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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의 신학 – [기독공보] 세계교회 이야기(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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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의 신학 – [기독공보] 세계교회 이야기(4회)

주낙현 신부 (성공회 서울 주교좌 성당 사제)

미국의 교부학자 로완 그리어는 성공회 신학을 교부 니싸의 성 그레고리의 신학에 빗대어 이렇게 표현했다. “다른 교부들과 마찬가지로 그레고리 성인은 어떤 교리의 체계를 만들어내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그에게 진리란 헤아리기 힘든 것이었으며, 이 세상은 그것을 충분히 담아낼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성인은 진리로 향해가는 길들을 마련하고, 하나의 진리에서 드러나는 여러 현상을 서술하고자 했다. 그 총체적인 진리는 우리 손에 잡힐 수 없는 그 무엇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성공회의 신학에는 다른 교단과는 달리 표준적인 교리서나 기준이 되는 개인 신학자의 영향이 적은 편이다. 예를 들어, 천주교는 바티칸의 교리서, 장로교는 장 칼뱅의 신학, 루터교는 마르틴 루터의 신학의 영향이 여전히 크고 특정한 신학 문서에 기대는 일이 많다. 서방 교회가 천주교와 개신교의 여러 교회로 분열하여 논쟁할 때, 16세기 성공회 신학자 리차드 후커는 이렇게 지적한 적이 있다. “이 시대에 골칫거리로 남아있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즉 로마 교회는 절대로 오류를 범할 수 없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제네바 교회는 절대 오류를 범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성공회는 오히려 종교개혁 때부터 성공회 자신도 이런 두 교회와 더불어 오류가 있을 가능성을 인정하면서 공동체 안에서 나누는 좀 더 폭넓은 대화의 신학을 강조했다.

다시 말해, 성공회는 자기 교회의 신학을 ‘앵글리칸-이즘’(Anglican-ism)으로 표현하듯이, 특정한 상황과 그 ‘사람들’ 전체의 신앙 경험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통일된 신학의 체계나 문서보다는 그리스도교의 역사와 신학의 전통과 대화하면서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하느님 경험을 이해하고 풀이하는 방법과 태도에 더 무게를 둔다.

성공회에서 하느님 신앙의 경험을 이해하는 신학의 방법과 태도를 세우는 권위 있는 세 가지 기준은 성서, 전통, 이성이다. 성서는 하느님의 구원 사건과 그 진리를 충분히 드러낸다는 점에서 근간이 되는 권위이다. 그러나 성서에 미처 담겨있지 않은 사안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역사 속에서 성인들과 신학자들이 경험하고 해명한 유산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전통이다. 성서와 전통에 대한 해석도 필요한데, 이것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인 사고의 능력, 즉 이성을 통해서 지금 살아가는 현실을 분석하고 이해하며 이뤄진다. 이 세 가지 권위 기준을 통해 인간의 하느님 경험을 풀이하고 해명하는 작업을 성공회는 신학이라고 이해한다.

한편, 성공회는 법적이고 사변적인 언어로 이뤄진 신학의 유산을 받아들이면서도, 좀 더 은유적이며 시적인 언어를 신학의 언어로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뿌리 깊은 전통이 있다. 존 던, 조오지 허버트와 같은 17세기 성직자 시인 뿐만 아니라, T. S. 엘리엇, W.H. 오든, R. S. 토마스 같은 20세기 현대 성공회 시인들은 신학의 언어를 다양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데 이바지했다. 이러한 성공회 신학은 철학의 언어가 아닌 예배의 언어(공동기도서)와 행동(전례)을 통하여 신학을 몸과 행동으로 드러내려 했고, 이에 따라 독특한 영성 전통을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