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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인의 날, 설교문 (이쁜이 사제, 원주나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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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세신앙: 삶은 끝이 있어 아름답다.

 

다니 7:1-3, 15-18

에페 1:11-23

시편 149

루가 6:20-31

 

#1.

오늘 감사성찬례와 설교는 모든 성인들을 기리는 날인 111일인 대축일을 옮겨서 지킵니다. ‘핼로윈 데이 이브’ 1031일에는 흔히들 아이들이 귀신이나 악마 분장을 하고 돌아다니며 “trick or treat(과자를 안주면 장난칠거야)”라고 외치는 날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1031일 할로윈 이브가 되면 호박을 귀신처럼 파서 문 앞에 걸어놓아 귀신이 들어오는 것을 막습니다. 저 세상으로 가기 전에 머물 몸을 고르는 귀신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무서운 분장을 하고 다닙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귀신이 들어올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풍습에도 새해 정월이 되면 귀신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문에 체를 걸어놓습니다. 그러면 체의 구멍을 세다가 날이 밝아와 귀신이 집안에 들어오는 것을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할로윈 데이처럼 아주 귀여운 생각입니다. 켈트족의 새해는 111일에 시작됩니다. 겨울이 주로 지배하는 북아이랜드 쪽 지방의 사람들의 정서라서 그런가요. 켈트족은 그렇게 겨울이 다가오는 시기에 태양의 시간이 끝나고 어둠과 추위의 시간이 다가온다고 생각했습니다.

 

 

#2.

우리는 음력 1월 겨울 끝, 봄의 시작에 새해를 기리던 것과는 다릅니다. 하지만 모두들 새해를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할 일이 귀신에게 정신을 빼앗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공통점입니다. 정신을 잃는 것은 진짜가 아닌 유령이나 혼들에게 영을 빼앗기는 것이고 이를 막기 위해서 새해가 되면 몸과 마음을 새롭게 가지고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도 이를 받아드렸습니다. 모든 악령들에게서 유혹을 거두고 첫 해가 밝아오는 그날, 111일을 모든 성인들의 날로 기억합니다. 삶 속에서 끝나지 않는 유혹을 물리치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그 날, 모든 성인들을 떠올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거룩한 죽은 이들입니다. 그들의 삶은 우리들에게 버팀목이 되며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해 답을 줍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삶의 가치를 놓지 않는다면 큰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냥 사는 것, 그 너머의 거룩한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3.

귀신은 발에 땅을 디디지 않고 살아가며 사실 실체가 없습니다. 머리로만 살며 존재하지 않는 것인데 나를 지배합니다. 누구나 성장 과정 속에 귀신을 이기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무서운 것을 물리치는 것은 용기로만 가능합니다. 이처럼 담력을 키우는 것이 성장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 방법을 배우지 못하면 심약해지거나 정신분열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진짜가 아닌 것들에게 영혼을 팔고 사는 이들을 어른들 사이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신앙으로 말하면 헛된 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종교적으로 뿐만 아니라 세상적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성공회 선교 정신에 불의의 저항을 담고 있기도 한 것입니다.

 

세례 때 우리가 악마의 유혹을 멀리하고의 의미는 사실 이 의미이기도 합니다. 나를 구원할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신앙의 여정인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성인들의 날을 기리는 것은 우리의 지향점을 헛된 것이 아닌 거룩함에 두기 위함입니다. ‘창조의 본연의 뜻에 접촉하는 것이야 말로 나의 존재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성인들은 그 뜻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했기에 그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길을 택했습니다.

 

 

#4.

모든 성인들의 날 다음날, 112일은 모든 별세자의 날을 지킵니다. 연달아 죽음에 대해 기리다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삶을 더욱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삶의 유한성, 곧 죽음을 돌아보게 한다는 것입니다. 성공회는 죽음을 기억하는 교회입니다. 매 감사성찬례와 공기도 시간에 별세자를 위한 기도를 드립니다. 성무일과의 기도들은 별세한 신자의 영혼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평안히 쉬게 하소서로 끝납니다. 성공회에서는 죽음을 우리들의 신앙의 기반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것에는 의도가 깔려있습니다.

 

우리들의 삶이 유한하다는 것입니다. “모든 삶은 끝난다고 고백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죽음을 기억하는 유가족들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서로는 하나이기에 누군가의 죽음을 본다는 것은 우리가 죽는다는 것을 알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을 기억하는 우리들의 신앙으로 우리는 한 걸음 더 나갈 수 있습니다.

 

 

#5.

최근 일련의 대통령을 둘러싼 엄청난 이야기들을 통해 과연 사람의 삶이 얼마나 망가질 수 있는가에 대해 같이 떠올려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가치를 포기했다. 거기에 헛된 것이나 주술에 영혼을 맡긴 몰락하는 대통령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것이 있다고 믿고 쫓기에 문제들이 발생하는 문제들을 맞이하는 것을 지켜봅니다. 정신이 나간 상태가 맞는 것입니다. 최근에 보니 신천지와 대통령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단은 내가 영원할 수 있다고 속입니다. 그것이 아름답고 결코 죽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우리들의 신앙은 그렇지 않습니다. ‘끝이 있다그것으로 신앙을 키워가며 기도합니다. 아름다운 것이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꽃이 떨어져야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씨앗이 땅에 떨어져 썩어야 1020배의 다른 생명이 태어납니다. 나누는 기적을 통해서만이 오천명을 살릴 수 있다고 배우는 것이 우리들의 신앙입니다.

 

 

#6.

예부터 이야기 속에서 불로장생을 욕심내는 왕이나 권력자들은 모두 그 욕심이 하늘을 찌르며 남을 이롭게 하지 않았습니다. 불로장생을 내는 귀한 것들에 욕심을 내고 그것들을 남에게 주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죽이고 피폐하게 했습니다. 그런 일들이 현실 속에서도 일어납니다. 실패하지 않으려는 욕심은 져 본적이 없는 이들이 편법으로라도 권력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아름답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라고 선포한 까닭은 그들은 유한하고 실패의 가능성으로 열려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부요한 사람들처럼 불행하지 않으며 복음 말씀의 끝부분처럼 남에게 받고 싶은 데로만 베풉니다

 

내 것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고 나의 한계성을 알기 때문입니다. 삶은 유한하기에 아름답습니다. 절대적이고 무한한 삶은 진리 뿐입니다. 하느님만이 절대자이며 불변입니다. 내 영역이 아닌 것에 손을 대고 욕심을 내면 거짓을 일삼게 되고 결국에는 하느님에게 기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2독서에서도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 아래 굴복시키셨으며 그분을 교회의 머리로 삼으셔서 모든 것을 지배하게 하셨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지배하려고 하는 순간, 내가 전능하다고 말하는 순간 거짓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죽음을 기억하며 그 길을 걷는 이들입니다. 끝이 있는 그 길에 겸손히 서 있을 때만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