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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축일 자료(디트리히 본회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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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9일(수)

    

디트리히 본회퍼(독일학자, 순교자, 1945년)

    

디트리히 본회퍼는 1906년 2월4일 독일 브레슬라우에서 태어났다. 본회퍼의 아버지는 그 당시 유명한 정신의학 및 신경의학 교수였으며 베를린 대학에서 강의를 하였다. 본회퍼의 부계는 학자, 법률가 집안이었고 모계는 신학자 목사 집안이었다. 이와같이 본회퍼는 어머니의 기독교적 가치와 아버지의 휴머니즘적인 가치에 입각하여 양육되었다.

    

본회퍼는 용기 있는 지성인, 행동하는 지성인, 신앙을 위해 생명까지도 바쳤던 순교자로 알려져 있다. 비록 39년이란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그가 후대에 남긴 영향은 대단하다. 그는 행동하는 신앙인으로서 순교자적인 삶을 살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삶을 통해 얻은 통찰력을 짧은 글로 남겼는데, 그의 깊은 신학적 통찰력은 20세기 신학에 영성신학에서부터 민중신학에 이르기 까지 폭넓은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본회퍼는 1923년 17살에 튜빙겐 대학에서 칼하임, 아돌프 슬라터, 그로스에게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였고, 1924년 베를린 대학으로 옮겨 칼 홀, 라인홀드 제베르크와 같은 역사신학자들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본회퍼는 21살에 박사학위 논문 “성도의 교제(Sanctorum Commuunio)”를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본회퍼는 교회는 “세상 안에서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장소”라고 보고 “교회를 공동체로 존재하는 그리스도”로 표현하였다. 본회퍼는 그리스도는 이 세계에 실재로서 현존하는 존재로 그리스도는 나를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 현재하며 이 역사 속에 말씀, 성례전, 공동체로서 존재한다고 말했다. 본회퍼는 성도의 교제로서의 교회가 개인의 신앙의 원천이며 동시에 목표임을 제시하고 있다.

1933년 1월30일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하자마자 유대인들을 박해했다. 히틀러가 취임하고 이틀 후 본회퍼는 ‘젊은 세대에 있어서 지도자 개념의 변천’이라는 주제로 라디오 방송을 할 때 “스스로 신성화하는 지도자와 직위는 신을 모독하는 것”이라는 연설을 하기로 하였는데 방송이 중단되는 바람에 하지 못하고 이때부터 나치정권의 감시대상자가 되었다. 이것이 본회퍼가 반나치 운동을 한 출발점이다. 1933년 4월 7일 공포된 ‘아리아인 조항’이 공표되었다. ‘아리아인 조항’이란 유대인을 박해하기 위해 유대인은 모든 공직에서 배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독일 교회에서도 이를 받아들였다. 이에 본회퍼는 교회가 박해받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적극적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을 촉구하면서 고백교회에 참여했다. 그는 1935년 고백교회의 부름을 받고 독일로 돌아와 핑켄발테에 있는 고백교회의 한 신학교를 맡게 되었다. 그는 여기에서 영국의 수도원에서 배운 수도원적인 영성을 가르쳤는데 하느님의 은혜에 응답하면서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가는 성화의 과정을 훈련하였다. 그는 이곳에서의 생활과 강의를 기초로 『나를 따르라』 『신도의 공동생활』 『성서의 기도서 시편해석』 등을 저술했다. 그는 이 책들에서 산상수훈과 루터의 사상을 재해석하면서 진정한 은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순종의 삶, 즉 성화의 삶으로 부르며, 이러한 성화의 삶은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고 성도의 교제를 향해 나아감을 강조했다.

    

본회퍼는 당시의 독일 교회의 ‘믿음으로 의로워진다’는 종교개혁의 표어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했다. 본회퍼는 은혜를 값싼 은혜와 값비싼 은혜로 구분했는데 독일 교회는 값싼 은혜의 교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값싼 은혜란 순종 없는 신앙, 십자가 없는 은혜, 뒤따름(제자직)이 없는 은혜를 말하는 것이고, 값비싼 은혜는 예수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결합을 뜻하며 제자들의 순종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제자의 순종이란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를 뒤따르는 것이다. 수난과 버림받음을 의미하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그리스도를 뒤 따르도록 부름 받는 일은  은혜다. 제자로 불림을 받았다는 것은 철저하게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을 뜻하며 이 고난은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히틀러 치하에서 많은 학자들이 박해를 피하여 자유를 찾아 독일을 떠나 미국등지로 갔다. 본회퍼도 라인홀드 니버의 초정으로 1939년 6월 4일 독일을 떠나 12일에 미국에 도착했으나 “동포와 함께 이 시대의 시련을 나누지 않는다면 전쟁 후 독일에서 기독교인의 삶의 재건에 참여할 권리가 없을 것”이라는 편지를 라인홀드 니버에게 쓰고 7월 27일 독일로 되돌아 왔다. 그가 독일로 돌아온 지 두 달만인 1939년 9월1일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본회퍼는 이미 1936년 이후로 대학에서 가르치는 것과 공적으로 말하거나 출판하는 일이 금지되었고 그가 책임을 맡고 있던 신학교는 1940년 나찌정권에 의해 강제로 폐교가 되었다. 본회퍼는 이때부터 히틀러를 제거하기 위한 저항운동에 가담하게 되었다. 본회퍼는 히틀러 정권에 저항하는 소용돌이 속에서도 신앙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 숙고하는 윤리적 단편들을 저술하였다. 이 단편들은 본회퍼 사후에 그의 친구이며 제자였던 베트게에 의해서 『윤리』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그는 이 책에서 기독교인의 사회참여는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의 현실에 동참하는 성례전적인 것임을 역설하고 있다.

