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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배를 드리는 자의 축복(맥추감사주일, 최도미닉 신부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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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13주, 맥추감사주일)/신명26:1-11, 히브11:1-4, 마태6:25-33

맏배를 드리는 자의 축복

 

하느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명하시기를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첫 추수를 하게 되면 반드시 시켜야할 규정이 있는데 그것은 “맏물을 바치는 맥추절”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출애23:16)

 

맏배란 소출의 첫 열매를 말합니다. 첫 소출을 바치며 감사의 축제를 바치는 행위는 농경문화를 가진 가나안 사람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축제였습니다. 그들은 첫 소출을 신께 바치며 감사를 드리고 다음 해에는 더 많은 소출을 달라고 기원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유목민이었습니다. 유목민이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첫 소출을 바치는 축제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출애굽을 하여 가나안 땅에 도착하면서 삶의 환경이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이곳에서 가나안 족속들처럼 농사를 지어 첫 소출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 때문에 하느님 앞에 감사의 축제들를 드리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바치는 축제는 가나안 사람들이 드렸던 축제와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첫 곡식을 바치는 맥추절을 지키면서 삶의 우선순위를 생각했습니다.

 

사업하는 사람에게 우선순위가 무엇일까요? 공부하는 학생에게 우선순위는 무엇일까요? 부모에게 우선순위는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사업하는 사람에게 우선순위는 성공하는 것입니다.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부하는 학생에게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에게 우선순위 아마 자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람은 이 우선순위에 따라 삶을 결정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우선순위는 하느님이십니다. 사업을 하건, 공부를 하건, 자녀를 양육하건 우리에게는 언제나 하느님이 먼저입니다. 때문에 주님은 “먼저”하느님의 의를 구하라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알고, 그 분을 선택하는 것이 모든 축복과 생명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합니다. 100살만에 얻은 아들, 자신의 생명보다 귀한 아들입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은 하느님을 선택하든지, 아니면 아들을 선택하든지 결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는 언제나 삶의 우선순위에서 하느님이 먼저였습니다.

그런데 놀랍지요. 아브라함의 이 선택은 축복이었습니다. 이 선택을 통해 아브라함의 축복의 조상, 믿음의 조상이 됩니다. 그리고 이 선택은 이삭을 축복의 아들이 되게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하는 모든 일이 축복을 받게 됩니다.

도시에 가도, 시골에 가도, 사막에 가서도 축복을 받았습니다. 들어가도 축복을 받았고, 나가도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우선순위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맨 먼저 선택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갖는 것입니다.

 

저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먼저”라는 말처럼 소중한 말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우선순위를 지키는 것이 신앙을 지키는 핵심입니다. 이 우선순위를 지키는가, 지키지 못하는가에 따라서 처음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처음 이 되기도 합니다.

 

요즘 우리는 신앙의 위기 속에 살고 있습니다. 경제가 발전하고 여가 생활이 늘어나면서 우선순위가 바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찾기 보다는 세상 것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묘하지요. 말라기의 말씀이 그대로 들어맞고 있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섬겨 보아야 쓸데없는 일이다. 그의 분부를 지켜보았지만 무슨 소용이 있더냐?”

 

지금 이 말씀은 믿음이 없는 이방인들을 향해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믿음의 백성들이 우선순위를 잃고 방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우선순위를 잃어버린 이스라엘은 멸망의 길을 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이런 세대를 향해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나를 공경하고 내 이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 있다. 나는 이들을 내 이들을 내 책에 적어 두고 잊지 않으리라.”

 

하느님을 선택해야할 우선순위를 잃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느님 앞에 우리의 첫 열매를 바치는 맥추절을 지킵니다. 우리는 이 첫 열매를 하느님께 드리며 축복의 근원이 하느님께 있음을 고백하고, 삶 속에서 언제나 하느님께 우선순위를 두겠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우선순위를 통해서 우리가 얻는 축복은 무엇일까요?

 

우선, 맏배는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게 합니다.

구원은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고 싶다면 반드시 지켜할 규칙이 있습니다. 우선순위를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담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아들들은 장성해서 농사도 짓고 가축도 길러서 각자가 하느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지만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창세기는 그 이유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11장 4절 말씀을 보면 아벨이 “믿음으로 카인의 것보다 더 나은 제물을 하느님께 바쳤다”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벨은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는데 카인은 믿음으로 드리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드렸다는 그 근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맏배에 있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되 맏배를 드렸느냐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가인은 “땅에서 난 곡식을 예물로 드렸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벨은 아니었습니다. 아벨은 “양떼 가운데 맏배의 기름기를 드렸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예배는 첫 열매였습니다. 맏배를 드리는 믿음이 아니고는 그 믿음을 지켜갈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 예배를 위해 나의 첫 시간을 드립니까? 이 시간이 내 생애에 최고의 시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한 목사님이 하는 이런 간증을 들었습니다. 한 번은 신자에게 냉면을 대접 받았는데 시장한 터에 기도하지 않고 먹었다고 합니다. 그 목사님은 그 다음부터 그 냉면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음식의 맛이 하느님을 향한 마음을 빼앗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참으로 부러운 신념이라 생각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믿느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믿는 자에게는 이 산을 옮겨서 저 바다에 빠져라 해도 그대로 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믿음이 없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믿음이 있을 때 구원에 대한 확신도 생기고, 하느님의 치유도 일어나고, 그 능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믿음이 생겨날까요? 맏배를 드리는 삶을 통해서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된 믿음의 길을 가려면 맏배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첫 열매는 대속의 제물입니다.

