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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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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보배

박태식 신부(성공회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원장)

요즘 들어 ‘비주얼’이니 ‘비디오’니 하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듣는다. 가수는 오디오뿐 아니라 비디오가 되어야 하고, 머리 작고 키 크고 날씬한 사람이 대우를 받으며, 대통령도 비주얼 효과를 고려해 성형수술을 받는 판이다. 세상이 온통 눈에 보이는 것에 따라가고 있는 실정이다. 학회에 나가도 마찬가지다. 프로젝터와 영상물을 사용한 발표가 부쩍 늘었고, 예전에는 학회 결과물로 책을 찍었는데 반해 현장에서 갓 구어 낸 CD를 그날 바로 나누어준다. 여기서 잠시라도 한눈을 팔다가 끈을 놓치면 금세 뒤처질 게 뻔한 이치다. 쉰 세대에게는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즘은 비주얼 시대다.’라고 말들을 하니까 그 비슷한 개념이 과거에는 없었던 듯이 생각된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2천년 전, 예수님이 사셨던 시대의 사람들은 비주얼 효과에 대한 개념을 갖고 있었을까? 대답은 ‘그렇다.’이다. 우리는 그 확실한 증거를 루가복음에서 찾을 수 있다. “루가는 일찍이 시청각 교육의 효과를 터득하여 내면적 사건을 외형적 사건처럼 서술하곤 했다. 곧 신앙체험을 드라마로 꾸몄다.”(정양모, “루가복음서 해제”, <200주년 신약성서주해>, 분도출판사, 2001년, 279쪽) 그러면 신약성서의 비주얼 세계로 들어가 보기로 하자.

시각 효과

“성령이 비둘기처럼 보이는 형체를 취하여 당신 위에 내리셨다.”(루가 3,22) 이 구절은 예수님의 성령체험을 묘사한 마르 1,10을 루가가 옮겨 쓴 부분이다. 마르코는 그저 “영이 비둘기처럼 당신에게 내려왔다.”(마르 1,10)고 했는데 루가가 ‘보이는 형체를 취하여’(소마티코 에이데이)라는 표현을 첨가했다. 루가는 ‘비둘기처럼’이라는 마르코 식 표현에 만족 못하고 눈에 비둘기와 같은 형체로 성령이 보였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주지시킨 것이다. 특히, 여기에 나오는 헬라어 ‘에이데이’는 ‘호라오’(보다)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인 ‘에이도스’의 3격이라 루가의 의도를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다. 성령이 우리 눈으로 그 형체를 근사하게 알아 볼 수 있게 예수님한테 내려왔다는 뜻이다. 이와 비슷한 예를 한 가지 더 들어보자.

어느 날인가 예수님이 평소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한 일이 있었다.

마르 9,2-3: 그리고 엿새 후에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나서시어 그들만을 따로 이끌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으니, 그 옷은 이 세상의 어떤 마전장이도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번쩍였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러더니 갑자기 세상 어떤 발광체보다 환한 빛을 냈다. 인간이 失明하는 빛의 온도가 보통 2천도라고 하니까 눈이 멀지 않기 위해서 제자들은 땅에 엎드리는 게 상책이었을 것이다. 바울로의 눈에 들어왔던 빛의 충격이 아마 그 정도가 되었을지 모른다. 예수님이 스스로 빛을 내셨다는 것은 평소에 지니셨던 인간의 모습을 떨쳐내고 당신의 원 모습을 보이셨다는 뜻으로, 바로 하느님과 같은 초월적인 모습을 드러내신 것이다. 눈부시게 빛나는 ‘흰 옷’은 천상의 존재를 암시하는 도구로 묵시문학에서는 하느님과 천사들과 종말에 부활할 의인들이 흰옷을 입는다고 한다(다니 7.9;16,5;사도 1,10;계시 4,4;7,14 등등).

루가는 거기에다 “얼굴이 딴 모양이 되었고”(루가 9,29) 라는 말을 덧붙였다. 여기서 ‘딴 모양’은 헬라어로 ‘토 에이도스 헤테론’인데 앞의 ‘보이는 형체를 취하여’(루가 3,22)의 ‘에이데이’와 같은 명사이다. 역시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묘사하려 했던 복음서작가의 의도가 돋보인다.

