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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자료실(5월 25일, 성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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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5일(부활6주일)

    

베다(사제, 쟈로우의 수사, 학자, 역사가, 735)

    

성 베다는 670(673)년경 영국 쟈로우에서 태어났다. 그가 7살이 되었을 때 그의 부모는 그를 수도원에서 교육시키기 위해 위어마우스(wearmouth)로 이사를 했다. 이후 성 베다는 위어마우스의 성 베드로 수도원과 쟈로우의 성 바오로 수도원에서 수도하였다. 그는 성 베네딕도 비스코프에게 교육을 받았고, 19세에 부제서품을 받고 30세에 사제가 되었다. 성 베다는 평생동안 린디스판과 요크지방 이외의 다른 지역은 여행을 해본 일이 없이 수도원에서 철저한 수도원 생활을 하면서 가르치고 저술하는 일에 생애를 바쳤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나의 온 정력을 기울여 성서의 뜻을 탐구하는 일과 기도생활, 그리고 연구와 가르치는 일, 저작하는 일에 모두 바쳤다”고 하였다.

    

성 베다의 저술 활동은 음악과 운율학, 자연 과학, 성서 주석 등 다양한 분야에 광범위하게  펼쳐져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저작은 ‘영국교회사’로 597~731년까지의 영국의 기독교 역사를 거의 완벽하게 정리해 놓은 것이다.

    

성 베다의 저작들은 대부분 라틴어로 되어 있었다. 성서의 라틴어 불가타(Vulgata) 번역을 한 권으로 묶어 재편집한 베다의 역본은 종교 개혁 때까지 서방 교회 세계를 통틀어서 쓰인 공식 역본이었고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1966년까지 쓰였다. 성서의 일부를 고대 영어(앵글로색슨어)로 번역하였지만 전해지지 않는다. 또한 성 베다는 그의 시대에 서방교회에서 가장 훌륭한 학자였으며 교부의 전승을 이어받아 성서주석을 쓰기도 하였다. 성 베다가 임종의 자리에서 끝마친 마지막 저작은 요한복음서의 고대 영어 번역본과 고대 영어로 쓴 최후의 심판에 관한 시라고 한다. 오늘날의 학자들에게 〈베다의 임종시〉로 알려진 이 5행시는 베다의 제자인 린디스판의 커스버트(Cuthbert of Lindisfarne)가 쓴 편지에 전해지는데 그 내용만으로는 베다의 자작시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라틴어로 쓴 편지에 고대 영어로 시를 인용한 점과 베다가 같은 주제로 라틴어 시를 지었던 점, 또 베다가 “우리의 시에 대한 학식을 갖추었다”라는 커스버트의 주장에 비추어 베다의 자작시일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외에도 성 베다는 위어 마우스와 쟈로우의 대수도원장에 대한 역사를 썼으며, 커스버스의 일대기를 기록한 전기집도 저술하였으며, 시와 운문을 쓰기도 하였다.

    

이와같이 성 베다는 투병생활 중에도 저작을 중단하지 않고 마지막 숨을 거둘 때 까지 저술활동을 계속하였다. 그 결과 성 베다는 ‘훌륭한 수사, 독실한 기독교인, 헌신적인 학자, 순수하고 쾌활한 매너를 지닌 사람’의 특징을 가진 수사로 기억되고 있다. 성 베다는 죽은지 한 세기가 지난 후 ‘존사(Venerable)’ 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성 보니파스는 그를 ‘성신께서 친히 교회속에 켜신 불빛’ 이라고 하였다. 단테도 그의 작품  『신곡』에서 〈천국〉에 있는 이들의 이름을 말할 때 성 베다의 이름을 쓰고 있다. 성 베다는 잉글랜드인으로는 유일한 교회학자(Doctor Ecclesiae)이다. 참고로 대한성공회 대학로교회의 수호성인은 성 베다이다

    

    

    

‘성 베다의 임종’에 대한 커버스트의 편지에서

“나는 그리스도를 보고 싶습니다”

    

예수 승천 대축일 전 화요일이 되었을 때 베다 형제의 병세는 악화되어 숨결이 매우 거칠었고 발은 약간 부어 올랐다. 그러나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온종일 우리에게 학습을 지도하고 즐거운 표정으로 자신이 저술하려는 것을 받아쓰게 하였다. 다른 여러 가지 중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학습 과제를 지금 속히 배우십시오. 내가 얼마나 오래 살아있을지는, 잠시 후 나를 지으신 분께서 데리고 가실는지 모르니까요.”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가 자신의 죽음이 언제 올지 잘 알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래서 수면도 취하지 않고 감사드리면서 그날 밤을 지새웠다.

    

수요일 아침이 밝아 오자 우리가 이미 시작했던 것을 지체하지 말고 끝마치라고 지시했다. 우리는 아홉시까지 그 일을 했다. 아홉시가 되자 그날 늘 하던 대로 유해 행렬을 했다. 우리 중 하나가 그의 곁에 남아 있었는데, 그는 베다 형제께 “스승님, 스승께서 받아쓰게 하신 그 책은 아직도 한 장이 더 남아 있습니다. 저희 질문에 계속 대답하시는 것은 무리가 되시겠지요?”라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펜을 뾰족하게 깎고 나서 빨리 쓰시오.” 그 형제는 성인이 지시하는 대로 했다.

    

오후 세시가 되자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옷장 속에는 몇 가지 선물, 후추가루, 수건 그리고 향이 있습니다. 빨리 달려가서 우리 수도원의 사제들을 모시고 오십시오.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선물은 비록 적은 것이지만 그분들께 나누어 주고 싶습니다.” 사제들이 왔을 때 모두 모아 놓고 말씀하면서 각 개인에게 자기를 위하여 미사와 기도를 바쳐 달라고 권고하며 간청했다. 그들은 기꺼이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제 그들의 얼굴을 이 세상에서 얼마 더 보지 못할 것같이 생각된다고 말했을 때 형제들은 모두 큰 슬픔에 잠겨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다음 말을 하는 것을 들었을 때 모두 기뻐했다. “나를 지으신 분의 마음에 드신다면, 지금 이 시간이 내가 존재하기 전 무로부터 나를 지어내신 분께로 돌아갈 때입니다. 나는 오래 살아왔고 자비로우신 심판관께서는 내 일생을 당신 섭리로써 지켜 주셨습니다. 이제 떠날 시간이 다가왔으니 내 몸이 해체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를 갈망합니다. 내 영혼은 영광 속에 나의 임금이신 그리스도를 보고 싶어합니다.” 이렇게 감화를 주는 다른 여러 가지 말씀을 하면서 저녁이 될 때까지 이날을 기쁘게 보냈다.

    

내가 이미 말했던 윌버트라는 젊은 형제가 다시 “스승님, 아직도 쓰지 못한 문장이 하나 남아 있습니다.”라고 말하자, 그는 “그 문장을 빨리 쓰십시오.”라고 대답했다. 잠시 후 젊은 형제가 “이제 다 되었습니다.”라고 말하자 스승은 “그 말이 맞습니다. 다 되었습니다. 이제 다 끝났습니다. 손으로 내 머리를 받쳐 주시오. 내 아버지께 기도할 수 있도록 내가 즐겨 기도했던 성당을 향해 기대어 앉기를 정말 원합니다.” 그리고 나서 방바닥에 누워 영광송을 외우기 시작하여 “성령께”를 외울 때는 숨을 거두었다. 그가 항상 하느님을 찬미하는 데 그토록 노력한 것을 생각하면 자기가 그리워하던 천국의 기쁨으로 틀림없이 옮겨 갔다고 우리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