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말씀과 신앙나눔 부활 2주일

부활 2주일

654
0
공유

오늘 주님의 부활을 축하하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허락하신 평화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이며 주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평화를 가져다 준 사건입니다.
 
제자들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은 돌아가셨고 이제 곧 자신들도 예수님처럼 죽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들은 집의 문을 모두 잠그고 불안 속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무슨 대화를 나누었을까요?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함께 있지만 서로를 믿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배신했던 유다처럼 저 사람이 나를 배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을 살펴 보고 있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머리를 빠르게 굴리며 이 난관을 헤처나가기 위해 유다처럼 배신을 작정하며 그 방법을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감정적인 대처를 이야기하고 어떤 이들은 신중한 대처를 이야기하고 어쩌면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로에 대한 미움과 실망을 드러내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제자들이 불안 속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평화롭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잠시만 눈을 감고 생각해 보아도 제자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하느님의 평화가 아닌 불안으로 가득 찬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 기쁨과 만족 그리고 환희보다는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걱정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것일까요? 토마스 머턴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불안은 외부에서 우리에게 강요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내부에서 이 불안을 우리의 세계에, 또 서로에게 강요한 것이다. … 성스러움이란 불안의 한 가운데서 불안 없이 존재하는 법을 하느님께 배우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 모순은 인간의 영혼 안에 항상 존재해 왔다. 그러나 모순이 끊임없이 해결 불가능한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침묵하기보다 오히려 분석하려 하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불안의 이유를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요? 능력이 있음에도 무능력함으로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예수님을 원망했을 것입니다. 자신을 선택하고 이곳까지 이끌어온 그 분을 원망했을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배신한 유다를 원망했을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유대 지도자들을 원망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로마제국과 통치자들을 원망했을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어떤 이들은 북한이 문제라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미국이 문제라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정치인들이 문제라고 하고, 또 어떤 이들은 경제인들의 문제라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중국이 문제라고 하고, 어떤 이들은 일본이 문제라고 합니다. 그 누구도 이 불안이 바로 우리 내부에서 시작된 것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십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그리고 자신을 보여주심으로 제자들의 불안과 두려움을 기쁨으로 바꾸셨습니다. 결코 사라질 것 같지 않은 제자들의 두려움은 기쁨이 되었습니다. 사방을 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이 절망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경험하게 될 때 우리의 불안은 사라지고 하느님의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놀라운 복된 소식입니까?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서로를 경계하고 두려워하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통해 다시 사랑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서로 용서함으로 그들은 모두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 다시 하나됨을 경험했습니다.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는 능력이 바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바로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켜 하느님의 평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내세워 하늘과 땅의 만물을 당신과 화해시켜 주셨습니다. 곧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의 피로써 평화를 이룩하셨습니다.

골로 1:20

 
우리 주님은 평화의 왕이십니다. 그 분은 자기 자신을 내어주심으로 창조주와 피조물간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셨습니다. 성서에서 말하는 평화는 늘 하느님의 정의와 짝을 이룹니다.
 
야훼여,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소서. 당신의 구원을 우리에게 내리소서. 나는 듣나니, 야훼께서 무슨 말씀 하셨는가?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 그것은 분명히 평화, 당신 백성과 당신을 따르는 자들, 또다시 망령된 데로 돌아가지 않으면 그들에게 주시는 평화로다. 당신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구원이 정녕 가까우니 그의 영광이 우리 땅에 깃들이시리라. 사랑과 진실이 눈을 맞추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리라. 땅에서는 진실이 돋아 나오고 하늘에선 정의가 굽어보리라.

시편 85편

 
결국 예수님을 믿고 따른 다는 것, 예수님을 구원자로 고백하는 의미는 하느님의 창조질서 곧 정의를 따라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곧 율법을 지키는 삶이며,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고,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순종하심으로 제자들이 평화를 얻게 된 것처럼 우리의 순종으로 세상은 평화를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불안과 두려움은 사라지고 닫힌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아가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과 그 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화를 외치며 “주님은 살아계시다!”고 선포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을 경험한 부활의 증인들의 삶입니다. 우리는 늘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갖추어 신고 세상을 향해 외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외침은 단순한 물리적 소리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삶입니다. 우리가 불안에서 벗어나 참된 기쁨의 삶을 사는 것이 부활의 증인으로서 가장 큰 외침입니다.
 
이념은 그것이 단지 이념과 사상으로 교육되기만 할 때에는 인간에게 그다지 깊은 영향을 주지 못한다. 이념은 그것을 전파하고 가르치는 사람의 삶을 통해 육화 되어 나타나는 경우에만 인간에게 영향력을 준다.

에릭 프롬

 
사랑하는 교우님들의 삶을 붙잡고 있는 불안과 두려움에 매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을 뚫고 우리를 향해 오시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시는 축복이 있으시기 바랍니다. 그분을 바라 보는 것으로 우리는 기쁨을 회복하게 되고, 그 분이 주시는 성령을 통해 우리는 사명을 감당할 은사와 능력을 받게 됩니다. 우리 외부의 환경이 어렵고 힘들수록 즉 어둠이 깊으면 깊을수록 빛은 더욱 밝게 빛이 납니다. 기쁜 소식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 외치는 부활의 증인으로 세상을 이기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세상은 우리의 외침과 소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반가워라, 기쁜 소식을 안고 산등성이를 달려오는 저 발길이여. 평화가 왔다고 외치며, 희소식을 전하는구나. 구원이 이르렀다고 외치며 "너희 하느님께서 왕권을 잡으셨다."고 시온을 향해 이르는구나. "

– 이사야 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