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박태식의 함께 사는 이야기 내게로 오시오

내게로 오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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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로 오시오

박태식 신부(성공회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원장)

마태 11,28-30: 수고하고 짐 진 여러분은 다 내게로 오시오. 그러면 내가 여러분을 쉬게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위에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서 배우시오. 나는 온유하고 마음으로 겸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영혼에 쉼을 얻을 것입니다. 사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습니다.

자유를 찾는 사람들

작년에 북한 인권문제가 미국의 국회 청문회에서 다루어진 적이 있었다. 그 때 어느 탈북자들의 증언을 들어보니 북한에서 참으로 처참한 인권유린이 자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하루빨리 통일이 이루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25년 전 독일이 통일되던 시절로 생각이 옮아갔다.  

동독 국경이 열렸던 1989년 11월 9일에서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동․서독 통일은 최소한 5년은 걸릴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당시는 동구권 국가들이 소련의 지배에서 벗어나 하나 둘씩 새로운 정부가 수립되던 시절이긴 했으나 동독은 예외였다. 동구권 어느 나라보다 경제가 안정되어 있었고 대통령 호네커의 통치력도 상당한 위세를 떨치고 있었던 까닭이다. 말하자면, 동독은 철옹성이라는 인상을 외부에 심어주었던 것이다. 영아 사망률 0%, 올림픽 최다 금메달 국가, 가구 당 차 한 대라는 신화를 이루어낸 국가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동독과 맞닿아있던 있던 체코와 폴란드의 국경이 열리면서 사람들이 빠져 나와 체코와 폴란드에 망명을 신청한 다음, 서독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자치권이 주어지는 바람에 자기 코가 석자나 빠진 체코와 폴란드는 굳이 망명을 막을 이유가 없었고, 얼마 후에는 동독 전역으로 그 소문이 퍼져나갔다. 그러더니 불과 한 달 사이에 무려 20만 명이나 국경을 넘어와 망명을 신청했다. 도대체 이 세상에 그 많은 망명객을 처리할 능력이 어느 나라에 있겠는가? 엄청난 숫자의 망명객 앞에 두 손 들어버린 체코는 아예 서독 쪽 국경까지 열고 말았다. 이후로 동독 사람들이 서독으로 넘어오는 공식 루트가 형성되었고 이대로 두었다가는 1500만에 달하던 동독 국민 모두가 빠져나갈 판이었다. 입이 딱 벌어지는 상황에서 동독은 국경을 개방할 수밖에 없었다.

흔히 예수가 공생애 동안 한 일을 두고 억압에 시달리던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자유의 성격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들이 있는데, 이를테면 율법에서 해방시켜준 종교의 자유, 죄와 죽음의 공포에서 풀어준 구원의 자유, 정치적 탄압에서 풀어준 정치의 자유 등등이 있다. 그 중에서 율법에서 해방이라든가 죄에서의 구원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일반적으로 동의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예수의 정치적 입장을 자세히 밝혀내는 일은 워낙 까다로워 일반원칙을 정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쉽게 말해 예수는 종교지도자였지 정치지도자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세상이 어디 그렇게 칼로 자른 듯 영역이 분명하게 구분되던가?

예수와 이루는 연대

지난 호에서 우리는 예수의 정치적인 입장을 살펴보았다. 헤로데 안티파스와 ‘헤로데파’에 취했던 예수의 입장에서 서릿발 같은 비판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더불어 이스라엘의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보았는데, 현실 정치에서 헤로데가家의 왕들은 전형적인 권력형 통치자들이었다. 그들은 대를 이어 교활한 통치 행각을 보면서 성장했고 자신이 통치자 위치에 오르면서 선대의 통치술을 현실에 적용했을 것이다. 이를테면, 정적政敵의 기미를 보이는 인물을 일찌감치 제거하는 게 정권유지의 첩경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측근으로 주변을 둘러싸는 게 상책이었다. 특히, 세월을 두고 검증된 인물을 측근으로 삼는 게 유리했다. 헤로데 안티파스가 세례자 요한을 제거했고 예수를 위험인물로 간주하여 경계를 늦추지 않았으며 ‘헤로데파’로 자신의 주변을 둘러쌌던 이유였다. 헤로데 왕권의 목적은 국가를 지키는 게 아니라 국가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자신의 것을 지키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법이 건드릴 수 없는 초월적인 영역의 존재로 주변에 인식시키는 과정이 뒤따라야만 했다. 즉, 통치자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얼마든지 법질서를 어길 수 있는 노릇이었다.

이런 환경에 놓인 국민이라면 자연히 무력감과 고립된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암울한 시절이 연속될 뿐이었기에 너나 할 것 없이 종말을 향한 기대만 잔뜩 부풀어 오른 상황이었다.

