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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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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루가복음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무덤에 간 여인들과 베드로가 본 것은 빈 무덤뿐이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여인들과 베드로의 차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똑같이 빈 무덤을 보았는데 여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며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데, 사도들이나 베드로는 왜 믿지 않을까? 성경을 꼼꼼히 살펴보니 여인들은 천사의 말을 듣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했다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말을 듣고 여자들은 예수의 말씀이 생각나서
 
주님의 부활은 완성이며 새로운 시작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보여주신 모든 것들은 부활을 통해 비로소 완전한 의미를 찾게 됩니다. 늘 비유로 말씀하셨던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드러나며,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고, 우리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의미를 드러내 줍니다. 여인들은 천사의 말을 듣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부활을 받아들입니다. 그들 역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떠 올려 부활을 믿게 된 것입니다. 부활은 이해될 수 없는 사건입니다. 부활은 억지로 믿어지는 사건이 아닙니다. 많은 영성가들은 매 순간 예수님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거지 할아버지가 바로 예수님임을 고백하기도 하고, 힘없이 죽어 가는 어린이를 통해 예수님을 경험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도무지 이러한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니 억지로 거부하고 밀어냅니다. 자신이 이해하고 그리는 예수님의 이미지와 다른 예수님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성화에 그려진 금발의 자상하고 잘 생긴 예수님의 상을 깨려고 하지 않습니다.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바라볼 때 모든 곳에 계신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분은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의 삶 가운데 늘 계십니다. 여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해 내고 자신들의 두려움과 상실감을 이겨냈습니다. “아! 예수님께서 정말 살아나셨구나!” 그러나 제자들은 부활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실망에 빠져 있고, 두려움 속에 있으며, 허탈감과 상실감에 빠져 있습니다. 빈 무덤은 그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드러내는 증거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 분은 이미 죽었고, 그 분은 이미 그들의 삶에서 떠나 버렸습니다. 그래서 빈 무덤의 이야기를 듣고 빈 무덤을 직접 보았지만 결코 부활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이 찾아가야만 회개할 것입니다.' 하고 호소하였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면 어떤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수 많은 증거가 있지만 우리는 늘 다른 증거를 요청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완고하고 두려움에 가득 차 있으며 걱정과 욕망으로 가득해 있는 것이 문제인데 그것은 제대로 보지 못하고 끊임없이 다른 핑계를 대며 새로운 증거를 요구합니다. 제자들처럼 실망과 두려움 그리고 허탈감과 상실감에 빠져 있는 한 부활을 믿을 수 없습니다. 복된 소식이 전해져도 그것은 부질없는 헛소리일 뿐입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끊임없이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바로 지금이 주님을 만날 때이며, 바로 이곳이 주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지금 부활하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들어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 집에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도 나와 함께 먹게 될 것이다.
 
말씀을 묵상하며 두 번째로 눈에 들어온 구절은 5절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찾고 있느냐?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야 하고 그 분을 경험하고 그 분과 교제해야 하는데 살아 계신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 역사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살아계신 예수님을 찾습니까? 아니면 먼 시간과 먼 공간 속에서 예수님을 찾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다른 사람의 말에만 의존하여 예수님의 모습을 그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예수님을 직접 경험하지 못하고 주로 설교자의 입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책을 통해서, 이론이나 학문으로, 교리적인 모습으로 만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당신이 만난 예수님은 어떤 분이냐고 물어도 계속 다른 사람의 예수님만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냐는 질문을 하셨는데 이는 결국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무리 멋있어 보이고 훌륭해 보이는 고백도 나의 고백이 아니라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베드로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고 고백했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토마는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무덤에서 주님을 찾아서는 안 됩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을 찾으시고 만나야 합니다. 무덤에서는 결코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오늘 천사는 예수님께서 사시고 활동하셨던 갈릴리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갈릴리는 바로 우리의 삶의 자리입니다. 우리의 일상 가운데서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예수님이 아닌 나의 삶에서 경험되어지고 고백되어지는 예수님을 만나야만 합니다. 더 이상 죽음 가운데서 예수님을 찾지 마시고 우리의 생생한 삶의 현장에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경험하지 못한 신앙은 말뿐인 신앙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삶을 주님께 바칠 수 없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오랫동안 지내며 그 분의 기적과 말씀을 가장 가까이에서 체험하였지만 그것이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약속하신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을 때 비로소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을 온전히 이해하였고 변화되어 자신의 삶을 하느님께 드릴 수 있었습니다.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는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마리아야”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은 떡을 떼는 순간 부활하신 주님을 경험했습니다.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은 문을 잠그고 숨어 있었지만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하고 인사하시는 주님을 만난 후에 문을 열고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을 부르시고 찾아오시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 분은 우리를 치유하시고 완전하게 하실 살아계신 하느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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