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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자료실(7월 6일, 토머스 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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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6일(일)

    

토마스 모어 (학자, 종교개혁 순교자, 1535년)

    

토마스 모어는 1478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매우 강직한 성격으로 지방민의 신망이 두터운 판사였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읜 토마스는 엄격한 아버지 슬하에서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그는 그 당시 재산의 중직에 있던 캔터베리의 대주교 요한 머턴 추기경의 슬하에서 심부름을 하게 되었다. 솔직하고 담백한 그의 성품은 곧 추기경의 총애를 받게 되었고, 그의 도움으로 옥스퍼드 대학에서 고대 문학을 전공하였다. 토마스는 유년 시절부터 마음속에 굳게 간직한 신앙과 열렬한 기도 생활의 힘으로 다윗 성왕의 시편에서 마음에 맞는 구절을 마음대로 선택하여 스스로 기도문을 만들어 조석으로 열심히 기도했다. 또한 라틴어에 능숙하여 어려운 문구를 자유자재로 구사(驅使)하며 시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시인 루싱아의 소설 중의 회화 편을 손쉽게 영어로 번역할 수 있었다. 그러나 토마스의 입신 출세을 바라던 그의 아버지에 의해 그는 런던으로 돌아와 법학을 연구하게 되었다. 그의 공명정대한 사건처리 솜씨는 그 지방민들의 깊은 신망을 받게 되었고  불과 25세의 나이에 민의원에 당선되는 영광을 차지했다. 

    

그 뒤 4년 동안 가끔 가까운 수도원을 찾아 수사들과 같이 고해의 생활을 하는 것을 배웠고 그것으로써 일신상의 덕을 닦았다. 그동안 그는 수사나 혹 사제가 되려는 생각으로 이를 지도 신부에게 이야기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끝내 승낙을 받지 못하고 다만 성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리고 2년간 프랑스어를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에 유학했다. 거기서 돌아온 그는 다시 변호

사업을 시작하고 경건한 요안나 골드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아 평화로운 가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요안나는 남매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토마스는 자녀의 양육을 위해 과부인 알리스와 재혼을 하였다. 토마스는 가장으로서 모든 면에 있어 모범이 되어 매일 미사에 참여하였고, 식사 때에도 성서 구절을 낭독하고 처자와 더불어 성서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다른 이들에 대한 신뢰와 애정은 말할 것도 없었고 손님을 대접할 때도 얼마나 정성껏 친절을 베풀었던지, 사방에서 찾아든 손님들로 집안이 들끓었으며, 그 중에는 외국손님도 많이 끼어있었다고 한다.

    

토마스의 명성이 날로 높아가 마침내 대심원장이라는 중직에 오르게 되었다.

국왕 헨리 8세는 그를 신임하여 그에게 프랑스와의 화친 문제등 기타 여러가지 중책을 맡겼으며, 그때마다 그는 성공리에 책임을 완수 했다. 그러자 국왕은 그를 더욱 더 믿게 되어 1529년 10월에 그를 재상직에 올려 주었다. 본래 겸허한 토마스는 그 같은 고위 영직을 탐하지 않았으나 국왕의 명이므로 그를 받들어 그 선정에 적극 조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헨리 8세가 안나 볼레인과 결혼하기 위해 본처인 황후와 이혼하고자 토마스에게 동의를 청했으나 토마스는 자신의 신앙양심과 “주님께서 맺어주신 바를 사람이 능히 이를 풀지 못하느니라” 는 사도신조에 따라 이를 반대하였다. 이것이 국왕의 비위에 거슬리게 되어 그는 즉시 감옥에 구금되었고, 모든 재산을 몰수당했다. 감옥에 있는 동안 옥중생활을 편지로 쓰거나 저술을 하였다. “신앙을 위한 죽음”, “예수그리스도의 수난”등이 재감중에 저술한 서적이다. 얼마 후 그는 펜과 잉크까지도 압수당했다. 이렇게 되자, 그는 기도를 드리는 것 외에는 위로를 삼을 길이 없게 되었고, 가끔 종이 조각에다 숯 부스러기로 편지를 써서 처자에게 소식을 전하곤 했다.

    

재감 1년간, 정적들은 수차에 걸쳐 그의 배교와 번의 (飜意)를 꾀했다. 심지어는 그의 사랑하는 딸 마르가리타를 보내 “피셔 주교님도 국왕의 이혼을 승낙하셨는데 아버지도 마음을 돌리세요”라고 말하게 했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께 죄를 지을 수는 없다”하며 끝까지 자기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다음은 사랑하는 아내 알리스가 와서 애걸했다. 남편이 없는 가정이란 말할 수 없는 형편이라는 등 여러 가지 사정을 들어 눈물로써 토마스에게 호소했다. 그러나 토마스는 “알리스, 내가 양심을 어겨서 국왕의 비행에 동의하고 형벌을 면한다 합시다. 우리가 앞으로 얼마동안 더 재미있는 가정을 이루며 살 수 있겠소?” “한 20년쯤은….””뭐 20년쯤? 그래 그것 더 살려고 죽어서 영원한 지옥 불을 당해도 좋단 말이오? 그건 너무나 미련한 짓일 뿐이오” 하는 대답뿐이었다. 

