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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거듭나게 하소서(연중 27주일, 최도미닉 신부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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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0. 6(연중27주)/ 하바1:1-4,2:1-4, 2디모1:1-14, 루가17:5-10

                                                      믿음으로 거듭나게 하소서

 

 

하혈증을 앓던 한 여인이 군중을 헤치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옷자락만 옷자락 만 만져도 자신의 병이 나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정말 여인의 병이 나았던 것입니다. 주님은 가던 길을 멈추시고 “누가 내 옷자락을 만졌다. 나에게서 힘이 빠져나갔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에서 예수님의 능력을 빼가는 비밀을 알았습니다. 우리도 이 여인처럼 예수님의 능력을 빼 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여인은 어떻게 해서 예수님의 능력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그토록 자신을 괴롭히던 병이 어떻게 낫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믿음이었습니다.

만약에 여인의 믿음이 없다면 예수님은 그 여인을 낫게 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능력이 여인에게 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믿음으로 더 굳세어 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치유되고, 예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 풍성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바국의 말씀을 보십시오. “의로운 사람은 그의 신실함으로 살리라”개역 성경은 “믿음”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신앙의 근본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구원에 이를 수 없고,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이를 수 없으며, 믿음이 없이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세상과 싸워 승리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제자들이 주님께 자신들에게 믿음을 더하여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어쩌면 이 요구는 우리가 매일매일 청해야할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다니면서 수많은 기적을 체험하였습니다. 병든 자가 낫기도 하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문둥병자가 낫고, 죽은 사람이 살아났습니다. 이 모든 기적이 다 어디에서 일어났나요. 바로 믿음이었습니다. 때문에 자신들도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길을 가르쳐 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하여”라고 합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믿음이 조금이 있다고 생각한 모양인가 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말씀을 들으시고 “너희에게 겨자씨 할 알 만한 믿음 있다면”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한번 곱씹어 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없다는 말입니다. 자제들은 믿음이 있는 줄 알았는데 주님이 보시기에는 겨자씨만한 믿음도 보이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가만히 내 자신을 바라봅니다. 우리는 믿음이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주여, 주여! 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입으로만 외쳤지 언제나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살아온 것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믿음을 더하여 가질 수 있을까요?

우선, 믿음은 하느님의 능력을 신뢰할 때 생겨납니다.

주님은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다면 뽕나무더러 “뿌리 채 뽑혀 바다에 심어져라 하더라도 그대로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믿음이 가진 능력이 얼마나 놀랍고 큰지 알려주시는 말씀입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으로도 이런 역사가 일어난다면 빵만 한 믿음이 생긴다면 얼마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믿음이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신뢰할 때 일어납니다. 백부장의 믿음처럼 “주여 한 말 씀만 하십시오. 제 하인의 병이 낫겠나이다.” 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늘 감사성찬례를 드리며 우리가 고백하는 마지막 고백도 바로 이 고백입니다. “주여, 한 말씀만 하옵소서. 제 영혼이 낫겠나이다.”

 

그런데 이런 믿음이 어디서 자라납니까? 아브라함처럼 고향을 떠나야 합니다. 떠나지 않고는 결코 믿음이 자랄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믿음을 갖고 싶어 가질 수 없었던 것은 떠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례를 받고 살아가지만 우리는 여전히 에사오에 머물러 있습니다.

하느님의 축복보다는 세상의 팥죽을 선택했습니다. 이게 우리의 모습입니다. 정말 믿음을 더하여 다기를 원한다면 야곱처럼 팥죽을 버리고 야훼의 축복을 선택할 줄 아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바울로처럼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때 비로소 믿음이란 것이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겨자씨만한 믿음이 어떻게 생겨납니까? “뿌리 채 뽑혀 바다에 심어져라” 라고 한 이 말씀을 믿을 때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방식이 아닙니다. 나무를 심으려면 명령한다 해서 뽑혀지나요. 심어지나요. 인간의 방식은 그 나무를 뽑아서 땅에 심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뽕나무야 뽑혀서 바다에 심어져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또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믿는 것이 “겨자씨만한 믿음”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란 하느님의 권능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왜 제자들에게 겨자씨만한 믿음도 없다고 하셨을까요? 말씀의 권능보다는 세상의 권능, 내 생각과 판단과 경험이 늘 앞서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내 생각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과 그 힘을 신뢰할 때, 그래서 그 말씀 앞에 순종할 때 비로소 생겨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2장 5절 말씀에서 “우리의 믿음은 인간의 지혜에 바탕을 두지 않고 하느님의 능력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철저하게 하느님의 능력을 신뢰하고 그 능력에 의지할 때 생겨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아니하고는, 그 능력을 신뢰하지 않고는 우리의 믿음은 자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우리의 자녀들이 어디에 서야 행복해 질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성적이 좋아지고, 출세하고,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해질까요? 당장은 행복해 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우리들은 에사오처럼 하느님의 축복을 포기하고 팥죽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팥죽의 힘이 아니라 말씀의 축복을 신뢰할 때 믿음이 더하여 지는 것입니다.

때문에 사도바울은 에페소 1장 17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영광스러운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영적인 지혜와 통찰력을 내려 주셔서 하느님을 참으로 알게 하시고, 그리고 우리 믿은 사람들 속에서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라”고 했습니다.

이 능력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쓰러지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바울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냈으며, 죽기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까? 바로 하느님의 권능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을 에집트의 손아귀에서 해방시켰습니까?

