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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드높이 주를 향하여(부활 7주일, 승천주일 최도미닉 신부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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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7주일. 승천주일)

마음을 드높이 주를 향하여

 

트리나 풀러스가 쓴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아름다운 동화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줄무늬 애벌레가 알에서 깨어납니다.

줄무늬 애벌레는 조금 씩 커가면서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 끝까지 솟아있는 커다란 애벌레 기둥을 보게 됩니다.

그는 거기에서 자기가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수많은 벌레들 사이에 끼어 그들과 싸우면서 기둥을 오릅니다. 이 때 줄무늬 애벌레는 한 노랑 애벌레를 만나게 됩니다.

 

노랑 애벌레는 이 길을 포기하고 자신과 함께 나비가 되자고 합니다. 그러나 줄무늬 애벌레는 이 길을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마침내 기둥 꼭대기에 오릅니다. 그리고 사방을 둘러보고는 깜짝 놀랍니다. 자신이 올라왔던 똑같은 기둥들이 수천 개나 늘어서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가 오른 것은 수천 개의 기둥 중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이 때 한 마리의 나비가 날아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줄무늬 애벌레는 비로소 깨닫습니다. 자신도 저 나비처럼 되야 한다고, 나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꽃들에게 “생명의 탄생”이란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은 나비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작가는 우리에게 나비가 되라고 합니다. 벌레의 모습에서 나비가 되어 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아름다운 희망이라고, 가장 가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변화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승천을 바라보는 날입니다. 승천은 트리나 풀러스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 모두가 한 마리의 나비가 되어 이 세상에 희망과 생명을 주는 존재가 되라는 메시지처럼 들립니다.

예수님은 부활 후 40일 동안 이 지상에 머무셨습니다. 그리고 40일째 되는 날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장엄하게 하늘로 오르신 것입니다. 왜 주님은 조용히 하늘로 오르시지 않고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을까요? 자, 이제 승천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의미를 되새겨 보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선, 우리가 차지할 영광이 얼마나 놀랍고 큰지 보입니다.

하늘은 우리가 차지할 영광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이 하늘로 가야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실 때 “아버지, 아버지께서 나에게 맡기신 사람들을 내가 있는 곳에 함께 있게 하여 주시고 … 나에게 주신 그 영광을 그들도 볼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승천을 통해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릴 하느님의 영광을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우리가 누릴 영광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나요. 바울로는 “성도들과 함께 여러분이 물려받을 축복이 얼마나 놀랍고 큰 것인지 알게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에페1:18)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에게 주실 그 영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기억하십시오.

요한 계시록을 보면, 요한은 7교회에 대하여 말하면서 언제나 끝마무리는 성도가 누리게 될 영광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에페소 교회를 향해 첫 사랑을 회복하라, 그러면 “하느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 열매를 먹게 하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스미르나 교회를 향해서는 고통을 당해도 죽기까지 충성을 다하라, 그러면 “생명의 월계관을 너에게 씌어 주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베르가모 교회를 향해서는 우상을 섬기던 삶을 버리고 하느님의 이름을 경외하라, 그러면 “감추어 두었던 만나를 주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티아디라 교회를 향해서는 사랑과 믿음과 봉사와 인내의 짐을 져라, 그렇게만 한다면 각각 행한 대로 갚아 줄 것이며 또한 샛별을 주겠다고 하십니다.

지금 이들은 믿음을 엄청난 박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사자 굴에 던져지기도 하고, 화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 믿음을 지켰고, 그 믿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어떻게 그 박해를 견디어 냈으며, 그 믿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까? 그들은 자신이 받을 영광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낙원에서 생명나무 열매를 먹으리라는 확신을 가졌고, 생명의 월계관을 쓰게 되리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우기가 받을 영광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받을 영광을 모르는데 어떻게 우리가 이 십자가를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까?

주님은 분명히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믿고 따르기만 하면 부활과 생명을 은혜와 축복으로 주겠다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는 죽어도 사는 축복이 있습니다. 주님의 강한 힘이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고, 우리의 모든 관계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때문에 바울로도 우리가 물려받을 축복이 얼마나 놀랍고 큰 것인지를 알고, 우리 믿은 사람들 속에서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기”(에페1:17-19)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영생의 축복이 있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주십니다. 묵시록의 교회들에게 약속했던 그 영광을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 주십니다. 우리도 먹습니다. 만나를 먹고, 생명나무 열매를 먹고,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됩니다.

