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말씀과 신앙나눔 사순절 수요예배 (1)

사순절 수요예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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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월절을 하루 앞두고 예수께서는 이제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실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이 세상에서 사랑하시던 제자들을 더욱 극진히 사랑해 주셨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같이 저녁을 잡수실 때 악마는 이미 가리옷 사람 시몬의 아들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를 팔아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 한편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당신의 손에 맡겨주신 것과 당신이 하느님께로부터 왔다가 다시 하느님께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을 아시고 식탁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신 뒤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차례로 씻고 허리에 두르셨던 수건으로 닦아주셨다.
 

요한 13:1-5

 

요한 복음 13장부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있었던 예수님과 제자들의 마지막 밤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17장까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지막 당부의 말씀과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그리고는 18장부터 겟세마니 동산에 가셔서 기도하시다가 잡혀 가셨습니다. 사순절 수요예배동안에는 예수님의 유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구절들을 계속해서 나누려고 합니다.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은 바로 우리를 향하신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해 주신 기도는 바로 우리를 위한 기도입니다. 수요예배를 통해 주님을 더욱 깊이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인데, 예수님께서는 이제 곧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갈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구절을 보면 마음이 참 뭉클한데요, 이 세상에서 사랑하던 제자들을 더욱 극진히 사랑해 주셨다고 합니다. 개역성경과 표준새번역에서는 끝까지 사랑해 주셨다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으시는 사랑입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사랑해 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랑을 믿을 수 있습니다. 변함없으신 신실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나를 향해 보내시는 그 분의 신실하신 사랑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상황 속에서 그 분은 일하고 계시고 당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전하고 계십니다.
 
이 구절이 참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함께 하심과 떠나가심을 통해 예수님과 우리 사이의 사랑이 더욱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조금 어려운 말로 한다면 현존과 부재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을 통해 사랑이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매주 드리는 예배 양식인 감사성찬례는 이러한 현존과 부재의 놀라운 신비를 매우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식사를 나누시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라! 그리고 너희는 나를 기념하라! 신앙에서 주님을 기억하고 그 분을 기념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기억하라는 말씀은 단순히 우리의 삶 가운데서 과거의 사건을 회상하는 수준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기억을 통해 우리는 현재 안에 그 사건을 재현시키고 그것을 지금 이곳에서 경축하는 것입니다. 즉, 기억함으로 우리는 그 분과 함께 있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기억함으로 예수님을 우리의 삶에 초대합니다. 기억함으로 우리는 그 분을 체험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날마다 예배 가운데 새롭게 주님을 경험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제 곧 사랑하는 제자들을 떠나셔야 하는 상황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계속적으로 자신이 이제 곧 떠날 것을 말씀하십니다. 제자들과 우리는 예수님의 떠나심 곧 부재를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주님께 묻습니다.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주님 우리와 함께 계셔주십시오.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이야기하시는 변화산에서의 사건에서 베드로의 말이 이러한 우리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과 함께 겁에 질려서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엉겁결에 "선생님, 저희가 여기서 지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기에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선생님을 모시고 하나는 모세를, 하나는 엘리야를 모셨으면 합니다." 하고 예수께 말하였다. 우리는 예수님과 모세 그리고 엘리야를 떠나보내지 않고 영원토록 함께 하려고 합니다. 이것의 우리의 마음이고 우리의 약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있으려고 하지만 그 분의 참된 진리는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는 예수님만 붙들려고 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행동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베드로와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는 더 유익하다.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그 협조자가 너희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보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늘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하늘나라와 자신의 사역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눈과 귀가 가리워져서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분이 떠나신 이 후에 성령이 임하셨을 때 비로소 그들은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예수님을 만나지도 못했는데 떠나 보내라니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먼저 예수님을 만나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분을 떠나보내고 다시 만나야 합니다.
 
