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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자료실(4월 21일, 안셀름 / 켄터베리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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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셀름 (켄터베리대주교, 교회의 박사 1033-1109년)

    

안셀름은 1033년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아오스타에서 태어났다. 그는 17세부터 59세까지 년 노르망디 벡(Bec)에 있는 베네딕트 수도원에  머물렀다. 수도원에 들어온 지 3년이 되었을 때 안셀름은 부수도원장으로 임명되었고, 1078년 대수도원장이 되어 1093년 때까지 대수도원장직을 봉직했다. 영국 캔터베리 대주교직을 수행하던 그의 스승 랑프랑이 죽자 안셀름은 그의 스승을 이어 캔터베리 대주교가 되었다. 그가 수도원장직과 주교직을 동시에 수행하던 시대는 교회가 국가로부터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과 긴장이 감돌고 있었다.  

    

캔터베리 대주교가 된 안셀름은 영국 왕 윌리엄 루퍼스, 그의 아들 헨리 1세와 왕권과 교회권을 둘러싼 논쟁을 하게 된다. 안셀름은 이때부터 정치적 분쟁들에 휘말리며 심적인 고통을 겪게 되는데 무엇보다 그는 성직자들을 직접 임명하고 교황과의 연락을 제한해 온 왕의 간섭에 강력하게 반발하였다. 그는 클뤼니 수도원의 개혁 정신을 따라 교회는 왕권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오직 하느님 계명의 지배만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왕권과의 긴장, 세속화된 성직자들을 개혁하기 위한 노력 등에 온 힘을 기울였던 그는 이로 인해 영국 주교들로부터 외면을 받는 등 곤경에 처하면서 결국 영국 성직 서임권 논쟁 여파로 망명길에 올랐다. 두 번이나 왕권으로부터 추방을 당하였던 안셀름은 1107년 영국 왕과 교황이 웨스터민스터 의회에서 협상을 벌인 자리에서 영국 왕에게 충성 서약은 하지만 왕으로부터 서임은 받지 않는다는데 합의했다. 정.교의 갈등 해결로 평안을 되찾은 안셀름은 이후 교회의 독립과 자유수호에 계속 힘쓰는 한편 성직자들의 생활을 수도원 생활에 기초한「수도적 삶」으로 안내하려고 애를 썼다. 만년에는 중병에 걸려 사망하기 전 한달 동안 아무런 음식도 먹을 수 없었던 그는 1109년 4월 21일 성주간 수요일 선종했다.

    

안셀름은 주교로서 교회에 미친 영향도 크지만 그가 교회에 미친 더욱 중요한 영향은 신학자로서의 역할이었다. 그는 벡(Bec)수도원에 있으면서 ‘독백'(monologion)과 ‘교훈'(proslogion, 신 존재증명), 4편의 철학적 대화집 그리고 신자들을 일깨우기 위해 400여 통에 달하는 편지 외에도 자신의 명상을 기도와 시 등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그의 저술은 수도승다운 도덕적 훈계와 영적 성숙, 독서와 명상에 관한 것이다. 프로슬로기온은 ‘상대방에게 하는 말’이란 뜻이고 모노로기온은 ‘스스로에게 하는 말‘ 이란 뜻이다.

    

후대에 사람들로부터 ‘스콜라티시즘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받은 안셀름은 스콜라 철학의 선구자로서 하느님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존재론적 신 증명’의 대표자로 알려져 있다. 존재론적 증명 방법은 체험으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선험적으로, 즉 직관과 이성으로 하느님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프로스로기온에서 말하고 있다. 

    

나는 하느님을 “어떤 것보다 더 큰 분, 생각될 수 없는 분”으로 생각한다. 어리석은 자가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자기 마음속으로 말했을지라도 “어떤 것보다 더 큰 것은 생각될 수 없는 것”이라는 의식을 넘어서는 개념으로서의 하느님 이해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 않고는 그가 하느님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고로 하느님은 마음(지성) 밖에도 존재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떤 것보다 더 큰 분이며, 생각될 수 없는 분”이라는 것이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생각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크기” 때문에 그 자체의 고유성으로 존재해야만 한다. 하느님은 지성뿐만 아니라 실재로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을 검증하기 위해 세상의 물질에 의존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안셀름이 프로스로기온에서 말하는 신 존재증명의 방법이다. 어떤 사람들은 안셀름의 신 존재증명은 조직적인 신학체계라기 보다는 하나의 영적경험에 대한 고백내지 기도라고 보기도 한다. 왜냐하면 안셀름의 신 존재증명은 “나로 당신 찾는 법을 가르쳐주소서. 그리고 내가 당신을 찾을 때 당신을 나에게 드러내주소서. 왜냐하면 당신이 나를 가르치지 않으면 당신을 찾을 수도 없고, 당신 자신이 나에게 드러내 주시지 않으면 당신을 만날 도리도 없습니다…. 나로 하여금 사랑 속에서 당신을 찾게 하시고, 당신을 찾을 때 당신을 사랑하도록 하소서….. 나는 믿기 위해서 이해를 추구하지 않고 알기 위해서 믿습니다.” 라는 안셀름 기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안셀름은 “만족이론”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왜 하느님은 인간이 되셨나?”란 저서 속에서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속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안셀름은 ‘인간은 하느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계약관계 아래 있었지만 인간이 범죄함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더렵혔다. 우리는 하느님과 더렵혀진 관계를 회복해야만 한다. 하느님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형벌을 받던지 손해배상을 해야만 한다. 그러나 인간은 배상 할 능력이 없으므로 하느님은 독생자를 보내셔서 죄 없으신 분으로 하여금 수난을 받도록 하시고, 그 수난을 통해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 우리를 하느님과 화해시키셨다. 이 사랑은 성례전을 통해 죄인들에게 전해진다, 그러므로 성례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손해배상을 하게 된 것이다“ 라고 말했다. 이것은 우리가 매주 성례전에 참여하는 중요성을 안셀름이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안셀름은 뛰어난 영성가였고 철학계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또 사목자로서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포용하기 위해 애썼다. 

