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말씀과 신앙나눔 사순 4주간 금요정오예배 – 서울주교좌 이경호(베드로) 신부 설교

사순 4주간 금요정오예배 – 서울주교좌 이경호(베드로) 신부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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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20일 (사순 27일 /사순 4주간 금 /자)
성서말씀
지혜 2:1, 12-22 / 시편 34:15-22 / 요한 7:1-2, 10, 25-30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는 누구인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신앙인은 내가 누구인가?를 알려고 할 때 [나]라는 한 개인 – 개별화된 한 사람으로 뚝 떼어 놓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홀로 살아가는 존재 아닙니다.

나는 나 아닌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기에 나를 잘 알려면 내가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보아야 내가 누구인지 좀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나]를 지으시고, 내 안에 하느님의 기운. 영을 불어 넣어 주신 하느님 안에서 내가 누구인가?를 묻고 그 물음에 답을 얻어야만 참 나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를 둘러싸고 있는 아주 복잡하고 무수히 다양한 관계, 복잡한 상황과 현실에서 나의 참 모습을 찾고 /나의 참 모습을 유지하고 지탱하며 산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히틀러 암살단에 가입했다가 발각되어 감옥에 갇혀 있던 본회퍼의 글 가운데 “나는 누구인가?”라는 글이 있습니다. 이 글을 소개하지요.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내가 감방에서 걸어 나올 때

마치 왕이 자기의 성에서 걸어 나오 듯

침착하고, 활기차고, 당당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내가 간수들에게 말을 건넬 때

마치 내게 명령하는 권한이라도 있는 듯

자유롭고, 다정하고, 분명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사람들은 또 말하기를

마치 내가 불행한 날들을 견디면서

마치 승리에 익숙한 자와 같이

평화롭고, 미소 지으며, 자연스럽다고 한다.

나는 정말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존재인가.

아니면 다만 나 자신이 알고 있는 그런 사람에 불과한가?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게 뭔가를 갈망하다 병들고

목이 졸린 사람처럼 / 숨 가쁘게 몸부림치고

빛깔과 꽃들과 새소리를 그리워하며

친절한 말과 인간적인 친근함을 그리워하고

사소함 모독에도 분노에 떨며

 

그리고 큰 사건을 간절히 기대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를 그리워하다

낙심하며 슬퍼하고 / 기도하고 생각하고

글 쓰는 일에 지쳐 허탈에 빠지며,

의기소침하여 모든 것과 작별하려는 그런 존재.

 

나는 누구인가. / 전자인가 후자인가?

오늘은 이런 인간이고 / 내일은 다른 인간인가.

아니면 동시에 둘 다인가.

 

타인 앞에서는 위선자이고.

자기 자신 앞에서는 경멸할 수밖에 없는 / 가련한 약자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 고독한 물음이 나를 비웃는다.

내가 누구인지 /오, 하느님 당신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본회퍼의 글을 읽으면 자신 안에 아주 당당한 모습과 연약한 모습이 함께 있음을 봅니다.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평화롭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당당하고 위엄을 갖춘 사람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있는가 하면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해하고, 낙심하고 슬퍼하며 절망하는 모습도 있습니다.

 

본회퍼만 그럴까요? 우리 역시 그런 사람들입니다.

우리 역시 매우 이중적인 사람들입니다. 매우 거룩한 사람인척 하지만 허물이 많은 사람입니다.

 

이런 우리가 하느님 앞에 나온 것은 거짓의 가짜 나가 아니라 참 나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사순 절기는 한마디로 하느님 안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찾고, 그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은총의 절기입니다.

마태오, 마르코, 루가 공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활동하시다 마지막 순간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시어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고 죽으심으로 공생애를 마감합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는 갈릴리에서 활동하시던 예수님이 세 번에 걸쳐 예루살렘에 걸쳐 올라가신 것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내용을 근거로 해서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이 3년이라고 추정합니다.

요한복음에서 예루살렘은 예수님이 가시는 길에 대해서 가장 강력하게 대적하는 어둠의 세력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눈에도 예루살렘과 성전은 허물어져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시면서
“이 성전을 허물라 내가 3일 후에 다시 세우겠다.” 고말씀하신 것을 보면
예루살렘 성전은 예수님의 길과 진리, 생명의 삶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 여기신 것이 분명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복음 역시 예루살렘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초입은 바로 그런 분위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유다인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했으므로 유다 지방으로는 다니고 싶지 않아서 갈릴래아 지방을 찾아다니셨다.

 

예루살렘 사람들 사이에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그리스도론에 대한 이해로 예수님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일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예루살렘에 올라가셨고, 그곳에서 가르치십니다.

 

오늘 요한복음 7장 28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알고 있으며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내 마음대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정녕 따로 계신다. 너희는 그분을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는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은 나를 보내셨다.”

 

“너희는 나를 알고 있으며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 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출생에 대해서, 태어나신 고향이나 부모에 대해서,

예수님의 스펙에 대해서 안다고 예수님을 아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 이런 판단과 평가를 하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앎이 자신의 경험, 고정관념, 이해에 머물러 있을 뿐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예수님은 자신에 대해서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 자신의 고정관념과 생각의 틀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내 마음대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정녕 따로 계신다.
너희는 그분을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는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은 나를 보내셨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핵심은 나는 진실로 참 나를 찾았다는 것입니다.
나의 근원 뿌리는 바로 하느님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나를 보내신 분 – 하느님 안에서 나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 하느님께서 나에게 새로운 소명을 주셨고, 그 소명을 이루는 것으로 나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새로운 소명을 주시어 보내신 그 분과 함께 살아가는 나는 저희들이 전에 알고 있던 과거의 내가 아니다. 나는 새로운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얼마나 멋진 말인지요.

이렇게 자기 자신을 찾고 살아가는 인생은 그 삶이 얼마나 보람있고, 가치가 있을까요?

사순 절기는 하느님 안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절기입니다.

우리는 금년 2월 18일(재의 수요일) 이전의 사람이 아니라 아주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사순 절기는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는 절기입니다.

이 거룩한 사순 절기를 통해서 이전의 내가 아니라 새로운 나로 태어나길 기대하고 소망하면서 이 사순 절기를 보냅니다.

 

우리는 이 절기를 통해서 그런 변화를 경험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이 우리 안에 임하시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의 옛 사람 – 이기적인 자아는 죽고 새로운 나로 다시태어날 것입니다.

 

본회퍼가 마지막에 고백했던 것처럼 내가 누구인지

오, 하느님 당신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오늘 아침 이 고백이 바로 나의 고백이 되고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그래서 우리가 모두 사순 절기를 마치고 4월 5일 부활의 아침을 맞이할 때
나는 하느님 안에서 왔고, 하느님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그 소명으로 우리의 인생을 걸어가는 믿음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