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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자료실(6월 16일 / 리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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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치체스터의 주교, 증거자, 1253년)

    

리처드는 1197년 위치(Wych, 오늘날은 드로이트위치로 알려져 있는)에서 태어났다. 그가 어렸을때는 소작농을 하고 있는 아버지를 도와 가족의 행복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성장해서는 옥스퍼드와 파리에서 인문학공부를 하였고, 이태리의 볼로냐에서 교회법을 공부하였다.

1235년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옥스퍼드 대학의 총장이 되었으나 켄터베리의 대주교 에드먼드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었다. 1240년 캔터베리 대주교 에드먼드가 프랑스로 추방당하자 리차드는 그의 스승 에드먼드와 함께 유배지로 떠났다. 에드먼드가 프랑스에서 죽자 리차드는 오를레앙(Orleans)의 도미니코회 수도원에 들어가 은거하며 신학을 연구하였고 여기서 사제서품을 받았다. 

    

서품을 받은 후, 교황의 명으로 영국에 온 리차드는 1244년 체체스터의 주교가 되었다. 주교로서의 그의 행적은 다른 사람들의 모범이 되었다. 교구를 구석구석 걸어 돌아다니며 교구의 발전을 꾀하였다. 그리고 성직자와 사람들 특히 성직자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을 방문하고 돌보아 주었다. 그는 보상을 받지 않으면서 적절한 위엄을 가지고 보살피는 것이 성사라고 강조하였다. 이와같이 그는 몸소 행함으로 교구의 개혁을 이루어내고자 하였으며 교회 내의 친족 등용과 성직매매를 적극 반대하고 금지시켰다.

    

그는 십자군 운동을 지지하기 위한 캠페인에 동원되었다가 도버에서 병에 결려 1253년 4월3일에 죽었다. 그의 시신은 1276년 체체스터로 옮겨져 오늘날까지 남아있다.

    

    

<성리차드의 삶 중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사제이며 설교자는 영광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났다. 로마의 정권으로 부터 주어진 영광이 아니라 사도들이 외쳤던 “하느님이여,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영광이외에는 영광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하소서”라는 그리스도의 상처 안에 있는 영광이었다.

    

선교여행을 하는 동안에 그는 매우 쇠약해졌다. 사람들이 그에게 먹을 것을 귄했다. 그리고그에게 말했다. “주교님, 저녁을 어찌 그리 적게 드십니까? 더 드시지요? 그러자 그가 답했다. “많이 먹었습니다. 한 접시면 저녁으로 족합니다”. ‘당신은 필립이 예수께 말한 이 말씀을 아십니까? “주님,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그것으로 족 합니다”’  라고 덧붙였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그의 온 마음을 하느님에게 돌렸고 그리고 주님의 현존의 달콤함을 이미 맛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십자가에 못박히는 예수의 성상을 껴안았다. 왜냐하면 성상에 주어진 명예는 그것이 상징하는 것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성 바실에 의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리처드는 마치 그의 구세주가 지금 가해지는 고통으로 죽어가고 있는 것을 보는 것처럼 그 상처에 경건하게 입을 맞추고 그리고 부드럽게 포옹하면서 외쳤다. ‘주 예수 그리스도여, 당신이 나에게 주신 모든 은혜에 대하여, 당신이 나를 위해 견디신 모욕과 고통에 대하여 감사합니다.’

    

그때 그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이 비루한 몸을 땅에 엎드립니다’ 하고 말하고 시편의 말씀을 반복하였다. ‘주님, 당신의 손 안에 내 영혼을 맡기나이다’ 그리고 소리와 감정을 바꾸어 영광스러운 성모마리아에게  말했다. ‘은총의 어머니시며, 자비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여

우리를 적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고 죽음의 시간에 우리를 위해 빌어주소서‘ 리처드는 수사들과 사제들과 집사들과 경건한 평신도들에게 둘러싸여 거룩한 기도의 말과 경건한 기도의 한숨사이에, 그의 영혼을 창조자에게 내어주고, 곧 하늘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합류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은 그의 나이 56세였으며 주교생활 9년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