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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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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와 부제(원로와 집사)
 
1890년대에 한국에 와서 성공회를 시작한 영국 선교사들은 가톨릭주의에 기울었던 사람들이어서 한국 성공회의 성직자들의 호칭을 개신교가 아닌, 천주교 관행을 따라서 주교, 사제, 부제로 정했다. 목사님, 장로님, 집사님 하는 대신에 주교님, 신부님, 부제님이라고 부르게 했다. 그것은 단지 성직자의 호칭으로 그치지 않고, 성공회의 신학과 예전의 경향을 정의하는 중대한 결정이었다. 그들은 교황을 인정하지 않고, 교황의 통치를 받지 않는 가톨릭 교회를 하나 세운 것이다. 소위 영국 가톨릭-‘앵글로 가톨릭’ 교회를 한국에다 이식해 놓은 것이다. 7성사와 미사와 첨례와 성모경과 묵주 신공, 고상 십자가와 성막과 14처, 그레고리오 찬트-이 모든 것이 그 표상이었다.
 
한국보다 한 발 앞서서 시작한 일보 성공회와 동남아 성공회는 다르다. 주교는 주교는 주교라고 하지만, 목사와 집사를 두고 있다. 명함을 보면 흔히 사제 아무개라고 하고 무슨무슨 교회 목사라고 박고 있다. 사제님, 부제님, 하지 않고 선생님이라고 한다. 전에 성공회 교회를 찾아 온 어떤 독일 루터 교회 목사의 말이 재미있었다. 그는 자기가 성찬식을 집전할 때는 사제(프리스트), 설교할 때눈 설교자(프리처), 교인을 돌볼 때는 목사(파스터)라고 했다. 그럴 듯한 말이다. 다만 성직자를 ‘사제’라고 부르는 것과 ‘목사’라고 부른 것은 교리와 전통의 이해에 천양지차가 있다.
 
최초의 그리스도 교회의 조직은 유대 회당의 그것과 같아서 원로단(프레스비테로이)이 운영 주체였다. 처음에는 장로들과 감독들(에피스코포이)의 구분이 없었다. 이것이 사도행전이 보여주는 상황이다. 그러나 2세기경부터는 감독들은 그 위상과 지위에서 장로들과 구별되고 후대의 주교로 발전했다. 영어로 사제를 뜻하는 ‘프리스트’는 원로(장로)를 뜻하는 ‘프로스비테로스’의 준말이다. 5세기 이노첸트Ⅰ이 쓴 편지를 보면, 도시에서는 주교가 성찬식을 집전하고, 지방 교회에서는 사제들이 주교를 대신해서 성찬식을 드릴 수 있다고 했다. 그 후 성찬식 뿐 아니라 다른 성사도 사제가 집전할 수 있게 되어 주교로부터 사제로 서품된 사제직이 확립되었다. 13세기에는 신도들이 의무적으로 고해를 하게 되어서 고해를 받는 사제는 신도들에게 하느님을 대표하는 성직자로 간주되었다.
 
성체 성사를 집행하고 고해 등 다른 성사를 맡는 사제직을 개신교각 거부한 것은 역사적으로 불가피했다. 그러나 잉글랜드 교회의 예식서는 사제란 말을 그대로 썼다. 아마도 성사를 집행할 수 없는 부제(집사)와 구별하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잉글랜드 교회와 가톨릭 전통이 강한 한국 성공회와 같은 교회에서 주교, 사제, 부제라는 성직과 호칭을 보전하는 것은 19세기의 옥스퍼드 운동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 온 성공회 선교사들은 철저한 가톨릭 주의자들이었고 극히 자연스럽게 한국 천주교의 습속과 용어를 빌려썼다. 심정적으로는 천주학도들이었다.
 
신약의 집사, 후대의 부제는 스테판과 빌리보 등 일곱 부제의 임명으로 시작한다. 처음에는 주교의 비서로 헌금을 관리하고 구제사업에 종사(사도행전 6:1-6)했지만 오늘날 부제는 성공회와 천주교에서 다 같이 사제 품을 받기 전의 준비 단계에 그치고 특별한 구실을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 한국 성공회에도 여자 부제와 사제가 등장했다. 옛 열두 사도들 중에 여자는 없었으니까 여자 사제는 안 된다는 말은 맞지 않다. 열두 사도는 유대인이었다. 그렇다면 유대인이 아닌 사람이 주교, 사제, 부제가 될 수 있을까. 성공회의 여자 성직자 때문에 로마와 정교회의 일치에 지장이 생길까 노심초사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로마와 정교회에도 여자 성직자가 생기지 말라는 법도 없다. 지장이 생겨도 우리는 우리 성공회 길을 걸어간다.
 
최근에 은퇴에 앞서서 로마를 다녀 온 캔터베리 대주교는 이제 머지 않아 로마 교회에도 여성 성직자가 나오리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요한 바울로Ⅱ 동안에는 어려울 것 같지만 다음 교황 때는 여자 사제도 생기고 재속 성직자들이 결혼도 하게 될 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