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말씀과 신앙나눔 다행 연중 31주일 설교문 (양지우부제, 노원나눔교회)

다행 연중 31주일 설교문 (양지우부제, 노원나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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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우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으며,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하게 하소서.

 

하바 1;1-4, 2;1-4

시편 119;137-144

2데살 1;1-12

루가 19;1-10

 

예수께서 예리고에 이르러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거기에 자캐오라는 돈 많은 세관장이 있었는데 예수가 어떤 분인지 보려고 애썼으나 키가 작아서 군중에 가리워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예수께서 지나가시는 길을 앞질러 달려 가서 길가에 있는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 갔다.

 

예수께서 그 곳을 지나시다가 그를 쳐다보시며 자캐오야, 어서 내려 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하고 말씀하셨다. 자캐오는 이 말씀을 듣고 얼른 나무에서 내려 와 기쁜 마음으로 예수를 자기 집에 모셨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 사람이 죄인의 집에 들어 가 묵는구나!” 하며 못마땅해 하였다.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 저는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렵니다. 그리고 제가 남을 속여 먹은 것이 있다면 그 네 갑절은 갚아 주겠읍니다하고 말씀드렸다. 예수께서 자캐오를 보시며 오늘 이 집은 구원을 얻었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사람들을 찾아 구원하러 온 것이다하고 말씀하셨다.

 

자캐오야, 어서 내려 오너라.”

 

#1.

키 작은 세관장 자캐오는 돌무화과나무에 올라 군중에 둘러싸인 예수님을, 멀리서 바라봅니다. 그는 예수를 둘러 싼 사람들처럼 열정을 가진 이는 아닙니다. 예수님께 간절히 청할 일도 없습니다. 새로운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라는 기대도 없습니다. 그저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회자되던 예수라는 인물에 대한 궁금증을 품고 있었을 뿐입니다.

 

자캐오는 여러분께서 들으셨듯이 로마제국이 통행세, 조세, 관세를 거두기 위해 직접 고용한 유대인들, 즉 세리 중에서도 우두머리인 인물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를 로마에 바치는 세금 중 일부를 가로채 부자가 된 부도덕한 인물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죄인이라 힐난하지요. 자캐오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세금을 걷으며 그들의 한 복판에서 살았지만, 어느 누구와도 함께하지 못하는 외딴 섬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재산도 많을뿐더러,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도 없던 자캐오의 눈에는 예수 곁에 모여 소란을 피우는 사람들이 가소로울 뿐입니다. 그가 나무 위에 오른 것은 단지 궁금증, 사람들의 피땀어린 소출을 가로채다 보니 생긴 몇 가지 질문들 때문이었을 겁니다. “내 동족의 소출을 가로채는 나는 누구일까”, “내 손에 가득한 이 재물은 내게 무슨 의미일까”, “나도 언젠가 죽게 될 텐데 이 재물이 무슨 소용인가”, “내 삶의 의미는 뭘까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그의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습니다.

 

군중에 둘러쌓였던 예수님께서는 뜻밖에도 사람들을 냉소하던 자캐오, 마음 속에 질문들을 품고 있던 자캐오를 부르십니다.

 

자캐오야, 어서 내려 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갑작스러운 이 제안에 자캐오는 화들짝 놀라, 나무에서 내려왔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예수님이 저 죄인과 어울린다라고 수군거릴 때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하였지만, 그는 용기를 냈습니다.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모시고 나서, 자신이 낼 수 있는 모든 정성을 다하여 예수님을 대접했을 겁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중 잃어버렸던, 즉 다른 사람들이 외면했던 사람들에게 으레 그러셨듯이 자캐오에게 따듯한 위로를 건네고, 그와 함께 식사를 나누셨을 겁니다. 다정하게 건네는 예수님의 이야기에 자캐오의 마음 속에 자리잡았던 경계심과 냉소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자캐오는 예수님께 자신이 궁금해하던,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질문들을 용기내어 꺼냈을 것이고,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해 다정하고 최선을 다해 대답해 주셨을 겁니다. 예수님과의 대화 속에서 자캐오는 신앙하는 사람”, “하느님을 온전히 만난 사람으로 한 뼘 더 자라납니다.

 

#2.

교우 여러분, 자캐오가 회심하는 이 짧은 이야기는 잃어 버렸던 사람들, 당시 종교에서 배제되었던 사람일 수도 있고, 종교 자체에 회의하거나 냉소하는 사람일 수도 있겠습니다. 자캐오로 대표되는 잃어버린 사람들을 다시 찾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말해, “신앙이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더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종교인이 되는 그 시작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종교학자들은 어떤 사람이 종교에 속하게 되는 과정을 설명해보려 애써왔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라 여러 종교인들의 회심, 회개, 참회의 과정과 그 이후의 신앙하는 삶에 대해 연구해왔습니다. 그 과정의 대략적인 그림은 이러합니다.

 

우선 어떤 사람에게 일상을 뒤흔드는 사건, 계기, 경험이 일어납니다. 배우자와의 이별일 수도 있겠고, 가족이나 친구의 죽음, 예기치 못한 사고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기쁜 일일 수도 있지요. 잔상이 오래 남는, 그래서 여러 번 곱씹게 만드는 그런 일말입니다.

 

이 경험을 한 사람들은 단지 겪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물음, 질문들을 갖게 됩니다. 사람으로서 갖게 되는 근본적인 종류의 것들이지요. “나는 누구인가에서 시작해, “나는 행복한가, 행복의 의미는 무엇일까”, “죽음이란 무엇일까”, “죽음 후의 삶은 어떤 것일까까지 뻗어나가는 이 질문들은 답을 찾아 고민하고 헤매게 합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관심이 많을수록, 답을 찾으려는 사람의 노력은 치열해집니다.

 

그리스도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들은 이 질문들에 대해 답합니다. 신화와 시, 이야기, 역사 등을 통해 나름의 대답을 전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의 질문을 듣고, 그에 답하면서 형성된 종교들은 사람들의 질문만큼 풍성한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종교에서 전해진 이 답은 답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의 삶으로 녹아듭니다. 그 답을 토대로 자신의 삶을 다시 살피게 됩니다. 여기서 주의하실 것은, 종교가 건네 준 답이 있다 해도 사람들의 질문은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묻고, 답을 찾는 과정을 그 종교 안에서도 이어갑니다.

 

물음과 대답, 그리고 답을 통해 스스로를 갈고 닦는 수행의 과정이 깊어질수록 사람들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지금까지 살아 온 삶을 돌이켜, 조금 더 온전하고, 조금 더 뜻 깊은, 조금 더 인간다운 삶을 위해 자신을 돌이킵니다. 그리스도교 교회가 말하는 회심, 참회, 회개는 자신의 삶을 돌이킨다는 뜻입니다. 자신을 돌이키는 일은 한 번에 이루어지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국면을 따라 반복되어 행해집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자신을 갱신해갑니다.

 

스스로를 다듬고, 돌이키며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이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을 다른 이들에게 나누게 됩니다. 이제껏 허약한 나를 지키기 위해 불안하고 분주하게 움켜쥐기만 했다면, 신앙하는 사람들은 이제 다른 이들의 가난, 공허를 채우기 위해 스스로의 것을 나누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