그 외에도 루가복음의 여러 곳에서 같은 경향을 읽어볼 수 있다. 환하게 변화한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었던 모세와 엘리아를 구름이 감쌌다는 보도(마르 9,7)에 루가는 “그들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자”라는 구절을 덧붙여 變貌산에서 벌어진 사건의 추이를 좇았으며, 루가의 또 다른 작품인 사도행전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구름이 감싸 그들(제자들)의 사야에서 사라지게 했다.”(사도 1,9)고 한다. 특히, ‘시야에서(아포 톤 옵살몬) 사라짐’은 시각적인 상태를 세심하게 고려한 표현이다.

루가는 자신이 쓴 복음서를 통해 시각적인 효과를 최대한 살리려했다. 그는 인간의 눈을 사로잡을 때 극적인 설명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그런 깨우침을 복음서 곳곳에 담아두었다. 독자를 위한 자상한 배려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루가의 편집 작업은 그 정도까지였다. 예수님의 직제자들로부터 전달받은 예수 전승을 다루었기에 그가 설혹 시각효과를 살리지 않았더라도 주변의 그리스도인들이 전승 자체에 의심을 품지는 않았을 것이다. 루가복음이 베드로를 수장으로 모셨던 예루살렘 모교회의 전통 위에 굳건히 서 있었던 까닭이다(사도 1-2장 참조).

시각 증언

루가는 예수님을 손에 잡힐 듯한 위치에 두고 공경하는 느낌으로 사건을 전달하려 노력했다. 덕분에 루가의 글은 독자들에게 호감을 주었을 테고 애독자들을 양산했을 것이다. 이는 그리 어긋난 추측이 아닌 것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루가복음은 상당히 인기가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빈자들의 복음’, ‘여성들의 복음’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루가가 시각효과를 노렸던 복음서작가라고 하면 요한은 시각적인 증거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했던 복음서작가라 할 수 있다. 이른바 요한 계 문헌으로 불리는 요한복음, 요한 1.2.3서, 요한묵시록은 인간의 五感, 그중에서도 특히 시각 증언을 중요하게 다루었다.

요한 19,35: 이는 본 사람이 증언한 것이니 그의 증언은 참되다. 또한 그는 여러분도 믿게 하려고 자신이 진실을 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1요한 1,1-3: 생명의 말씀에 관해 알려 드립니다. 그 말씀은 처음부터 계셨으며, 우리가 듣고 우리 눈으로 보고 살펴보고 또 우리 손으로 만졌던 것입니다. 과연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보았으니 증언하며 여러분에게 알려 드립니다…….우리가 보고 들은 그 생명의 말씀을 여러분에게도 알려 드립니다.

묵시 22,8: 나 요한은 이것을 듣고 본 사람이다. 나는 듣고 보고 난 뒤, 이것을 내게 보여 준 천사의 발아래 엎드려 그를 경배하려고 했다.

위의 세 본문을 읽어보면 예수님을 눈으로 직접 본 사람의 증언이라는 사실에 집착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요한 계 교회의 창시자는 흔히 요한복음에 모두 6차례 등장하는 愛弟子(=요한)로 알려져 있다(13,23-26;18,15-16;19,26-27;20,2-10;21,7;21,20-23). 그 본문들을 살펴보면 묘한 공통점 한 가지가 발견되는데, 의도적으로 애제자와 베드로를 비교한다.

요한은 베드로보다 더 가까운 예수의 측근이고(13,23-26), 사회적인 지위도 베드로와 상대가 안됐으며(18,15-16), 예수의 어머니를 모시는 영광을 얻었고(19,26-27), 빈 무덤에 수제자인 베드로보다 빨리 도착한다(20,2-10). 또한 그는 부활 예수를 어느 제자보다 정확하게 알아보았으며(21,7), 죽지 않는다는 소문이 날 정도였다(21,20-23).

