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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구 설립 50주년 기념성찬례 및 사제-부제성직서품식 설교 – 2015년 5월27일(수) / 주교좌성당 : 김근상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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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르 10:35-45

 

오늘 우리는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설립 50년을 기념하는 참으로 뜻 깊은 날을 맞이하였습니다. 또한 3인의 사제서품과 7인의 부제성직 서품식을 갖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이 시간이 뜻 깊고 주님 앞에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황무지 같은 시대에 초대주교로 승좌하셔서 기틀을 다지신 고() 이천환(바우로) 주교님의 믿음과 헌신입니다. 아울러, 2대 김성수(시몬) 주교님, 3대 정철범(마태) 주교님, 4대 박경조(프란시스) 주교님의 노고와 헌신에도 깊이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서울교구의 교구장 주교로서 서울교구를 대표해서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이 시간 서울교구의 막중한 선교적 사명을 짊어지고 헌신하시는 이 자리에 함께 하신 전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들 위에 하느님의 크고 놀라우신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서울교구가 지나온 선교역사 50년의 발자취를 거슬러 보면 어려운 경제사정과 소용돌이치는 역사의 굽이굽이를 함께 하는 일이었기에 결코 순탄치 않은 시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선교라는 것이 세상의 물줄기 거슬러 복음의 참된 진리를 선포하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50년은 감동의 시간이었고, 은혜 자체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맞이하고 있는 서울교구 설립 50주년은 동시에 대한성공회 선교 125년의 해라는 역사적인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뜻이 깊습니다. 대한성공회 선교 125년은 놀랍게도 25년을 단위로 역사의 획을 긋는 크고 의미있는 선교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25년 전인 1890929일에는 초대주교인 존 코프(Charles John Corfe, 고요한) 주교님이 선교의 기착지인 인천 제물포항에 발을 딛음으로 대한성공회의 선교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27년간 해군 군종사제를 지내면서 3년 정도 중국 선교를 해본 적은 있으나, 한 번도 가본적인 없던 극동의 땅 조선 땅의 선교사로 자원했던 코프 주교님의 믿음과 순종은 대한성공회를 탄생시켰습니다. 이것은 분명 하느님의 놀라운 은총임에 틀림없지만, 한편으로는 무모하리만큼 순수한 도전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100년 전! <선교 25주년>

척박한 선교환경에서 시작된 한국 선교는 1915년 선교 25년을 맞이하면서 한국인 최초의 성직자인 김희준(마가) 신부가 사제서품을 받게 되었습니다. 최초의 한국인 영세자이며, 최초의 전도사였고, 최초의 부제서품자(1914)였던 김희준에 의해 한국이라는 토양에 뿌리내린 성직자가 탄생함으로 선교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75년 전! <선교 50주년>

선교 50주년은 신자 1만명부흥시대를 맞이했던 세실 주교에 의해 1940년에 원대한 선교 비전을 담고 성대한 잔치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동아전쟁의 발발과 영일동맹의 파괴로 세실 주교를 비롯해 모든 영국인 선교사들이 쫓겨나면서 교회는 침체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50년 전! <선교 75주년>

선교 75년의 해인 1965년에 이르러 비로소 이천환(바우로) 주교가 첫 한인주교로 서품되면서 서울교구가 탄생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 자정(自政), 자립(自立), 자전(自傳)의 원칙을 강조하며 서울교구장에게 전국의회 의장주교직을 양보했던 존 데일리(김요한) 주교의 혜안과 노력이 뒷받침 된 것이지만 대한성공회가 서울교구와 대전교구로 분할되는 한국인의 성공회로 거듭나는 결실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

 

어찌보면 서울교구의 탄생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새 술을 새 부대에 붓는 새로운 선교적인 도전이었고, 자립교회를 향한 발걸음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25년 전!

대한성공회 선교 100주년은 3개 교구의 협력과 예수 그리스도 겨레의 생명이라는 신앙의 고백의 결과로 1990930선교 100주년 연합대미사로 서울올림픽경기장에서 1만명이 참가한 가운데 성대하게 치뤄졌습니다. 아울러 진정한 자정, 자립, 자전의 교회로 1993관구승격으로 어엿한 세계성공회의 일원으로 거듭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대한성공회 선교역사의 한 획을 긋는 선교 125주년의 해인 2015527일 바로 이 자리에서 서울교구 창립 50주년을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초지일관(初志一貫)이라고 했습니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하였습니다. 125년 전의 초심(初心)을 얼마나 잘 지키고, 서울교구 창립 50년을 지내오면서 일관되게 계승발전 시키느냐에 따라 이 역사와 민족을 위한 하느님의 선교적 사명이 이루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자립기금도 거의 없이 5년 이내에 자립교구로 발전시켜야만 한다는 무거운 책임을 안고 초대주교에 승좌한 이천환 주교님과 당시의 상황과 절박한 선교의 열정을 되새겨야만 할 것입니다.

 

당시 서울교구는 9명의 한인 성직자와 7개의 전도구로 출발하였습니다. 한국 땅에 토착화된 복음을 실천하는 것을 기반으로, ‘자치’, ‘자립교구의 목표를 세웠습니다.

 

이천환 주교님은 50년 전 바로 이 주교좌성당에서 승좌설교를 통해 다음과 같은 서울교구의 선교적 비전을 선포하셧습니다.

 

대한성공회는 오늘 이 자리를 기하여 우리 한국 신도 자신의 귀중한 책임과 사명을 요구하는 한국인 자치 교구의 설립을 보게 되었습니다. … 이 땅 위에 주의 나라를 건설하는데 있어 가장 쓸모 있고, 주의 뜻에 알맞은 집을 짓는 것이 오늘 우리의 사명입니다.”

 

50년 전의 서울교구와 지금을 규모면에서 비교하자면, 교회가 73개에 145명의 사제와 7명의 부제, 오늘 서품자까지 160명의 성직단을 이루고 있고, 매주 5,200명의 신자들이 출석하고 있습니다.무엇보다 영국을 비롯한 외국으로부터 선교사와 원조를 받는 교회에서 13명을 일본과 미국성공회를 비롯한 해외선교사로 파송하는 교회로 자리매김하였다는 점에서 자그마한 자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한 35명의 성직자가 나눔의집(교회), 복지관을 비롯한 사회선교기관에, 그리고 21세기 급변하는 선교에 대응하여 희년교회, 걷는교회, 질그릇교회 등 다양한 선교의 길을 찾아 개척하는 것 또한 새로운 선교의 사명이고 도전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됩니다.

 

보시다시피 성직자는 16배 이상 늘었고, 교회의 숫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