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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자료실(7월 22일, 성 막달라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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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22일(화)

성 막달라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는 복음서에 총 13차례 등장한다. 막달라(또는 마그달)는 지명이다. 즉, 막달라 출신의 마리아를 말한다. 막달라는 히브리어로 믹달(Migdal)이라고 부른다. ‘탑’이라는 뜻이다. 아마 마을 언덕 위에 탑이 있었던 모양이다. 갈릴리 호수 서쪽 연안에 위치하고 있는 ‘막달라’는 염색업과 직물업이 발달한 도시로서 특히 다른 지역들보다 도덕적으로 부패한 곳이었다.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 4복음서가 분명히 기록하고 있는 것은 자신에게서 일곱 귀신를 쫓아내 준 예수님께 감사하여 그를 믿고 고향을 떠나 동행하였는데(누가복음 8:2)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었을 때 그 곁에 있었던 사람들 중의 하나이며, 예수님이 무덤에 묻히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부활하실 때 시체에 바를 향료를 가지고 무덤으로 찾아갔던 세 여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는 것뿐이다.

    

예수님은 또한 부활한 뒤 막달라 마리아에게 처음으로 모습을 나타내었다. 그녀는 예수의 부활 소식을 사도들에게 알리기 위해 보내졌다. 이 때문에 그녀는 초기 그리스도인들로 부터 ‘사도들 중의 사도’로 불렸다. 예수의 부활 사건 이후로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전해지지 않고 있다.

    

교회의 전통에 따르면 막달라 마리아는 로마에서 바울이 처음 재판을 받아 추방당하기까지 2년 동안을 그를 기다리며 머물렀다고 한다. 그후 막달라 마리아는 로마에서 에베소로 가서 사도 요한을 도와 힘써 일하였다고 한다. 사도 요한은 에베소에서 막달라 마리아의 도움을 받아 요한복음의 1장에서부터 20장까지를 완성했다고 한다. 막달라 마리아는 에베소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그곳에 매장되었다고 한다.

이외에 막달라 마리아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전설들이 있어서 소개하기로 한다.

    

‘자코로 다 바라라제’의 <황금전설>의 문헌에 따르면 막달라 마리아는 매춘부 출신으로 한동안 쾌락에 탐닉하다가 예수님을 만나 자신의 죄를 뉘우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막달라 마리아는 창녀를 의미하는 ‘죄의 여자(the Sinner)’라는 별명이 주어지고 르네상스이후 막달라 마리아의 회개를 주제로 하는 회화나 조각이 많이 제작된다. 이는 누가복음에 나오는 창녀를 근거로 한 것이었다.(누가복음 8:1~6) 이후 1400년 가까이 막달라 마리아는 매춘부로 낙인찍혔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이 이미지는 로마 가톨릭에 의해 조작되었다고 지적되었으며, 1988년에 와서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그녀를 ‘사도들의 사도’라고 다시 격상시켰다.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도 있다. 예수가 승천한지 14년 후에(왜 14년 후인지는 모르겠음) 유태인들은 막달라 마리아, 오빠 라사로와 언니 마르다, 72사도중의 한 사람으로서 마리아와 마르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어준 막시민(Maximin: 막시맹), 나서부터 소경되었으나 예수가 눈을 뜨게 해준 세돈(Sedon: 시도니우스), 마리아와 마르다의 몸종인 마르셀라(Marcella)를 돛도 없는 배에 태워 저 먼 바다로 추방하였다. 유태인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복음을 전파하고 증거 하는 이들을 증오하여 죽음으로 내 몬 것이다. 일설에는 아리마대의 요셉도 이들과 함께 추방당하였다고 한다. 막달라 마리아 일행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안전하게 프랑스의 프로방스 지방의 어떤 항구에 도착하였다. 지금의 마르세이유이다. 

    

이 지방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우상숭배자들이었다. 사람들은 막달라 마리아 일행에게 잠자리와 음식을 주지 않고 배척하였다. 막달라 마리아는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과 부활을 증거 하기로 결심했다. 막달라 마리아는 우상 신전의 문 앞에 서서 사람들에게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하라고 외쳤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했으나 막달라 마리아가 너무나 웅변을 잘하여 모두 귀를 기울이게 되었으며 지금까지 예수가 행한 기적들, 예를 들어 라사로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일, 나면서부터 소경이었던 세돈의 눈을 뜨게 해준 일 등을 얘기하자 사람들은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했다. 

    

마르세이유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극도로 금식생활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간혹 천사들이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다. 막달라 마리아는 동굴에서 외로운 생활을 했지만 하늘의 환상을 봄으로서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막달라 마리아가 고행으로 나날을 보내던 말년에는 천사들이 매일같이 하늘에서 내려와 막달라 마리아를 옹위하여 하늘로 올라갔다가 식사를 제공하고 다시 내려왔다고 한다. 이 세상에 있으면 이 세상의 헛된 소리 때문에 정신을 빼앗길 것 같으므로 하늘로 가서 천상의 소리를 듣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천상은 참회한 죄인들을 위한 영광과 기쁨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어떤 날 막달라 마리아가 고행을 하고 있는 광야의 산중 동굴에서 역시 고행을 하고 있던 어떤 은둔자가 무슨 생각을 했던지 자기 동굴에서 외출하여 생각보다 멀리 걷고 있었는데 막달라 마리아가 천사들에게 옹위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놀라운 환상을 보았다고 한다. 천사들은 하늘의 음성으로 노래를 부르고 나팔을 불었다고 한다. 이토록 놀라운 광경을 목도한 은둔자는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마르세이유로 내려가서 사람들에게 그가 본 모든 광경을 증거 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막달라 마리아는 마르세이유에도 가지 않았고 에베소에도 가지 않았으며 예루살렘에서 성모를 모시고 지내다가 세상을 떠났다는 주장도 있다. 899년 로마제국의 레오 6세 황제는 예루살렘에 있는 막달라 마리아의 유해라고 믿어지는 성골(聖骨)들을 콘스탄티노플로 옮겼다. 막달라 마리아를 성인으로 인정하여 숭배하기 시작한 것은 10세기 이후부터였다. 한편, 1050년 프랑스의 베즐레이(Vezelay) 수도원의 수도승들은 그 수도원에 있는 성골들이 막달라 마리아의 것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 성골들이 9세기경 성지 예루살렘에서 바딜로(Badilo)라는 성자가 직접 가져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가하면 얼마 후에는 베즐레이의 다른 어떤 수도승이 프로방스의 성막시민 교회에 갔었는데 납골당에 있는 어떤 빈 석관에 막달라 마리아가 베다니(Bethany)에서 예수의 발에 향유를 바르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 수도승은 그것이 막달라 마리아의 석관이 분명하다고 주장하고 베즐레이 수도원에 있는 성골들은 바로 이곳에서 옮겨온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