    

안셀름의 <교훈>에서   

    

“마음으로 믿게 하시고”    

“오시오! 작은 친구여! 한 동안 당신의 일들에서 도망하시오, 그리고 숨으시오!

    

당신의 복잡하고 혼란한 생각들에서 잠간 휴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무거운 짐들을 벗어버리고 수고로운 추구들을 멀리 떨쳐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느님과 잠간의 시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분 안에서 쉼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마음의 내적 방으로 들어오십시오. 하느님 외에는 그 어떤 것에 미련을 두지 마시고 버리시기 바랍니다. 하느님을 찾는데 필요한 모든 것만 간직하십시오. 당신의 방문을 걸어 잠그고 그분을 찾으십시오. 이렇게 말하십시오. 오, 나의 마음이여! 오, 나의 모든 마음이여! 이제 당신의 하느님께 말씀을 올립니다. 나의 얼굴은 당신을 찾아 헤맸습니다. 당신의 얼굴을 찾아, 오, 주여! 당신을 …

    

당신의 빛을 멀리서부터, 깊은 곳에서라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저에게 당신을 찾도록 가르쳐주시고 제가 찾을 때 당신을 저에게 나타내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가르쳐주지 않으시면 당신을 찾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나타내 보이지 않으시면 당신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당신을 찾기에 심히 갈망합니다. 사랑 안에서 당신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주여! 당신의 형상으로 저를 창조하셨음을 깨닫게 하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리나이다. 그리하여 당신을 마음에 새기게 하시고, 당신을 알게 하시고, 그리고 당신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그 형상으로 사악한 모든 것을 불태우시고 버리게 하소서. 잘못을 행하고 있는 것을 연기로 감추셔서 저를 새롭게 하여주옵소서.

    

주여! 당신의 고지에 이르려고 노력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을 이해하기에는 저는 너무나도 무지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마음으로 믿게 하시고 사랑하게 하시는 그 진리를 이해하게 하옵소서! 당신을 믿기 위해 이해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이해하기 위해 저는 믿습니다. 제가 믿기 전에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제가 믿기 때문입니다.

    

주여! 믿음을 이해하도록 하시는 당신께서 저에게 그 믿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옵소서. 우리가 믿는 당신을 이해하도록. 당신은 우리가 믿는 분이십니다. 당신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하신 분보다 훨씬 더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어리석은 자는 마음에 이르기를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고 말합니다(시편13:1). 그런 어리석은 자라도 제가 말하는 존재에 관해 듣게 되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하신 분보다 훨씬 위대하신 분, 그가 듣거나 이해하는 것이 자신의 이해 가운데 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그런 존재가 있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진실합니까? 생각할 수 없는 존재를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가능한 일입니다.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하신 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만일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하신 분보다 더 위대하신 분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하신 분이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조화될 수 없는 모순입니다.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하신 분보다 훨씬 더 위대하신 분이 계시다는 것이 너무나도 진실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위대하신 분이 바로 당신이십니다. 오! 주여!

    

당신이 존재하심은 진리입니다. 오! 주여! 나의 하느님! 당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없는 분이 아니십니다. 당신보다 더 위대하신 분을 저의 마음으로 생각할 수 있다면 그 피조물은 창조주보다 위에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어불성설입니다.

    

오, 하느님! 당신을 알기를 심히 원합니다. 당신을 사랑하기 원합니다. 그리하여 당신 안에서 즐거워하기 원합니다. 만일 제가 이생에서 이런 즐거움을 구할 수 없다면, 그 기쁨이 나에게 충만할 때까지 매일매일 저는 전진해 나가도록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