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박태식의 함께 사는 이야기 새로운 탄생-니고데모와의 대화

새로운 탄생-니고데모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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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탄생-니고데모와의 대화

박태식 신부(성공회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원장)
  • 바리사이파 사람들 가운데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다인들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는데
  • 어느 날 밤에 예수를 찾아와서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을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고서야 누가 선생님처럼 그런 기적들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 그러자 예수께서는 “정말 잘 들어두어라.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하고 말씀하셨다.
  • 니고데모는 “다 자란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다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나올 수야 없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 “정말 잘 들어두어라.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 육에서 나온 것은 육이며 영에서 나온 것은 영이다.
  • 새로 나야 된다는 내 말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라.
  • 바람은 제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듣고도 어디서 불어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른다. 성령으로 난 사람은 누구든지 이와 마찬가지다.”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시자
  • 니고데모는 다시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 예수께서는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의 이름난 선생이면서 이런 것들을 모르느냐?
  • 정말 잘 들어두어라.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하고, 우리의 눈으로 본 것을 증언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 너희는 내가 이 세상 일을 말하는데도 믿지 않으면서 어떻게 하늘의 일을 두고 하는 말을 믿겠느냐?
  •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의 아들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간 일이 없다.
  • 구리뱀이 광야에서 모세의 손에 높이 들렸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높이 들려야 한다.
  •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
  •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주셨다.
  • 하느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단죄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시켜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 그를 믿는 사람은 죄인으로 판결받지 않으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죄인으로 판결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의 행실이 악하여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다. 이것이 벌써 죄인으로 판결받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 과연 악한 일을 일삼는 자는 누구나 자기 죄상이 드러날까봐 빛을 미워하고 멀리한다.
  • 그러나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은 빛이 있는 데로 나아간다. 그리하여 그가 한 일은 모두 하느님의 뜻을 따라 한 일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된다.”

요한 3:1-21

니고데모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러나 세간의 평은 별로 좋지 않은데 예수님과의 은밀한 만남에서 크게 우스운 꼴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니고데모는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의 최고회의인 산헤드린 의원이었습니다. 산헤드린은 바리사이, 사두가이, 원로, 귀족들의 대표들이 모인 집단으로 정치적인 성향이 농후한 곳이었습니다. 사실 아무리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숫자가 대단치 않았어도 상위 70명 안에 들어가려면 이만저만한 정치력이 없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니고데모는 밤에 남몰래 찾아왔습니다. 그 자체로서 니고데모는 어둠에 속해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한 셈입니다. 그러더니 예수님에게 조용히 이야기를 건넵니다. 그는 예수님을 ‘랍비’라고 부릅니다. 랍비는 선생님이라는 뜻으로 당시에는 반드시 율법교사만 부르는 호칭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존경할만한 분에게 붙이는 호칭이기도 했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표징을 베풀었다고 치켜세우는데 앞의 기적을 염두에 둔 말입니다(가나의 혼인잔치: 2,11에 ‘표징‘이라는 말이 나옴). 사실 하느님이 보낸 분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런 놀라운 기적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에 대해 전체적으로 부정적이었습니다. 말씀을 잘하고 기적을 행한다지만, 속임수에 능한 사람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예수님의 언행에 감명을 받았더라도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지요. 그런 점을 고려할 때 니고데모나 아리마태 요셉은 상당한 용기가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니고데모 같은 최고회의 의원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 자체가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찾는 용기는 있었지만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는 귀는 아직 닫혀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것이 싫고 옛것이 좋다는 생각을 잘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새로운 것은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새로움’의 대명사입니다. 나이 들고 변화를 두려워하던 니고데모 결국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