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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수 있는 사람(사순 4주일, 장기용요한 신부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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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수 있는 사람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3월 30일 사순 4주일 설교 말씀)

헬렌 켈러는 생후 19개월이 되었을 때 뇌척수막염으로 추정되는 병을 앓고 나서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잃고 말았습니다. 소경이며 귀머거리 그리고 벙어리라는 3중의 장애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설리반 선생의 평생에 걸친 눈물겨운 사랑과 교육으로 그는 당대의 문필가이며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인물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아직도 그가 남긴 일생과 흔적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기도 하고 영적인 눈을 뜨게 합니다.

그가 남긴 ‘3일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만약 내가 눈을 뜨고 볼 수 있다면, 나를 이만큼 가르쳐주고 교육시켜준 나의 선생님 에미 설리반을 찾아가겠다. 지금까지 내 손끝으로 만져서 알던 그녀의 인자한 얼굴을 몇 시간이고 물끄러미 보면서 그녀의 모습을 내 마음 깊숙이 간직해 두겠다. 다음엔, 친구들을 찾아가고, 들로 산으로 산책을 나가겠다. 바람에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나무 잎사귀들, 들에 피어있는 예쁜 꽃들과 그리고 저녁이 되면 석양이 빛나는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싶다.

다음날 일어나 새벽에는 먼동이 뜨는 웅장한 장면, 아침에는 메트로 폴리탄에 있는 박물관 그리고 저녁에는 보석 같은 밤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또 하루를 보내고, 마지막 날에는 일찍 큰 길에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들, 오페라하우스를 보고, 오후에는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감상하고 싶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건물의 숲을 이루고 있는 도시 한 복판으로 나가서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거리를 보고, 집으로 돌아와 내가 눈을 감아야 할 마지막 순간에 나를 삼일 동안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해주신 나의 하느님께 감사하다고 기도를 드리고 영원히 암흑의 세계로 돌아가겠다.”

헬렌 켈러가 단 한번만이라도 보고 싶어 했던 세상을 눈 뜬 우리들은 매일 마주 보고 삽니다. 만일 봄꽃이 찬란하게 피어나고 여린 초록빛의 새싹이 돋아나는 광경을 그가 본다면 아마도 경이로운 눈빛으로 하느님의 섭리를 느끼지 않을까 상상해 봅니다. 그에게는 밤이 아침으로 변하는 것이 기적일 것이고, 세상에 어둠이 내리지만 이를 극복하는 인간의 도전과 승리에 대해서도 감격할 것입니다. 

(헬렌켈러, 미국회 도서관 소장 자료)

하늘과 땅과 그 안의 만물들을 보면서 경이로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영적인 눈을 감고 사는 것이 아닐까요?

가끔 우리는 눈이 멀어 버릴 때가 있습니다. 돈에 눈이 멀어 인간의 양심이나 도덕을 내동댕이칠 때가 있습니다. 돈에 눈이 멀어 사랑도 버리고 인간의 생명까지도 빼앗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니까요. 권력에 눈이 멀면 어떻습니까?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여러 사람을 다치게 합니다. 세상을 어지럽게 하고 많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합니다. 그리고 명예에, 성적에, 출세에, 이념에, 편견과 선입관에, 고정관념에, … 사랑에 눈이 멀기도 하고요. 그러고 보니까 눈 뜨고 살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군요. ‘우리 공무원에게는 영혼이 없습니다.’라고 말한 어떤 사람의 말처럼 우리의 현실은 영혼의 눈을 뜨고 살도록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니, 그 자유를 위해 영적인 눈을 뜨고 살기가 힘겨워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날 때부터 소경인 사람을 두고서 사람들은 시시비비를 가리려 합니다. 불행한 사람을 두고 사람들은 그를 죄인으로 전제하고 그 죄가 누구의 탓이냐는 논쟁을 합니다. ‘전생에 영혼이 죄를 지은 것인가? 아니면 부모가 죄를 지어 태생소경이 되었는가?’ 조금 잔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보는 사람과 못 보는 사람을 가려,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눈멀게 하려는 것이다.’ 잘 보인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는 게 불행한 사람의 죄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회당에서 내쫓는 일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날 때부터 소경인 사람에게도 하느님의 놀라운 일들이 감추어져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사람 육신의 눈은 비록 소경일지라도 영혼은 소중한 하느님의 숨결을 간직하고 있다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눈을 뜨고 살면서도 하느님의 뜻을 모르는 사람이 있고, 눈을 감고 있지만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때로는 보지 못하는 사람이 보는 사람을 위로할 때가 있습니다.

장기용 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