출애굽을 할 때 하느님은 에집트의 맏배를 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이것은 맏배를 드리지 아니고는 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야말로 모든 사람 중에 장자가 되셨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맏배의 본이 되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맏배이신 그 아들을 십자가의 제물로 바치신 것입니다. 이처럼 맏배는 대속의 제물입니다.

 

저는 십자가를 볼 때마다 주님이 왜 우리의 맏배가 되셨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이 고난의 잔을 피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님은 자신의 뜻이 먼저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먼저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장자로 사는 길, 대속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 싶다면, 우리는 기꺼이 주님처럼 맏배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셋째, 첫 열매는 축복의 제물입니다.

잠언 3장 9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네 소유를 바치고 땅에서 난 맏물을 드려 야훼를 공경하여라. 그러면 네 곳간이 가득 차고 네 술틀에서 햇포도주가 넘쳐나리라.”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맏배는 축복의 근본입니다.

 

이삭은 눈이 어두워지고 늙어서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에사오를 불러, 사냥을 해서 별미를 만들어 오라고 합니다. 그 별미를 먹고 나서 복을 빌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리브가가 이를 엿듣고는 야곱을 불러 뒤뜰에 가서 수염소 한 마리를 끌고 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별미를 만들어 야곱으로 하여금 축복을 받게 합니다.

에사오도 야곱의 뒤를 이어 별미를 만들어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나중에 가져온 에사오에게는 복을 빌어 주지 않았습니다. 좀 늦었으면 어떻습니까? 복을 빌어 준다고 잘못될 것도 없는데 이삭은 단호했습니다. 에사오는 눈물을 흘리며 복을 빌어달라고 애원하였지만 결국 이삭은 그 어떤 복을 빌어주지 않았습니다.

왜 똑 같은 별미를 만들었는데 어떤 것을 복을 받았고, 어떤 것을 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 비밀은 바로 맏배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말합니다. 야곱이 어머니 리브가와 짜고 사기를 쳤다고, 아닙니다. 하느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짜고 한 것을 모르시고 축복을 주실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분명하신 분이십니다.

맏배를 버린 에사오에게는 그 어떤 축복도 허락 치 않으시는 분이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맏배를 드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끝으로 맏배를 드릴 수 있는 사람만이 믿음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에사오는 축복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그 장자권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우선순위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사냥을 하고 배가 고팠습니다. 그런데 마침 야곱이 팥죽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에사오는 야곱에게 팥죽을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팥죽을 줄 테니 장자권을 팔라는 것이었습니다. 에사오는 장자권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배가 고팠던 에사오는 결국 야곱에게 장자권을 주고 팥죽을 먹었습니다. 배고픔이란 현실 때문에 삶의 우선순위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결국 에사오는 하느님의 장자였지만 우상을 섬기는 에돔의 조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주여, 주여 한다 해도 우선순위를 잃게 되면 우상에 빠지게 됩니다.

여러분은 누구의 조상이 되시겠습니까? 아브라함의 조상이 되시겠습니까? 아니면 에돔의 조상이 되시겠습니까? 우리는 축복을 받고, 축복을 줄 수 있는 조상이 되야합니다. 그렇다면 맏배, 곧 삶의 우선순위를 하느님께 두는 성도의 삶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맥추감사 축제는 단지 첫 열매를 주셨으니 감사하는 그런 축제가 아닙니다. 하박국의 말씀처럼 열매가 없어도 외양간에 소가 없어도 우리는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맥추감사는 맏배를 기억하는 축제입니다. 맏배를 드리는 삶을 통해 우리가 간직해야할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누릴 축복이 얼마나 놀랍고 큰지를 기억하고 선택하는 축제입니다. 내 삶의 맏배를 드릴 때 우리는 하느님과 하나가 될 수 있고, 성령으로 충만할 수 있으며, 하느님이 주시는 넘치는 축복과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맥추감사 축제를 통해 야곱이 선택했던 그 지혜로운 선택이 우리 삶 속에서 늘 이루어지기를 축원드립니다. 아멘.

■ 죄의 고백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제물을 바치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가족 된 우리가 먼저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라라 하셨으니 다함께 우리의 죄를 고백합시다.

 

■ 평화의 인사

평화를 위해 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서로에게 평화를 기원합시다.

 

■ 봉헌기도

창조주 하느님, 주님의 선하심으로 이 땅에서 거둔 첫 열매를 주님께 바치오니 축복하시고, 주님께 바치는 이 예물이 생명과 구원의 예물이 되게하소서.

 

■ 감사 서문 축문

우리가 드리는 맏배의 삶을 통해 더욱더 주님을 사랑하게 하시고,

주님의 은총 안에 머무는 삶을 살아가게 하시나이다.

 

■ 영성체후 기도

거룩하신 하느님, 우리가 생명의 빵과 구원의 잔을 받았나이다. 비오니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뜻에 맞는 말과 행실로 주님을 합당하게 섬기고, 삶의 맏배를 드림으로 주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게 하소서.

 

■ 축복문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원한 영광으로 우리를 부르신 은혜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변함없는 믿음으로 굳세게 하시며, 전능하신 하느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여러분에게 강복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