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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감염을 퍼뜨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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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감염”을 퍼뜨리는 일



상식적인 마케팅 원칙이 있다고들 한다. 20/80 파레토의 원칙이라고 하나? 전체 매출의 80%는 결과는 20%의 고객에 의해서 마련된다는 것이다. 이 원칙을 여러 조직 원리에도 적용하곤 한다. 십수년 전에 영적 멘토링에 관한 책에서도 읽은 기억이 있다. 그럴 듯하다. 누구는 이를 좀더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현실에 적용해서, 주위의 12~15명과 어떤 일을 도모하라고 한다(말콤 글래드웰). 또 세스 고딘이라는 사람은 “First, Ten”이라며 잘 아는 첫 열 사람과 일을 시작하고, 그들이 싫어하면 그 일을 때려 치우고 다시 시작하라고 한다.

우리 교회(성직자 사회나 교회)의 변화에 대한 고민 때문에, 이런 말을 오래 되새긴 바 있다. 그리고 비슷한 실험을 해봤다. 다만 몸이 떨어진 상황에서 제한적으로만 해볼 수 있는 일이었다. 블로깅도 그런 일환이었고, 성공회 카페라는 인터넷 프로젝트도 그런 차원이었다. 그리고 올초부터는 약 12명을 메일링리스트로 묶어서 이런 실험을 해봤다. 글을 묶어 보내기도 했다.

늘 성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마 적절치 않은 탓도, 좋아하지 않는 탓도 있을 것이다. 아니,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 탓에 대놓고 반응하지 못하고 있는지 모른다. 누가 답장하며 격려한 대로, 소리없이 퍼져나가고 있으리라는 생각도 한다.

이 참에 Seth Godin 의 말을 되새기면 이렇다.


  • 열 명을 찾아라. 너를 신뢰해주고 존경하는 사람, 너를 필요로 하고, 네게 귀 기울이는 사람
  • 이 열 사람이 바로 네가 팔아야 할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고, 그걸 원한다.
  • 그들이 그걸 좋아하면, 된 거다. 그들이 그걸 좋아한다면 그들은 다른 10명씩을 네게 소개해 줄 거다.
  • 이걸 반복하라.

그렇게 하고 있다, 고 생각했다. “신뢰와 존경과 필요와 경청”이 핵심적인 요소라고 생각하니 이 점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있다. 그런데 한가지 놓친 게 더 있다는 생각이다. 고딘은 이렇게 덧붙였다.


그들이 좋아하지 않으면,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 접고 새로 시작해라.

노력을 기울인 일을 접는 게 쉽지 않다. 새로운 상품이 어떤 것일지 모르겠다. 우선 놓치고 있던 이 말을 마음에 새기고, 기존에 했던 일들의 메아리는 좀더 기다려야 하겠다.

그 와중에 또 한가지 일을 제안했다. 트위팅에 관한 일이었다. 며칠 전 메일링 리스트에 있는 열 두어 사람에게 새로운 연 트위터를 소개했다.


굳이 트위팅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우리에게 주어진 미디어 도구를 어떻게 이용해 볼까 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우리처럼 열세에 있는 교회가 어떻게 항체로서 “맑은 감염”을 퍼뜨릴까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적어 보냈다.


1. 소회: 지난 몇 주간 괴로웠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때문만이 아니라, 그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그 변두리에서 일어나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교회의 행태(다른 교단을 더이상 나무랄 생각이 없습니다)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 죽음에 대한 애증은 애증대로 남되, 우리가 반성하고 성찰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 점은 그동안 블로그에 적었습니다.

2. 우리 교회에 대한 사태 판단: 우리 교회는 현재 어떤 위기로 치닫고 있고, 그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소위 한국식 “복음주의”라는 개신교 사고 방식과 행태에 물들고 있다는 것이고, 이른바 성공회 전통주의자라는 분들도 애초에 성공회의 정신과 그 정체성에 대한 이해가 얕아 권위주에만 기대고 있으니, 성공회의 존재 이유가 희미해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부정적 임계점을 넘으면 걷잡을 수 없습니다. 우리 성공회는 이미 이를 넘어섰나요?

3. 사회와 교계의 미디어 문제: 우리 의식을 지배하는 것은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언”과 “론”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 사회와 교회를 휘감고 있는 이 ‘언’과 ‘론’은 생명을 앗아갈 만큼 위험한 것들입니다. 특히 교회는 이러한 잘못된 사고 방식을 퍼뜨리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한국 사회에 대한 한국 교회의 영향력을 저는 그동안 과소평가했던 것 같습니다. 긍정적인 영향을 찾다 보니 그랬는데, 너무 악랄할 정도로 악영향을 끼쳤습니다. 거기에 우리 교회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요? 오히려 예전보다 더 숨죽이고 있지요. 교회 안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신교/천주교의 수구적인 사고 방식과 잘못된 생각들이 여러 미디어들을 통해 퍼지고 있습니다. 겉잡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대응할까요?

4. 죽은 이에게 기대어: 제 블로그와 성직자 카페에도 인용해 올렸지만, 죽은 이에게는 또 다른 유언이 있었습니다. 행동 전략에 관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미디어에 관한 것입니다. 올바른 가치를 퍼서 나를 그릇에 관한 것이고, 그 내용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떠돌거나 지배하는 신앙적 담론들은 성공회적이지 않거나, 아예 그리스도교적이 아닌 것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그대로 노출되어 거기에 세뇌당합니다. 그러니 새로운 운동은 ‘바른 말과 사고 방식과 성찰’을 퍼뜨리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감염”됩니다. 잘못된 것에 감염되었다면, 그걸 차단하는 것만으로는 역부족입니다. 특히 한국 성공회의 처지로서는 차단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항체를 만들어야 하고, 바른 것으로 고쳐서 “맑은 감염”을 퍼뜨려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에 감염된 사람으로 예수를 감염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5. 대안은?: 지금까지 혼자서 여러 짓을 했습니다. 몇몇 분들도 다른 식으로나마 합세했습니다. 그러나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별로 신통치 않습니다. 그래도 계속해 볼 작정이고, 또 다른 방법도 강구할 것입니다.

그동안 감당못할 일에 너무 많은 힘을 쏟았나 싶다. 그래서인지 소홀한 것도 많았다. 누구 말대로 정신 팔지 말고 잠자코 앉아서 책상물림만 할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든다. 가족에게 미안하다.

그러면서, 괜히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진보적이고 능력있고 연륜있는 많은 이들은 뭐하고 있는걸까 하고 먼 하늘 바라보며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들 나름대로 고초가 많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들이 앉아 있는 ‘자리’에 오히려 지배받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저 잡념이다.

 

<주낙현신부 블로그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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