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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1주일, 성령이 광야로 간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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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1주일 2013년 2월 17일(일)

성령이 광야로 간 까닭
(오늘의 말씀 – 루가복음 4:1~13)

묵상의 글

드디어 사순절의 상징! 광야에서 벌이는 예수님과 사탄의 전설적인 한판 승부 이야기가 오늘의 말씀입니다. 물렁물렁한 저는 예수님의 이런 견고한 신앙적 논리와 카리스마 넘치는 대처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해마다 너무 많이 보아온 탓인지, 올해는 불경스럽게도 위인전이나 동화 속 주인공의 활약처럼 당연하다는 생각과 식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뭐 좀 안다 싶으면 이렇게 금방 건방지게 구는 내 태도에 대해서 먼저 묵상을 하였습니다. 반성위에 내려주신 말씀은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가셔서’였습니다. 성령은 푸른 초장으로만 인도하는 줄 알았는데… 다시 따져보니 푸른 초장에 데려다 달라고 한 것은 나였지 성령의 인도가 아닌 것 같습니다.

애들 학비랑 예고 없는 경조사비로 옷 한 벌 못 사 입는다고 투덜대는 생활의 광야로 나를 데려간 것이 어쩌면 성령이었나봅니다. 언제 봐도 멀쩡히 차려 입고 나오는 그 여인이 나를 얼마나 유혹하던지. 나는 엉뚱하게도 ‘무슨 교회가 이렇게 내라는 게 많으냐!’고 결국 주워 담지 못할 말을 뱉어서 사탄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여유도 즐거움도 없는 피곤한 광야로 데려가시는 이도 성령이었을 텐데, 사람들이 갔다 왔다는 올레길 사진, 제주에서 먹었다는 음식사진 앞에서 나는 또 서슴없이 ‘매일 교회 가느라 하다못해 둘레길도 못 가봤다’고 말해버립니다. ‘나의 광야분투기’는 참을 수 없는 내입의 가벼움 때문에 늘 사탄이 이깁니다.

성령은 내가 예수님처럼 내공이 탄탄해져서 그 어떤 유혹도 물리칠 수 있을 때까지, 광야에서도 푸른 초장을 느낄 때까지 나를 계속 광야로 이끄실지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사순절을 수십 년 겪어서 식상하다는 사람이 결국 내 인생의 광야를 사탄이 이끄는 대로 휘둘리며 건너가고 있었다는 걸 오늘에야 알게 되었네요.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 하느님, 주님께서는 저를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만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저를 거친 광야의 시련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집트의 노예생활을 벗어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려면, 광야를 지나야 하는 것처럼, 제가 주님의 나라로 나아가기 위해서 인생의 광야를 잘 지나게 하소서. 아멘.

대한성공회 교육훈련국 2013년 사순절 묵상집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