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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수요예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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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걱정하지 마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리고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 만일 거기에 있을 곳이 없다면 내가 이렇게 말하겠느냐? 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같이 있게 하겠다.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그러자 토마가 "주님, 저희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너희가 나를 알았으니 나의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알게 되었다. 아니 이미 뵈었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번에는 필립보가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뵙게 하여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하고 간청하였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필립보야, 들어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같이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 그런데도 아버지를 뵙게 해달라니 무슨 말이냐? 너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도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몸소 하시는 일이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못 믿겠거든 내가 하는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요한 14:1-11
 
오늘 성서의 말씀을 읽으며 아주 유명한 구절인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와 “나를 보았다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는 말씀을 붙잡고 묵상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을 만난다는 “길”의 의미는 무엇인가? 진리와 생명으로 표현되는 예수님의 모습은 무엇인가?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을 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리고 묵상 가운데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 밤에 제자들에게 보여 주시는 새로운 삶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랑”으로 시작되어 “사랑”으로 완성되는 삶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함께 하시는 밤에 이제 자신의 모든 것을 제자들에게 드러내 보이십니다.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으시지만 제자들에게만큼은 모든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요한 16:29-30, 지금은 주님께서 조금도 비유를 쓰지 않으시고 정말 명백하게 말씀하시니 따로 여쭈어볼 필요도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께서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서 하느님께로부터 오신 분이심을 믿습니다.) 첫 시간에 함께 나눈 것처럼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극진히 사랑해 주셨고 또한 그 사랑을 발을 씻어 주시는 섬김의 모습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새로운 계명, 즉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과 나누신 참다운 사랑과 제자들을 향한 극진한 사랑을 통해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을 바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 곧 십자가의 수난과 부활은 예수님과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일이었습니다. 이제 제자들에게 다시 한 번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사명과 존재에 대해서 밝히 드러내십니다. 제자들은 끊임없이 잘못된 질문(땅의 질문)을 던지지만 주님은 그 질문을 통해 진리(하늘의 말씀)를 드러내십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잘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나의 아버지께서도 그를 사랑하시겠고 아버지와 나는 그를 찾아가 그와 함께 살 것이다.
– 요한 14:23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킬 것이고 이러한 사람에게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님께서 함께 살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성령 하느님을 선물로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신앙의 가장 큰 핵심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 안에 거하고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일치”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일치는 곧 성령 하느님의 내주하심의 축복도 약속합니다. 오늘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신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결국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뿐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법, 즉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어 인간의 옷을 입는 “육화”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예수님의 특별하심과 신성에만 관심을 갖게 되어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예수님을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시지만 완전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인간성을 포기하거나 부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의 인간성을 부정한다면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에는 “은총이 본성을 완성한다.”는 교리가 있습니다. 이 교리에 대해 토마스 머튼은 “이것은 성인이 되기 이전에 모든 인간성과 인간의 실제적인 조건인 나약함 속에서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성인들은 모두 지극히 인간적이었고, 그들의 인간성은 거룩함으로 인해 더욱 풍부하고 깊어졌다. … 예수님은 가장 인간적인 분이셨다.”고 설명합니다. 우리는 거룩함을 “분리”의 개념으로 이해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거룩함은 분리를 넘어서는 “하나됨”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성인이 되기 위해 먼저 가장 인간적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가장 인간적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결국 예수님처럼 하느님과 일치의 삶을 산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인간적인 삶을 버리고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예수님께서 자신의 연약함을 가지고 세상의 모순과 폭력의 한 가운데로 나아가신 삶의 모습처럼 우리도 그 길을 따라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느님의 능력과 영광이 드러나지 않는 이유를 생각하게 합니다. 나는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육화의 길”, 곧 십자가의 길을 가고 있는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낮아짐과 섬김 그리고 나눔의 삶이 아닌 나의 욕망을 채우려는 높아짐과 판단 그리고 움켜짐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토마스 머튼은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인간적으로 되는 것은 더 많이 걱정해 주고 고통받고 이해하고 동정하는 능력을 의미하는 한편, 유머와 세상의 좋은 것과 아름다운 것을 더 많이 즐기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따라야 할 모습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통해 하느님께 이를 수 있다는 말과 나를 본 것이 곧 하느님을 본 것이라는 말은 다른 말이 아닌 같은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살아내신 것처럼 우리도 하느님 안에 거하면서 우리의 이웃을 예수님처럼 자신을 바쳐 사랑하게 될 때, 우리는 하느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과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완전한 하나됨 곧 일치의 삶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이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능력의 비밀이며, 십자가 길의 핵심입니다. 14장 12절의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이런 상황에 대한 약속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나를 높이고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13절) 이러한 새로운 삶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포도나무의 비유로 설명하십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모조리 쳐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잘 가꾸신다.
요한 15:1-3
 
풍성함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바로 주님 곁에 머무는 것입니다. 청년들과 1박 2일의 짧은 피정을 다녀왔는데,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것은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갈망하고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멈출 때,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우리에게 평화와 소망을 주고 우리의 그릇된 생각들과 욕심들을 내려놓게 합니다.(루가복음 10:41-42, 마리아와 마르타 이야기 참고)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내 삶의 올바른 방향을 찾고 평화 속에서 살아갈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주님과 함께 머무르는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곧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며,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과 동행하며 성령님의 가르침과 인도를 따라 사는 삶입니다. 교리에 화석화되어 있는 삼위일체 하느님이 아닌 오늘도 살아계셔서 내 삶 가운데서 힘차게 역사하시는 하느님을 오늘 나의 삶에서 체험되고 드러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은 귀한 열매를 맺습니다.
 
내 말을 잘 들으십시오. 육체의 욕정을 채우려 하지 말고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살아가십시오.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은 육정을 거스릅니다. 이 둘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육정이 빚어내는 일은 명백합니다. 곧 음행, 추행, 방탕, 우상 숭배, 마술, 원수 맺는 것, 싸움, 시기, 분노, 이기심, 분열, 당파심, 질투, 술주정,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것, 그 밖에 그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내가 전에도 경고한 바 있지만 지금 또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짓을 일삼는 자들은 결코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 이것을 금하는 법은 없습니다.
갈라디아 5:16-23
 
계속해서 갈라디아서를 보면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그리스도를 입었다고 표현합니다. 오늘 제가 처음 시작한 말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말씀과 나를 본 것이 하느님을 본 것이라는 말씀과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그리스도를 입었다는 표현은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과 하나가 되고 하느님 안에서 예수님께서 누리셨던 모든 삶의 모습을 우리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삶으로써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세례를 받아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를 옷 입듯이 입었습니다. 유다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은 모두 한 몸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에게 속했다면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따라서 약속에 의한 상속자들입니다.
– 갈라디아 3:26-29
 
우리 모두의 정체성은 분명합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는 성령의 선물을 받은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어떠한 차별도 없는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로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에 의한 상속자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예수로 살아야 합니다. 그 길은 사랑으로 시작하며 사랑으로 완성됩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깊이 묵상하는 계절인 이 사순절에 우리 자신의 삶을 깊이 묵상하기 원합니다. 우리 교회가 감당해야 할 이 지역과 시대의 사명을 발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으로 우리의 삶과 우리 공동체가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오늘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신 예수님의 삶을 따라 주님을 닮아가는 귀한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