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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자료(5월 2일, 성 아타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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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일(금)

    

아타나시오(알렉산드리아 주교, 증거자, 373년)

    

아타나시오 성인은 295년 무렵 이집트의 항구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그리스도교의 교육을 받았으며 또한 학교 교육도 충분히 받았다. 313년 알렉산더가 아킬라스의 대를 이어 주교가 된 후 2년이 지나 성 아타나시오는 성 안토니오와 더불어 사막지대에들어가 한동안 피정생활을 하면서 광야에 있는 은수자들을 찾아가 유익한 말씀도 듣고 그들의 삶의 모습을 배우기도 하면서 신앙을 쌓았다, 그는 319년에 부제서품을 받았다. 

    

이 당시 알렉산드리아에는 아리우스(256-336)라는 사제가 있었는데, 그는 그리스도가 영원한 하느님이시며, 성부와 동등하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그리스도는 성부의 피조물이며, 성부하느님만이 유일하신 신이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이런 주장은 가이사랴와 니코메데아 지방에서 환영을 받았고 아시아의 여러 교회가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지지하였다. 이에 당시의 교회들간에 그리스도론을 둘러싸고 쟁론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때 아리우스주의자들과 대결하여 교회를 지키는데 큰 공헌을 한 사람이 성 아타나시오였다. 그는 29세에 부제로서 니케아회의(325년)에 참석하여, 회의에 참석한 주교, 사제, 부제들을 비롯한 교회의 대표자 3백여명에게 그의 기독론을 펼침으로써 당시 큰 골칫거리였던 아리우스주의자들로부터 교회를 수호하기 위한 니케아신조를 탄생시키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런 일이 있은지 5개월 후 알렉산더주교가 별세하자 아타나시오는 그의 뒤를 이어 새 교구장 주교로 추대되었다.

    

주교가 된 그는 교구의 신도들에게는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아리우스파들에게는 계속적인  공격을 받았다. 이러한 반기는 지중해 제국 전역으로 무섭게 파급되었고, 아리우스를 지원하던 멜레티우스(Meletius) 이단도 덩달아 기세를 올렸다. 이런 세력 뒤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지원이 있었다. 그는 335년 독일 남서부 트리어(Trier)로 첫 번째 유배되었다. 337년 5월 22일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사망하고, 콘스탄티누스 2세가 서로마 제국 황제로 즉위하였다. 새 황제는 성 아타나시우스에게 알렉산드리아로 돌아가도록 허락한 뒤 다음 해에 교회 회의를 개최하여 그의 직위를 복권시켰다. 그러나 성 아타나시우스는 반대파에 의해 2년 후 재차 추방되었다. 이때 그는 로마(Roma)로 가서 7년 동안 머물러야 했다.

    

346년부터 356년까지가 그의 생애에 있어서는 가장 평화로운 황금의 시간이었고 또 그의 주요 저서들도 이때에 나왔다. 그러나 아리우스주의자인 황제 콘스탄티우스가 그를 추방키로 하고 군인들을 보냈다. 체포 위험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성 아타나시우스는 이집트의 사막 은수자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갔으며, 이곳에서 콘스탄티우스 황제가 361년에 죽기까지 자기 교구민들을 지도하였다. 그 이후에도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두 차례나 유배를 더 당하였고, 366년부터 죽을 때까지는 평화롭게 자기 교회를 다스리고 사목할 수 있었다. 그는 지난날의 모든 갈등과 폭력으로 인하여 피폐된 교회들을 재건하고, 아픈 상처들을 치료하는데 주력하면서, 저술과 강론을 통하여 위대한 사도직을 수행하였다.

    

성 아타니시오는 역사적인 가치를 지닌 저서들을 많이 남겼는데, “안토니우스의 생애”(Vita Antonii)를 비롯하여 성서 주석, 시편 주해 등을 남겼다. 성 아타나시우스는 대 바실리우스(Basilius, 1월 2일),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Joannes Chrisostomus, 9월 13일) 그리고 나지안주스(Nazianzus)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1월 2일)와 함께 그리스의 교회학자이자, ‘교회의 4대 교부 중 한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다. 유배 중에 저술한 그의 저서들은 다음과 같다. “콘스탄티우스 황제에게 보낸 해명”(Apologia ad Imperatorem Constantium), “수도자들에게 보낸 아리우스주의의 역사”(Historia Arianorum ad Monachos) 등이 있다. 성 아타나시우스가 ‘아타나시우스 신경’(Symbolum Athanasianum)을 직접 기록하지는 않았다.

    

    

성 아타나시오 주교의 강론에서

(Oratio de incarnatio Verbi, 8-9: PG 25,110-111)

    

말씀께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비육체적이고 부패할 수 없으며 비물질적인 하느님의 말씀께서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렇다고 그 전에 멀리 떨어져 계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주의 어느 부분에도 그분이 계시지 않은 곳이 없었고 그분은 성부와 함께 계시면서 만물을 채우고 계셨습니다.

말씀께서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에 오셨고 우리에게 환히 나타나셨습니다.

우리 인간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시고 또 우리의 부패를 보시고는 마음이 움직이시어

죽음이 우리를 지배하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실 수 없었습니다.

그분은 창조된 것이 멸망하지 않고 성부께서 사람을 지어내실 때 행하신 그 업적이 헛된 것이 되지 않도록 우리의 육신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육신을 친히 취하셨습니다.

말씀께서는 단순히 육체 안에 머무르거나 또는 육신의 모양으로만 발현하시는 것으로 그치기를 원치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발현만 하시기를 원하셨더라면 인간이 지닌 육신보다 더 고귀한 육신을 취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의 실제 육신을 취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께서는 동정녀 몸에서 육신의 성전을 지어내시어 그 안에서 거처하시고 그 육신을 자신을 드러내는 도구로 삼으셨습니다.

이처럼 그분은 우리에게서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취하셨고, 모든 사람이 죽음의 부패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그 육신을 모든 이를 위해 죽음에 내맡기시어 지극한 사랑으로 그것을 성부께 바치셨습니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한편으로는 당신 안에서 죽으려 하는 모든 사람들의 생활에서 그들을 거슬러 공포된 죽음의 법을 폐기시키셨습니다.

죽음은 주님의 육신을 너무도 강력히 공격했기에 그 힘을 잃어, 같은 육신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를 입힐 기력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부패의 법에 빠진 사람들에게 불멸을 되돌려 주시고 그들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돌이키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이 취하신 육신과 부활의 은혜로 말미암아 흡사 밀짚을 불에 태우듯 그들 안에서 죽음을 소멸시켰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친히 죽을 수 있는 육신을 취하시고, 그 육신은 모든 이들 위에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에 참여함으로써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서 요구하는 것을 충족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육신 안에 거하신 말씀으로 말미암아 부패하지 않으시고 부활의 은총으로 인해 모든 이에게서 부패를 없애 버리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이 취하신 이 육신을 아무 흠도 없는 희생 제물로 죽음에 내맡기심으로써 그 봉헌의 힘으로 같은 육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죽음을 쫓아 버리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만물들 위에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께서는 모든 이들을 위해 당신 육신의 성전을 바치심으로써 죽음에게 빚진 것을 갚으셨습니다.

우리 육신과 동일한 육신을 취하심으로 우리와 일치하신 부패할 수 없는 하느님의 말씀께서는 부활의 약속으로써 우리 모두에게 불멸을 입을 권리를 주시고 또 실제로 입히셨습니다.

우리와 같은 육신을 가지고 사람들 가운데 거처하신 하느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죽음의 부패마저 이제는 사람들에게 아무 힘도 미치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