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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빛 따라 온 사람들(공현일, 장기용요한 신부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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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빛 따라 온 사람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월 5일 공현일 설교 말씀) 

새 해가 밝았습니다. 

수 천 년 동안 태양이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년도가 바뀌면 사람들은 해도 바뀌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새해 첫 날 해돋이를 보느라고 동해안은 빼곡히 사람들로 가득 찹니다. 아마도 마음의 태양이 새롭게 뜨는 것이겠지요. 지난해보다는 세상이 달라져서 조금 더 행복하고 희망 찬 새 해를 시작하겠다는 소망과 결단이 담겨져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내일엔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말처럼 올해는 올해의 태양이 뜨리라 믿는 것입니다.

동방 박사들이 새 빛을 따라서 참으로 먼 길을 달려와서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 앞에서 보물 상자를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립니다. 그리고는 홀연히 사라집니다. 이를 두고 교회에서는 오랫동안 예수의 공현(epiphany)이라는 축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성탄절이 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의 강림을 기념한다면, 공현절은 민족과 계급의 벽을 넘어서 온 세상이 그리스도를 경배하고 찬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이방인들이요, 점성가들입니다. 그들은 별을 보고 이상한 징조를 깨달았고 우주적인 변화가 왔음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는 그 새 별을 따라서 아주 먼 길을 왔습니다. 나침판이 없는 시대에 별을 따라서 왔다고 하니까 쉬운 길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별은 밤이 깊어야만 밝은 빛을 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밤길을 더 많이 걸었으리라 짐작합니다. 이들에게 메시아 대망의 신앙이라든지 유다인들이 신봉하고 있는 구원의 신앙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리고 찾고 찬양할 의무가 없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들은 매우 진지한 학자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이 믿고 확신한 것을 위해서는 먼 길을 따라 나설 줄 아는 사람들이었으니까요. 

(동방박사의 경배)

이들은 아기 예수 앞에서 경배하고 예물을 드렸습니다. 그 먼 길을 와서는 무엇을 얻어가는 것도 없었습니다. 무슨 보상을 받은 것이 없습니다. 천문학의 새로운 지식을 얻은 것도 아니고, 병을 고친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그 흔한 칭찬을 받거나 무슨 깨달음을 얻어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귀한 보물을 새로 나신 메시아께 바친 것으로 그들은 충분했습니다. 요즘 같으면 무슨 새로운 지식이 생기면 특허를 내고 저작권을 따지고 그것을 이용해서 출세하거나 재물을 축적 할 텐데 자신의 사명에만 충실했습니다. 지식인의 원래 모습이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반성해 봅니다.

우리도 새 빛을 찾아 순례를 거듭합니다. 물론 교회 공동체 안에서 예배를 통해 새 빛을 따라갑니다. 그러나 마음속에서 아기 예수 머무시는 그 곳으로 인도하는 새 빛은 여간해서 쉽게 밝아 오질 않습니다. 아기 예수를 경배하는 것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달려가는 동방박사의 마음과 지혜가 충만하지 않으면 우리의 예배는 형식 행위일 뿐이겠지요.

예배(worship)는 원래 ‘가치를 돌리다.’(worth+ship)라는 뜻입니다. 자신의 가장 귀중한 가치를 드리는 행위입니다. 그런 면에서 동방박사들은 귀한 예물에 자신들의 마음을 담아 먼 길을 달려 왔습니다. 그 어떤 보상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진실한 예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새해를 출발하면서 우리는 또 다시 순례를 시작합니다. 목표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리고 무엇을 따라가야겠습니까? 동방박사들은 희망을 왕이나 권세에 두지 않고 아기 예수에서 발견했기에 왕의 곁을 떠났습니다. 예수를 경배한 것으로 자신의 영달을 추구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오래 머물지 않고 미련 없이 떠났습니다.

 

우리의 희망의 빛은 베들레헴 마구간에 머물렀습니다. 무엇을 예물로 드릴까요? 우리의 희망을 드려야하지 않을까요? 아기 예수를 진심으로 경배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목표를 성취하는 것이고 우리 인생에 얽힌 많은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장기용 (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