오늘날의 사회는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좋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신비는 현존과 부재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우리의 경험이, 우리의 사랑이 더욱 깊어지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가장 귀한 것을 떠날 때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더 잘 알게 되며 다시 만나고 싶은 갈망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만남이 다시 이루어졌을 때 그 사랑은 더욱 깊어집니다. 즉 예수님의 떠남은 완전한 떠남이 아니고 떠남을 통해 더욱 깊이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깊은 부재를 통해 예수님을 우리 존재의 중심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친밀함을 더욱 키워나가는 것은 이러한 현존과 부재를 통해서입니다.
 
우리가 3월에 함께 나눌 본 훼퍼 목사님은 자신의 삶을 통해 이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나찌에 의해 감옥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고 있으면서 그리스도의 부재 안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깊이 경험하였고 이러한 하느님을 마르코 복음 15장 34절의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말씀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를 인용하여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은 우리를 버리시는 하느님이시다.”고 표현했습니다.
 
우리의 삶이 때로는 주님의 없음으로 인해서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주님은 보이지 않고 삶의 희망은 사라진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 시간이 바로 하느님을 더욱 깊이 경험하고 사랑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임을 기억하십시오. 우리 인생의 참된 의미는 그 사건을 통해 더욱 밝게 드러나게 됩니다. 그 시간을 우리는 솔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슬퍼하고 고통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때 비로소 하늘에서 우리에게 소리가 들려옵니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새롭게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삶에 찾아오는 고통과 슬픔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속이거나 그것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릴 때, 우리는 결코 하느님을 경험함으로 그것이 치유되는 놀라운 사건을 경험하지 못하게 됩니다. 슬픔과 고통을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분노와 회한에 빠져 버릴 때 우리는 더 큰 슬픔과 고통 속으로 떨어져 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더 깊이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시작은 우리의 연약함을 받아들이고 그 분 앞에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때 주님은 우리를 찾아 오셔서 당신의 음성으로 들려주시고 우리를 치유하실 것입니다.
 
지금 제가 하는 이야기를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면 도무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도가 머리로부터 존재의 중심으로 내려갈 때에 당신은 기도의 치유하는 힘을 발견할 것이다.”는 말이 있는데 오늘 우리의 기도가 우리의 머리로부터 존재의 중심으로 내려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치유하는 힘을 경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자신이 곧 떠나갈 것을 알고 계셨고 그래서 제자들을 더욱 더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은 주님이 떠나셨을 때 제자들의 마음을 더욱 깊이 울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예배 속에서 날마다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향한 그들의 사랑은 점점 더 깊어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고 나면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신 것이 더욱 더 크게 다가옵니다. 그것은 일종의 쇼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을 향하신 주님의 사랑을 보여주신 것이며, 그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어떻게 그 사랑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 분은 계속해서 아래로 아래로 나아가셨습니다. 우리는 그 분을 닮아 아래로 아래로 나아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냥은 절대로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아래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끊임없이 우리의 자아는 위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예수님을 따라 닮아 갈 수 있습니다. 자신의 힘을 포기할 수 있게 됩니다. 그들은 진정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낮추어 다른 사람의 발을 진심으로 닦아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그들의 삶을 통해 하느님의 나라는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일회적으로 일시적으로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낮아짐을 지향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순절을 통해 우리의 마음이 주님을 향한 뜨거운 갈망으로 채워지기 바랍니다. 잃어버린 예수님을 다시 만나 더욱 깊이 사랑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분을 깊이 사랑하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예수님처럼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되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요 하느님의 뜻입니다.
 
내가 왜 지금 너희의 발을 씻어주었는지 알겠느냐? 너희는 나를 스승 또는 주라고 부른다. 그것은 사실이니 그렇게 부르는 것이 옳다. 그런데 스승이며 주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준 것이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종이 주인보다 더 나을 수 없고 파견된 사람이 파견한 사람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 이제 너희는 이것을 알았으니 그대로 실천하면 복을 받을 것이다.

 

요한복음 13: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