    

1943년 3월 두 차례에 걸친 히틀러 암살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자 대대적인 관련자 수사 및 검거 돌풍이 몰아쳤고 본회퍼도 같은해 4월 5일 체포되어 베를린 감옥에 수감되었다. 수감되어 있는 동안에 친구 베게트와 서신을 주고받으며 자신의 신학사상을 심화시켰다. 이 편지들은 그의 사후에 『옥중서신』이라는 제목으로 베게트에 의해 출판되었다. 본회퍼에게는 늘 제기되는 문제가 있었다. 평화주의자인 목사요, 신학자인 그가 어떻게 사람을 죽이는 히틀러의 암살계획에 가담할 수 있는가?였다. 이 질문에 대해 본회퍼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 만일 어떤 미친 운전수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인도위로 차를 몰아 질주한다면 목사인 나는 희생자들의 장례나 치러주고 가족들을 위로하는 일만 하는 것이 나의 임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 자동차에 올라서서 그 미친 운전사로부터 핸들을 빼앗아야 할 것입니다” 본회퍼는 그 당시 미친 운전사인 히틀러를 제거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는 18개월 동안 베를린 있는 테겔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1945년 4월3일 히틀러의 특별 명령에 의해  플로센부르크에 있는 강제수용소로 이송되어 4월 9일 이른 아침 교수형에 처해졌다.

    

본회퍼는 판결문이 낭독되자 무릎을 꿇고 하느님께 진지한 자세로 기도하고 처형대로 올라갔다. 그는 짧게 “이것이 나의 마지막입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삶의 시작입니다” 기도하고 용감하게 교수대를 붙잡고 얼마 후 숨을 거두었다. 3주일 후 히틀러는 자살하였고 1945년 5월 8일 독일은 패배하고 연합군이 승리하였다. 본회퍼의 삶은 이렇게 끝났지만 그의 말처럼 그의 삶은 오늘도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그리스도를 증언하며 신앙양심에 따라 자유와 사랑과 평화와 정의를 위하여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작과 격려와 교훈으로 남아 있다.

    

나는 누구인가? (Who am I?. 1944년 7월9일)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가끔 나에게 말하기를

감방에서 나오는 나의 모습이

어찌 침착하고 명랑, 확고한지

마치 자기 성에서 나오는 영주 같다는데.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가끔 나에게 말하기를

간수와 말하는 나의 모습이

어찌 자유롭고 친근하고 명확한지

마치 내가 그들의 상전 같다는데.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가끔 나에게 말하기를

불행한 하루를 지내는 나의 모습이

어찌 평온하게 웃으며 당당한지

마치 승리만을 아는 투사 같다는데.

    

남들이 말하는 내가 참인가?

아니면 내가 아는 내가 참인가?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고 그립고 약한 나

목을 졸린 사람처럼 살고 싶어 몸부림치는 나

색과 꽃과 새들의 소리에 주리고

좋은 말 따뜻한 말동무에 목말라하고

방종과 사소한 모욕에도 떨며 참지 못하고

석방의 날을 안타깝게 기다리다 지친 나

친구의 신변을 염려하다 지쳤고

이제는 기도에도 생각과 일에도 지쳐 공허하게 된 나

이별에도 지친- 이것이 나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 둘 중에 나는 누구인가?

오늘은 이 사람이고 내일은 저 사람인가?

아님 둘 다 나인가?

    

남 앞에선 허세, 자신 앞에선 한없이 불쌍하고 약한 것이 나인가?

이미 결정된 승리 앞에서

무질서에 떠는 패잔병 같은 것이 나일까?

    

나는 누구인가?

이 적막한 물음은 나를 끊임없이 희롱한다.

    

내가 누구이든

나를 아는 이는 오직 당신뿐

오! 하느님

나는 당신의 것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