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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3일, 나를 데러다 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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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제3일 2013년 2월 15일(금)

나를 데려다 주오
(오늘의 말씀 – 마르코 7:31~37)

묵상의 글

지하철이 눈앞으로 미끄러져 들어올 때 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이어폰을 꽂은 사람들 무리입니다. 물론 저도 그 대열에 합류하려고 이어폰을 꽂고 있습니다. 시간을 활용하는 것일 수도 있으나 외로워서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둘 다 사람을 귀먹은 반벙어리로 만들어 놓기는 마찬가지지요.

우리 부부는 각자의 일로 바쁘고 대학생이 된 아들도 나름 자기 일정대로 움직여서 한 집에 살지만 각자 밥 먹고 각자 드나들면서 삽니다. 혼자 먹고, 혼자 걷고… 그래도 아직은 단란한 가족인데 말입니다. 그러나 보니 이어폰이랑 함께 사는 것이 더 익숙해졌습니다. 처음에는 ‘걷는 동안 무얼 들을까?’ 하던 것이 이제는 ‘무엇에 빠져볼까?’가 되었죠.

우리 식구만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직장과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비슷합니다. 서로 자기 역할에 지쳐서 어느 순간에는 알아달라고 챙겨달라고 요구합니다. 나도 물론 나를 좀 돌봐달라고 신호를 보낼 때가 있고요. 그런데 서로를 챙겨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랑과 정성이 있어야 마음을 만져주고 가슴을 열어줄 수 있으니까요. 아무에게나 베풀 수 없는 교환 서비스가 됩니다. 이마저도 에너지를 아끼게 되면서 각자 이어폰을 꽂는 시간이 더 길어졌습니다. 사람에 따라 TV를 보는 시간이 더 길어졌을지도 모르죠. 그래서 상대방을 듣는 것도 내 마음을 듣는 것도 포기한 귀머거리에 필요한 말만 던지는 반벙어리, 외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내력 때문인지 누군가 ‘나에게 손을 얹어주는 것’은 귀먹은 반벙어리의 최대 로망입니다. 그리고 귀먹은 반벙어리에게 손을 얹어 주시도록 그분께 데려가는 것은 최대의 관심과 사랑입니다. 그분은 내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게 된 사연을 알고 계시고 내가 쓸쓸하고 외로운 것도 알고 계셔서 마침내 내 마음을 열고 내 귀를 열고 내 입을 열어주실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줄탁동시라고 했나요. 나부터 이어폰을 빼야 누군간 손을 내밀 것 같습니다.

오늘의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에파타’라고 말씀하시며 귀머거리를 고치셨습니다. 간절히 비오니,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이웃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는 영적 귀머거리인 저의 귀를 열어주소서. 또한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기도가 울리게 하소서. 아멘.

대한성공회 교육훈련국 2013년 사순절 묵상집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