 

다음으로 그 영광을 위하여 우리가 바라 보아야할 곳을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감사성찬례 때마다 “마음을 드높이 주님께 올립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지향하는 곳은 세상이 아니라 언제나 하늘입니다.

그런데 성서가 말하는 ‘하늘’이란 장소가 아닙니다. 비행기를 타고 오를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죽으면 가는 그러한 극락이나 천당도 아닙니다.

성서가 말하는 하늘은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하느님의 뜻입니다. 때문에 하느님의 마음을 알고 그 뜻을 알면 하늘이 보입니다.

주님은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라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품으면 하느님의 나라가 옵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를 여기저기 찾아다닐 필요는 없습니다. “하늘나라는 너희의 마음속에 있고, 너희들 가운데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조상도 이 하늘을 보는 진리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명심보감 천명편 을 보면 “하늘은 푸르고 푸르기만 하다.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하늘을 찾을 길이 없다. 그렇다면 하늘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하늘은 곧 사람의 마음 속에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오르신 하늘은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늘이 아니라 바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하늘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로 세상을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볼 수 있는 하늘이 진짜 하늘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육체적인 욕망을 죽이고 하느님의 마음을 품어보십시오. 그러면 하늘이 보입니다.

 

때문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있는 마음은 하느님이 열어주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열어 하늘을 볼 수 있게 하시는 분은 바로 성령이십니다. 때문에 성령께서 오실 관문인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예루살렘은 어디일까요? 바로 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세워주신 새 예루살렘입니다. 성례전이 이루어지고 말씀이 선포되는 곳, 기도하는 집인 바로 주님의 몸 된 교회입니다.

 

하느님은 이 교회를 세우시고 “당신의 눈과 마음을 그 곳에 두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열쇠를 주셨습니다. 이곳에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고 이 곳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권세의 천신과 세력의 천신들까지도 교회를 통하여 하느님의 무궁무진한 지혜를 알게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교회를 통하여 “영적인 지혜와 통찰력”을 갖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알게 되고 또 우리 마음의 눈이 밝아져서 우리가 무엇을 바랄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물려받을 축복이 얼마나 놀랍고 큰 것인지를 알고, 우리 믿은 사람들 속에서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기”(에페1:17-19)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승천의 핵심은 교회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문을 열어 주시기 위해 당신의 핏 값을 치르고 세우신 이 성전이 얼마나 소중한 곳인가를 깨닫고 그 교회를 사랑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 성전에서 하느님의 마음을 느끼고, 하늘나라의 소망을 키워 가야 합니다.

 

셋째, 주님은 승천을 통해 제자들의 새로운 사역이 시작되었음을 알려 주셨습니다.

주님은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사람을 들을 향해 “너희는 왜 여기 서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가서 이 모든 일의 증인이 되라고 하십니다.

“아버지 이 사람들이 진리를 위하여 몸을 바치는 사람이 되게 하여주십시오. 아버지께서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나도 이 사람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요한17:17-18) .

 

이처럼 승천은 주님의 사역의 단절이 아니라 주님이 하신 일을 증언하는 새로운 소명을 주신 자리입니다. 예루살렘과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주님을 증거 하는 증인이 되는 소명을 갖는 자리입니다. (사도1:8)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주신 이 비전을 꿈꾸며 그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를 온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아버지께서 맡겨 주신 일을 다 하여 세상에서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신 것처럼”(요한17:5)우리도 주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다 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심판이 보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심판이 있음을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솔로몬의 지혜서의 핵심은 하느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꼭 기억해야 할 것 있습니다. 그것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심지어 남몰래 한 일까지 심판에 붙이신다는 사실을 명심하라”(전도14:11)는 말씀이었습니다.

 

참된 믿음의 길을 가려면 영광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판도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원수인 악마가 으르렁대는 사자처럼 먹이를 찾아 돌아다닐 때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악마를 대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꽃들에게 희망을 주는 나비가 되어보면 어떨까요? 이제 승천의 영광을 바라보며 세상과의 싸움에서 결코 주저앉거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려갈 길을 달려가는 성도가 됩시다. 그리고 마침내 주님과 함께 아버지의 영광을 차지하는 성도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 이제 저는 달려갈 길을 다 달려왔습니다. 이제는 승리의 월계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확신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