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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자료실, 5월 6일(화) / 라틴 문 앞의 성 요한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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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6일(화)

    

라틴 문 앞의 성 요한사도

    

예수님의 종도요, 전도자요, 신학자였던 성 요한은 본래 갈릴리 어부였다. 아버지는 세베대, 어머니는 살로메였는데 특히 살로메는 재정적으로 예수님을 도운 신실한 초기 기독교 신자였다(막1:20, 15:40, 41, 16:1) 성 요한은 그의 형제 야고보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사로잡힌바 되어 고기 잡는 그물을 깁던 현장에서 그물을 버려두고 그날로 주님의 제자들이 되었다.(막1:19-20)

    

공관복음서에 의하면, 요한은 열렬한 유대인 기독교인이었다. 예수님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규제하였고 (막9:38),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당장 불로 멸망시켜 버렸으면 좋겠다고 제언을 했다(눅9:54). 어느 누구보다도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던 요한은 주님의 변화산상에서의 사건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었으며, 마지막 만찬에서 주님의 가슴에 기대어 “저도 주님의 고난의 잔을 함께 마실 수 있습니다”라고 장담을 하기도 한 제자였다. 모든 제자들이 도망간 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곁에 끝까지 남아 있으면서 주님의 어머니를 자기에게 맡기시던 마지막 유언을 들었던 사도도 요한이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의 애절한 기도를 들은 바 있는 세 제자 중의 하나였던 그는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그의 무덤으로 달려가 무덤이 비어 있음을 확인하였었고, 디베랴바다에서 다른 제자들과 낚시질을 하다가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곳에 찾아오신 새벽에 제일 먼저 주님을 알아본 사람도 그였다.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요한은 다른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다가(행1:13) 부활의 사실을 증거하는데 활약하였고(행3:12-26, 4:13, 19-22), 사마리아의 신자들을 돌보기 위하여 베드로와 함께 동행한 일이 있었다(행8:14, 25). 바우로가 두 번째 예루살렘을 방문하였을 때 요한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었다(갈2:9, 행11;30). 이와같이 성 요한은 주후 44년까지는 유대계 그리스도교에 속하여 있었는데 그 후의 일들은 알려져 있지 않다.

    

성 요한은 도미시안 황제 박해시에 체포되어 로마로 끌려가 끓는 기름 가마에 던져졌는데도 아무 해를 입지 않았으므로 죽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를 일컬어 ‘라틴 문 앞의 요한’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 기적이 일어났던 처형장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 후 그는 밧모섬으로 가서 여생을 보낸 듯하다.

    

요한복음, 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 요한1,2,3서는 그가 직접 기록하였든 간접적으로 기록되었든 성 요한의 감화 속에서 기록된 것들이다. 성 예로니모는 그의 기록에서 “요한은 말년에 너무 연로하여 설교를 길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누구를 만나든 ”서로 사랑하시오. 이것이 주께서 주신 계명이요, 이 계명을 지키면 그것으로 충분하오“ 라고 설교했다라고 전해진다.

    

성 요한의 상징은 독수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