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김영호박사 칼럼 사랑의 빚을 서로 지라

사랑의 빚을 서로 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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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로마서 13:8)
이 말씀을 영어성경으로 읽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Owe no one anything, except to love one another; for the one who loves another has fulfilled the law. (NRSV)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어떤 것이든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완성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빚, 사랑의 빚은 서로가 지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왜 사랑의 빚은 서로가 지면서 살아야 할까요?

“서로 사랑하는 사랑” 이란 예수 제자들 사이에서 나누는 “형제 사랑” 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새 계명으로 주신 사랑의 계명은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행해야 하는 그런 사랑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 사이에서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우리들 가운데의 사랑에 대한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세상을 사랑의 세상으로 만들고 싶으셨는데, 세상을 향해 서로 사랑하며 삽시다 하고 외치는 외침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들 사이에 먼저 이루어진 사랑의 모범 (Example) 을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키려 하셨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라” 는 말씀이 아니라, “너희들끼리는 서로 사랑하라” 는 말씀으로 새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랑” 은 주기만 하는 사랑이거나, 받기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주고 받아야 하는 사랑, 받고 주어야 하는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서로 사랑하는 사랑” 을 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사랑의 빚을 서로 지고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랑의 빚을 지지 않고 살려면, 주기만 하든가, 받기만 하는 일방적인 사랑을 해야 하겠지요. 남에게 금전적인 빚을 지고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듯, 서로가 사랑의 빚을 지고 산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예수 따르는 사람들이 서로 나누어야 하는 사랑을 쉬운 사랑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는 우리를 형제로 사랑하실 때에 쉬운 사랑을 하신 것이 아니라 어려운 사랑을 하셨습니다. 향유를 발에 부은 여인들 사랑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예수, 정말 선지자 맞아?” 하는 비난을 받기까지 하면서 사랑했던 사랑이었습니다. 스승이신 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씻던 사랑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려운 사랑이었습니다. 섬김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가, 우리를 섬기기 위해 오셨다고 고백할 때에, 그 사랑은 쉬운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를 찾아 오신 메시야를 몰라 보고, 그를 조롱하며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을 용서하면서, 그 아픈 고통 속에서 그들과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사랑은 어려운 사랑이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의 사랑이 쉬운 사랑이 아니듯,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기를 원하신 그 사랑도 결코 쉬운 사랑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서로가 사랑의 빚을 지면서 하는 사랑은 어려운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사랑을 “율법의 완성”이라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율법주의자들의 손에 의해서, 글자 그대로 행해져야 하는 죽어버린 율법이 되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그 본래의 정신이 “사랑의 계명” 에 있었습니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하는 계명이 있고 또 그 밖에도 다른 계명이 많이 있지만 그 모든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이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로마 13:9)

여러분은 사랑으로 서로 종이 되십시오.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여라” 하신 한 마디 말씀으로 요약됩니다. (갈라디아 5:13-14)

하나님의 여러 계명과 율법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랑하라”는 말씀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 말씀에 “사랑하라” 하는 말씀만 있으면 될 것인데, 왜 여러 가지 “하라” “하지 말라”고 하는 말씀들이 있을까요? 그 까닭은 사랑하는 방법들에 대한 구체적인 말씀들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에게 해로운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한다는 것은 율법을 완성하는 일입니다. (로마 13:10)

여러분이 성경 말씀을 따라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최고의 법을 지킨다면 잘 하는 일이지만, 차별을 두고 사람을 대우한다면 그것은 죄를 짓는 것이고 여러분은 계명을 어기는 사람으로 판정됩니다. (야고보 2:8-9)

그러니까,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그리고 “차별대우하지 말라” 는 말씀들은 모두가 다 사랑의 구체적인 방법들에 대한 말씀이라는 말입니다. 율법의 완성으로서의 사랑은 쉬운 사랑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사랑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형제 사랑”과 “이웃 사랑”을 조금 더 깊이 살펴보고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주신 “이웃 사랑”에 대한 가르침은 본래는 “형제 사랑”에 대한 가르침과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야곱의 12 아들들의 후손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이웃이 바로 동포인 형제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는 계명이 처음으로 주어졌던, 레위기의 말씀을 읽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이웃을 인하여 죄를 당치 않도록 그를 반드시 책선하라.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을 품지 말라. 이웃의 잘못을 서슴지 말고 타일러 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 죄에 대한 책임을 벗는다. 동족에게 앙심을 품어 원수를 갚지 말라.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아껴라.) (레위기 19:17-18)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웃”은 말 그대로 가까운 곳에 사는 동족 형제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웃 사랑”은 “형제 사랑”과 같은 말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나라를 잃고 세계 속에 흩어져 살게 되었을 때, 다른 나라 사람들과 함께 살게 되니까, 이 “이웃”이라는 개념에 혼동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물음은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물음을 들은 예수께서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의 이야기를 해 주며, 이웃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성경말씀을 그대로 옮겨 놓아 봅니다.

율법교사는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 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 사람이 가진 것을 모조리 빼앗고 마구 두들겨서 반쯤 죽여 놓고 갔다. 마침 한 사제가 바로 그 길로 내려 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는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또 레위 사람도 거기까지 왔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길을 가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그의 옆을 지나다가 그를 보고는 가엾은 마음이 들어 가까이 가서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어 주고는 자기 나귀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서 간호해 주었다. 다음날 자기 주머니에서 돈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잘 돌보아 주시오. 비용이 더 들면 돌아 오는 길에 갚아 드리겠소” 하며 부탁하고 떠났다.”
자, 그러면 이 세 사람 중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 준 사람은 누구였다고 생각하느냐? 율법교사가 “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누가 10:29-37)

이스라엘 사람과 사마리아 사람은 같은 동족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이방인 사마리아 사람도 이웃이 될 수 있다고 대답하신 것입니다. “이웃 사랑”이 “형제 사랑”으로 제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들 곁에 있는, 우리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의 사랑이 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형제 사랑”이 이제는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일지라도 우리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지는 “이웃 사랑”으로 확장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 주위에 있는 기독교인들에게서는 “형제 사랑”도 “이웃 사랑”도 찾아 보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예수는 이 때를 가리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때에는 세상은 무법 천지가 되어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따뜻한 사랑을 찾아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마태 24:12)
사랑이 식어진 마지막 때를 사는 우리들에게 사도 바울은 이런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로마 13:11-14)

사랑의 빚을 지고 살며, 사랑을 나누며 살기 위해서는, 사랑의 화신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옷으로 입고 살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우리의 옷으로 입고 살아 간다면, 우리도 예수처럼 사랑의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