암울했던 현실에서 예수는 “수고하고 짐 진” 모든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약속을 했다. “여러분은 다 내게로 오시오. 그러면 내가 여러분을 쉬게 하겠습니다.” 예수는 헤로데 왕권과 로마 제국의 폭정에 짓눌려 있던 민중의 고통을 보았고 그들 개개인에게 ‘쉼’을 약속했다. 이런 맥락에서 강조되어야 할 점은 바로 예수 스스로 자신을 증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온유하고 겸손합니다.” 이는 예수에게로 오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자유의 공간이 넉넉하게 마련되어 있음을 알려주는 초대의 말인 것이다.

J. 허먼은 심리학 서적의 고전으로 여겨지는 『트라우마』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을 폈다. 심각한 외상을 입은 사람에게 “외상 사건은 개인과 공동체를 연결하는 끈을 파괴했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으로 존재감, 자기 가치감, 인격을 지켜낼 수 있음을 배운다. 결속된 집단은 공포와 절망에 대항할 수 있는 강력한 보호책을, 그리고 외상 경험에 강력한 해독제를 제공한다. 외상이 고립시킨다면, 집단은 소속감을 재생한다.”(『트라우마』, 최현정 옮김, 열린 책들, 2012, 355쪽)

예수와의 연대란, 고립된 삶에서의 탈출이며 그로 인해 얻는 ‘쉼’은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사람답게 사는 길이었다.  

국민을 지키지 못하는 국가

1989년 가을 무렵 필자는 서독지역 괴팅엔이라는 도시에 유학 중이었다. 괴팅엔은 동독 국경과 불과 30분 거리였다. 국경이 열리던 11월 9일은 대단했다. 물밀듯 넘어 오는 트라비(동독 자동차)의 행렬도 그랬고, 자동차 안으로 100마르크 지폐를 마구 던져 넣으면서 반가움을 표시하는 서독 사람들의 손길도 그랬다. 자유를 찾는 사람들의 물결은 실로 거세어서 누구도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릴 적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말이 있다. “나라 없는 설움이 얼마나 큰지 모른다. 일제 강점기를 생각해봐라. 그러니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겨라.”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만일 내가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니고 여권도 없다면 이 지구 어느 곳에 가서 발을 붙이겠는가? 무국적자로 유럽에서 온갖 설움을 받는 집시와 다를 바 있겠는가. 하지만 자신이 속해있는 나라가 제구실을 못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적어도 동독을 빠져나온 수많은 사람들에게 ‘독일민주공화국(DDR)’은 더 이상 조국이라 부를 수 없었다.  

예수는 자유 없는 세상에 사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들과 기꺼이 하나가 되길 원했다. 이스라엘의 그 어떤 종교지도자나 정치지도자에게서도 발견되지 않았던 인격적인 부름이었다. 무거운 멍에를 벗고 수고를 덜어주는 ‘쉼’이 있는 분, 곧 예수와의 아름다운 연대가 보장되어 있었다. 사람은 여간해서 변하지 않는다. 세월이 아무리 흐르고 시절이 바뀌어도 여전한 게 사람이다. 더구나 교리와 관습과 폭정에 짓눌려 옴짝도 못하며 눈치나 보던 이스라엘의 겁쟁이들이라면 변화를 더욱 두려워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예수의 제자들은 완전히 바뀌어 마음대로 율법을 어길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자유인이 되었다. 놀라운 변화였다.        

얼마 전 북한의 정치상황에 큰 변화가 있었다. 자유진영과 비교적 말이 통했다던 장성택이 숙청을 당한 것이다. 고모부를 죽이고 고모를 식물인간처럼 만든 것을 보면서 저 옛날 의심 때문에 자신을 낳은 어머니마저 처형한 네로가 떠오른다. 온 국민이 감시당하고 비밀경찰이 활개를 치며, 법이 무시되고 침묵이 강요되며, 특권층은 온갖 부를 누리는 반면 서민들은 초근목피로 이어간다면 국가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면서 어떻게 국가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겠는가 말이다.

자유를 찾아 나서는 사람들은 두려움을 모른다. 코에 철사 줄이 꿰어 본국으로 끌려갈 위험이 있든, 본국으로 돌아가 수용소에 갇혀 비참하게 죽든 상관하지 않는다. 이미 목숨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북 간에 화해무드가 형성되든 아니든, 이산가족 상봉이 끊어지든 이어지든, 남북한 경제협력이 다시 시작되는 말든 개의치 않는다. 어느 세월에 통일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느니 차라리 오늘 밤, 야음을 타 강 건너 자유의 땅으로 가는 게 낫다.

정치가의 논리로는 세상을 결코 바꿀 수 없다. 자유를 찾아 나선 이들이 벌이는 절체절명의 투쟁만이 세상을 바꿀 것이다.

세계인권선언 제 14조

1. 모든 사람은 박해를 피하여 타국에 피난처를 구하고 체재할 권리를 가진다.

2. 이 권리는 비정치적 범죄 또는 국제연합의 목적 및 원칙에 반하는 행위만을 원인으로 하는 소추의 경우에는 원용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