마하게 많을 것 같은데, 예수께서는 생명으로 들어갈 자가 적을 것이라 했거든요.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에 이르는 문은 크고

또 그 길이 넓어 그리로 가는 사람이 많지만,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험해서 그리고 찾아 드는 사람이 적다. (마태 7:13-14)
신약성경에 이런 내용의 말씀들이 몇 군데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다의 모래처럼 많을지라도 남은 자만이 구원을 얻으리라. (로마 9:27)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꼭 기억해 두셔야 하겠습니다. 모세 때에 우리 조상들은 구름의 인도를 받았고 모두가 홍해를 무사히 건넜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모두 구름과 바다 속에서 세례를 받아 모세의 사람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똑같은 영적 양식을 먹었고, 또 똑같은 영적 음료를 마셨습니다. 그들의 동반자인 영적 바위에서 나오는 물을 마셨다는 말입니다. 그 바위는 곧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대부분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죽어서 그 시체가 여기저기에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 조상들처럼 악을 일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경고하는 본보기입니다.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 하신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고린도전 10:1-7)

성서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오늘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든 반역하던 때처럼 완악한 마음을 품지 말아라.” 그분의 음성을 듣고도 반역한 자들은 누구였습니까? 모두 모세의 인도를 받아 에집트를 빠져 나온 사람들이 아니었습니까? 사십 년 동안이나 하나님을 노엽게 한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그들은 죽어서 시체가 광야에 널려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당신의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신 것은 누구에게 하신 맹세였습니까?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 아닙니까? (히브리 3:15-18)
우리는 두려워 할찌니 그의 안식에 들어 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안식처에 들어가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운데 아무도 그 약속된 안식을 얻는 일에 실패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Let us take care, then, that none of you will be found to have failed to receive that promised rest.) (히브리 4:1)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들은 결코 나의 안식처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하셨는데, 과연 그들은 먼저 그 기쁜 소식을 전해 듣고도 순종하지 않은 탓으로 그 안식을 누리지 못하였습니다. (히브리 4:5-6)
하나님께서는 옛날 사람들이 당신을 배반했을 때에

홍수를 내리셔서 그들을 가차없이 멸하셨습니다. 그러나 정의를 부르짖던 노아의 일가 여덟 사람만을 살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 두 도시를 단죄하여 잿더미로 만드셔서 후세에 하나님을 배반할 저들에게 보일 본보기로 삼으셨습니다. (베드로후 2:5-6)
만일 우리 주님이시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됨으로써 세상의 더러운 것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다시 거기에 말려들어 가서 정복당하고 만다면 그런 사람들의 나중 처지는 처음보다 더 나빠질 것입니다. 그들이 올바른 길을 알았다가도 자기들이 받은 거룩한 계명을 저버린다면 차라리 올바른 길을 알지 못했던 편이 더 나을 것입니다. (베드로후 2:20-21)
이 말씀들을 살펴보면, 교회에 나온다고, 예수를 믿었다고, 세례를 받았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올바른 길을 알았다고, 그들 모두에게 다 구원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세의 인도를 따라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광야에서 거의 다 멸망하고, 약속의 땅, 안식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역사적 사실이, 오늘의 우리들에게 하나의 본보기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오늘의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행하면, 구원의 안식에 들어 갈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수를 기뻐하지 않으신다면, 어떠한 자들

이 구원의 안식에 이르게 될까요?
오늘의 말씀이 그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는데, 이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인용한 것입니다. 구약성서에 있는 말씀대로 읽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불의한 법령을 발포하며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 빈핍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며 내 백성의 가련한 자의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 있을찐저. 너희에게 벌하시는 날에 와 멀리서 오는 환난 때에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 누구에게로 도망하여 도움을 구하겠으며 너희 영화를 어느 곳에 두려느냐. 포로된 자의 아래에 구푸리며 죽임을 당한 자의 아래에 엎드러질 따름이니라. 그럴찌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가 여호와를 진실히 의뢰하리니,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 올 것이라.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 찌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훼멸이 작정되었음이라. 이미 작정 되었은즉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
(이사야 10:1-4, 20-23)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

하며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멸하시고, 새로운 백성, 곧 “남은 자” (the remnant) 라고 불리는 구원 받은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을 일으키실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내가 광야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이사야 43:19-21)
“남은 자” 에 대한 사상은 엘리야 선지자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신을 섬기는 자들과 대결한 수, 그들과 한 패인 이세벨 왕비가 자신을 죽이려 하자, 호렙산 속으로 몸을 피하여 들어가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게 된 때부터였습니다.
소리가 있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 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 천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하니 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열왕기상19:12-14, 18)

하나님의 기도하는 집을 도둑의 소굴로 바꾸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막고 사람의 율법의 가르침을 하나님의 가르침인양 따르며, 자신들만이 의로운 자들이라고 하면서 겉모양으로 경건한 체 하던 위선적 신앙을 가지고 있던 유대교 사람들 속에서, 예수를 뒤따르던 초대교회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바로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 “남은 자”들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야고보가 대답하여 가라사대…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도다. 기록된바,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행전 15:12-17)
그렇다면, 초대교회로부터 2천 년이 지난 오늘의 기독교 상황도, 이스라엘 온 백성을 포기하고 새로운 남은 자의 백성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뜻은 아직도 유효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라는 말씀을 가슴에 깊이 새기고, 남은 자의 삶을 살도록 힘쓰고 애써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