요한이 여러모로 베드로보다 뛰어나다는 데서 우리는 안정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요한복음이 씌어질 무렵 베드로 계 교회와 요한 계 교회 사이에 모종의 대립이 있었고 요한 계 교회는 나름대로 정통성을 수립하려했다. 사실 베드로야 자타가 공인하는 명실상부한 1세기 교회의 지도자로, 예수님을 직접 따라다녔으며 부활ㆍ승천 직후 탄생한 예루살렘 모교회의 주축이었다(사도 2,1-12). 그에 비해 요한 계 교회는 기원후 100년경에야 겨우 자리를 잡았고 교회가 자리 잡은 곳도 유다 땅에서 머나먼 에페소(?)였다. 여러 여건을 볼 때 요한 계 교회는 베드로 계 교회에 뒤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요한 계 교회는 스스로의 입지를 굳건히 하기 위해 정통성을 제공할 만한 근거가 반드시 필요했다. ‘애제자’라는 인물은 그런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애제자 요한은 요한학파, 나아가 요한 계 교회의 창립자이다. 또한 그를 통해 요한 계 교회 역시 베드로 계 교회 못지않게 예수와 직통하는 튼튼한 끈을 구축한 셈이었다. 그 애제자가 바로 예수의 일생을 자기 눈으로 직접 보았으며, 본대로 전해준 믿음직한 증인인 것이다.

인식 수단으로서 눈

認識論이 철학의 한 분야로 자리 잡은 지는 그리 오래지 않았다. 18세기 말부터 인식의 문제가 독립적인 학문 분야로 대두되기 시작했는데, ‘주체성을 가진 인간으로서 사물을 어떻게 인식하는가?’가 그 중심에 들어있는 질문이다. 인식론과 관련된 철학용어들로 경험론, 실재론, 관념론, 보편타당성, 회의주의, 상대주의 등등이 떠오른다. 예수님 시대에 ‘인식론’이라는 학문 용어는 물론 없었겠지만 인식에 대한 기본적인 관념까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사람들도 인간의 다섯 가지 감각수단인 오감을 활용했을 테고, 그 중에서도 시각적인 인식은 매우 중요한 인식의 기준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신약성서 저자들 중에서 시각에 의존해 예수님 사건을 설명한 대표적인 인물은 복음서작가 루가이다. 그는 시각적인 묘사를 정확히 하면 할수록 예수님 사건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에 도달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애매모호한 표상들을 거부하기에 이른 것이다. 60년대만 해도 사람들은 라디오 연속극에 심취했는데 이제는 목소리가 아니라 시각적으로 확인 가능한 TV 드라마나 영화를 즐기게 된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요한은 루가가 시각효과를 통해 추구했던 사물의 구체화보다 한층 더 깊은 차원에서 예수님 사건을 이해하려 했다. 바로 인식의 문제에 정면 도전한 것이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초월적인 존재의 인식도 눈에서 시작된다. 원래부터 초월적인 존재였던 예수님은 인간의 형체를 입고 세상에 내려왔다(요한 1,14). 그렇게 입고 온 인간의 형체를 직접 바라본 사람들은 인간이 된 하느님을 바라본 경험을 내면화시켜 결국 하느님에 대한 완전한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 예수님을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직접 보았던 애제자 요한은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어느 제자보다 월등한 하느님 인식을 한 사람이다. 따라서 그가 자신의 제자들에게 전해준 경험이 가장 믿음직한 증거가 될 수 있었다.

요즘은 홀로그람이다, 디지털 효과다, 가상현실이다 하여 인간의 ‘눈’도 못 믿는 세상이 되었다. 한 때 인식의 절대기준이었던 ‘눈’이 그만큼 푸대접을 받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百聞이 不如一見이라는 속담도 이제는 코웃음 치며 넘겨야 할 판국이다. 하지만 예수님과 복음서작가들이 활동하던 시절에는 ‘눈’이 최고의 인식수단으로 존중을 받았고, 나아가 눈으로 본 사람의 말에 신뢰를 보낼 수 있었다. 사람을 그만큼 믿던 시대였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예수에게 하느님을 보여 달라고 하자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한다.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요한 14,9)

자고로 눈이 보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