    

.1535년 7월1일 토마스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는 최후 판결을 받는 날 눈물겨운 심정으로 고해 영성체하고 미사 참여를 마친 후 처형되었다. 그가 단두대에 섰을 때, 그의 죽음을 애석히 여기는 무수한 군중들에게 전래대로 고별인사를 하려고 했으나, 인심을 소란케 한다는 이유로 금지 당하고 말았다. 토마스는 “나는 가톨릭 신앙을 위해 죽는다”는 간단한 한 마디와 십자가를 손에 꼭 쥐고 “”주여! 저를 불쌍히 여기시어 자비를 베푸소서”를 외쳤다. 그는 그날 참수형을 당했다. 

    

    

성 토마스 모어가 옥중에서 자기 딸 마르가리따에게 보낸 편지에서

    

하느님께 내 모든 희망을 걸고 내 전부를 맡기겠다.

    

내 사랑하는 마르가리따야, 내 지난날의 죄를 볼 때 나는 하느님께로부터 마땅히 버림받아

    

야 할 몸임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분의 무한한 사랑에다 내 신뢰를 걸고 또 마음을

    

다하여 희망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까지 하느님의 거룩한 은총은 나를 굳세게 해주시어 나로 하여금 양심을 거슬러 서약하

    

는 것보다 기쁜 마음으로 재물과 토지와 생명마저 잃을 수 있게 해주셨다.

    

하느님께서는 또 국왕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그에게 너그러운 마음을 주시어 아직은 나에게

    

서 자유만을 빼앗도록 하셨다.

    

이 자유를 나에게서 거두실 때 하느님께서는 이제까지 내 신앙을 북돋아 주시고자

    

그토록 허다하게 베풀어 주신 당신의 커다한 영적 은혜들 가운데서

    

내가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이 가장 큰 은혜라고 생각토록 해주셨다.

    

그래서 나는 하느님의 은총을 불신할 수 없다.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면 국왕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나를 대하게 하시어 그가 나에게 아무 해를 입히지 않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내가 나의 죄 때문에 응당히 받아야 할 것 이상으로 고통 받게 하기를

    

원하신다면,

    

그분의 은총이 나로 하여금 인내의 마음으로 그리고 어쩌면 기쁜 마음으로까지

    

그것을 받아들일 힘을 주실 것이리라고 확신한다.

    

내가 고통을 잘 참아 낸다면 이것을 내 인내심의 공로를 훨씬 초월하는 주님의 쓰라린

    

수난의 공로와 결합시키시어,

    

내가 연옥에서 당할 고통을 줄여 주시고 천상에서 받을 상급을 늘려 주실 것이다.

    

마르가리따야, 내 비록 허약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느끼고 있지만,

    

절대로 하느님을 불신하지 않겠다.

    

나를 쓰러뜨릴 정도의 두려움을 내가 느끼어 되어도

    

성 베드로에게 생긴 일을 기억하겠다.

    

돌풍이 일자 약한 믿음 때문에 물속으로 빠져 들기 시작한 그가 그리스도를 부르면서

    

도움을 간구한 것처럼 나도 그를 본받아 그리스도께 간구하겠다.

    

그때 주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손을 뻗치시어 폭풍에 휩싸인 이 바다에서 나를

    

붙들어 올리시어 물에 빠져 들지 않게 하시리라.

    

그런데 내가 베드로를 답습하여 나도 그처럼 유혹에 넘어져 주님을 모른다고 맹세하고 또

    

맹세하게 된다면,

    

(하느님의 자비는 내가 그런 상태에 빠지지 않게 해주시고 혹시라도 빠진다면

    

유익보다는 해가 되게 해주기를)

    

그때에도 베드로를 인자하게 굽어보신 것처럼 나도 연민에 찬 시선으로 굽어보시고

    

다시 일으키시어 내 양심의 진실을 다시금 고백하게 하시고

    

이 세상에서 내 잘못에 대한 수치와 마음의 괴로움을 느끼도록 해주실 것입니다.

    

여하튼 나는 이것만은 분명히 알고 있다.

    

마르가리따야,

    

하느님께서는 내 잘못이 아니라면

결코 버림받는 자가 되게 하는 것을 허락지 않으실 것이다.

    

나는 하느님께 내 희망을 걸고 내 전부를 그분께 맡기겠다.

    

그러나 내 잘못 때문에 버림받은 자 된다 해도 이것은 하느님의 정의와 찬미와 영광이 될

    

것이다.

    

마르가리따야, 하느님이 너그러우신 자비는 이 불쌍한 영혼을 구하시고 내가

    

그 자비를 찬미할 수 있게 해주시리라 굳게 믿으며 이를 조금도 의심치 않는다.

    

내 사랑하는 딸아, 이 세상에서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걱정하지 말아라.

    

하느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그 어떠한 일도 생길 수 없다.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겉보기에 그것이 나쁜 것으로 보일지 몰라도,

    

참으로 가장 좋은 것이 되리라고 나는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