강한 군대가 아닙니다. 모세는 겨우 지팡이 하나만을 가지고 갔을 뿐입니다. 이 지팡이로 이집트를 쳤고, 홍해를 갈랐으며, 바위를 쳐서 물을 내게 했습니다.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실라가 힘이 있어서 옥문을 연 게 아닙니다. 오직 하느님만을 의지하여 찬양하였을 때 옥문이 저절로 열린 것입니다.

그리고 다니엘이 사자의 입을 막았고 그 형제들이 불가마 속에서 살아 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그만한 능력이 있거나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직 야훼 하느님의 능력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그들은 말씀의 권능을 믿었고, 기도의 힘을 의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세상의 논리나 힘이 아닙니다. 오직 하느님의 말씀과 그 권능을 의지할 때 더하여 집니다.

 

둘째, 믿음은 주님의 사역에 참여할 때 성장합니다.

사도 바울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얻은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나에게서 들은 건전한 말씀을 생활원칙으로 삼아라.”(2디모1:13)고 하였습니다. 믿음은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려는 의지가 있을 때 더하여 집니다.

종들은 들에서 일하며 수고했습니다. 수고하고 돌아온 종이 얼마나 배가 고프겠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쉬고 싶겠습니까? 그런데 주인은 수고하고 돌아온 종에게 “내가 먹고 마실 동안 허리를 동이고 시중을 들고 나서 음식을 먹어라”라고 합니다.

저도 남에게 일을 부탁한 적이 있고, 또 일을 한 적이 있는데 아마 이렇게 대하면 정말 인정머리 없는 주인일 것입니다. 저 같았으면 “수고했네, 힘들고 베고프지, 여기 마련된 음식을 들고 쉬게나.” 했을 것입니다. 이게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주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 주인은 이렇게 했을까요? 힘들고 배고프다고 해서 지금 자신이 먹어야할 음식을 먹고 쉰다면 그 믿음은 쓰러지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더하여지는 비밀은 지금 힘들고 어렵지만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 것을 주님 앞에 드릴 수 있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물질이 되었던, 아니면 나의 재능과 시간이 되었던 지금 주님이 원하시는 일에 자신을 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 것을 내 것이라고, 복음성가)

종들이 주인이 맡겨주신 일들을 들에서 수고하는 것처럼 하느님께서 세상에서 일하도록 각자에게 맡겨준 일이 있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최선을 다해 수고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일로 마감한다면 세상 사람과 다를 게 뭐가 있습니까? 믿음의 형제들은 해야 할 일이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그것은 허리를 동이고 시중을 드는 일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역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흔히 봉사는 주님을 위해서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도는 주님을 위해서 합니까? 예배는 하느님을 위해서 합니까? 아닙니다. 주님이 이 모든 일에 투신하라고 하신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믿음을 위해서입니다. 믿음이 좋아서 사역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사역에 참여함으로 믿음이 좋아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합니다. “그대가 우리 주님을 위해서 증인이 된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주님의 증인이 됩니까? 말로 되나요. 아닙니다. 우리가 증인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삶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우리의 삶이 주님의 향기가 될 때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 일을 해야 합니까? 이 일을 통해 믿음이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주님께서 원하는 일에 기꺼이 투신해야 합니다. 그 사역이 기도하는 일이라면 기도하십시오. 봉사하는 일이라면 봉사하십시오.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이라면 위로하고 격려하십시오. 나누는 일이라면 나누십시오. 이런 사역을 통해 내 믿음이 자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이유가 생기면 우리는 제일먼저 하는 일이 주님을 향한 헌신부터 포기합니다. 포기하는 순간 믿음은 자라지 않습니다. 믿음은 헌신을 먹고 자라기 때문입니다.

 

셋째, 믿음은 겸손함으로 더하여 집니다.

“종이 그 명령대로 했다고 해서 주인이 고마워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 너희도 명령대로 모든 일을 다 하고 나서 ‘저희는 보잘 것 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라고 하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한 일을 드러내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칭찬받고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겸손 하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겸손을 먹고 자라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를 말하고, 천사의 말까지 한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고 온갖 신비를 환히 꿰뚫어 보고 모든 지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내 모든 재산을 남에게 나누어주고, 남을 위하여 불속에 뛰어 든다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모두 아무 소용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이 어디에 걸립니까? 바로 자기 자랑입니다. 교만입니다. 나를 자랑하고 교만하다면 이 모든 믿음의 행위들을 허물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주인이 명령한대로 종이 순종 했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그런데 고마워 할 이유가 없다고 하십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것은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내가 뜰에서 일을 했으니 그 공로에 따라 자신의 몫을 달라고 하면 그 믿음은 곧 시험에 들게 됩니다. “주님, 내가 이렇게 기도 했으니 들어주셔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봉사했으니 만사형통하게 해 주셔야 합니다.”

만약 이렇게 생각하고 기도하고 봉사했다면 그는 곧 믿음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더하여지는 비밀은 겸손히 모든 공을 하느님께 돌리는 은혜 안에 머물라고 하십니다.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영광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게 은혜입니다. 믿음이란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을 포기하는 은혜 안에 머물 때 더하여 집니다.

 

주님은 날마다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축복은 우리 믿음의 분량만큼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하느님의 은혜와 능력을 받는 그릇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날마다 우리의 믿음이 더하여 지도록 힘쓰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