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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의 발전 – [기독공보] 세계교회 이야기 (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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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의 발전 – [기독공보] 세계교회 이야기 (2회)

주낙현 요셉 신부 (성공회 서울 주교좌 성당 사제)

서방 교회의 종교개혁에서는 그 시작부터 정치와 교회가 서로 깊은 영향을 주고받았고, 이 관계는 신학과 교리에도 영향을 미쳤다. 영국의 종교개혁은 순탄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더 다양한 신앙 경험과 신학을 포용하면서 발전했다. 중세 교회의 전통을 깊이 유지하면서도 루터와 칼뱅의 신학을 적극 수용했다. 캔터베리 대주교 토마스 크랜머(Thomas Cranmer)는 이런 다양한 전통, 신학, 교리를 아우르는 방식을 신학 문서나 교리서가 아니라 예배에서 찾았다. 그가 대부분 집필한 ‘공동 기도서’는 아직도 성공회 전통을 가장 잘 드러내는 신학, 교리, 신앙 실천의 터전이다. 16세기 말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긴 통치 기간 동안 다양한 신앙 분파들은 ‘하나인 국민 교회’ 안에서 안정을 되찾았다.

그러나 잉글랜드 교회 내에서 칼뱅주의에 기대어 “왕정 폐지와 주교제 폐지”로 급진적인 개혁을 주장하던 청교도는 의회를 장악하고 왕정을 폐지했다. 이로써 잉글랜드는 잠시 청교도의 국가가 되었다. 현재까지 장로교의 중요한 신앙 문서로 꼽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1646년)은 영국 교회의 이러한 격동기에 나왔다. 그러나 청교도에게 권력을 위임했던 의회가 이들을 내쫓고 다시 왕정을 세우면서 잉글랜드 교회와 정치의 관계는 새로운 변화를 겪었다. 왕권의 명목은 유지하되 의회가 정치와 종교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것이다. 한편, 스코틀랜드는 일찍이 칼뱅주의자들의 영향권 아래서 장로교를 국교로 삼았고, 주교제를 채택한 스코틀랜드 성공회는 소수 교파로 남게 되었다.

출발부터 다양한 신앙 전통이 혼재한 영국 교회는 18세기와 19세기에 걸쳐 중요한 세 가지 신앙 운동을 경험했다. 첫째는 사제 존 웨슬리(1703-1791)의 ‘복음주의 운동’이다. 웨슬리는 기도서에 따른 성찬례와 기도생활을 강조하는 동시에 개인의 신앙적 체험과 감동을 중요시했다. 둘째는 18세기 중엽 옥스퍼드 대학 성직자들과 신학자들이 주도한 ‘옥스퍼드 운동’이다. 이 운동은 세속 권위보다 교회와 성직의 권위가 더 신성하다고 주장했고 그리스도교 역사의 오랜 예배 전통을 회복하려 했다. 셋째, 18세기 이후의 산업 혁명이 드리운 부작용을 비판한 ‘그리스도교 사회주의 운동’이다. 이 운동은 복음이 말하는 하느님 나라의 질서가 반영된 사회에 대한 고민과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내적으로 다양한 신앙 운동을 겪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성공회는, 외적으로 세계 식민지 확장과 함께 전 세계에 퍼져 나갔다. 미국 식민지의 잉글랜드 성공회는 미국 독립 이후에 약화되고 스코틀랜드 성공회의 영향을 받은 미국 성공회가 독립된 교파 교회로서 발전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을 향한 다양한 선교회의 활동으로 19세기 말에는 하나인 교단으로서 세계 성공회의 정체성과 일치를 고민해야 할 만큼 급속하고도 다양하게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