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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례]이것은 나의 살과 피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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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나의 살과 피 (下)

박태식 신부(성공회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원장)

4. 갈라진 교회

가톨릭에서는 오랫동안 성체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고수해왔다. 예수님이 최후만찬에서 “이는 내 몸”, “이는 내 피”라고 했을 때, 이 말이 참인 이상 빵과 포도주가 실제로 예수님의 몸과 피가 되는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사제가 성찬 중에 성체성사 제정을 선언할  때 비록 외적인 모양(accidentia)은 그대로지만 빵과 포도주의 실체(substantia)는 변하게 된다. 이를 두고 11세기 이래 가톨릭교회에서는 ‘실체변화'(transsubstantiatio)로 불러왔고 1215년 제4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미사 중의 축성이 참된 본질적 변화를 일으킨다고 선포하였다.

종교개혁자인 마르틴 루터는 성찬 중에 예수님이 현존한다는 점에는 동의를 표했으나 그 효력에 있어서는 이견을 갖고 있었다. 루터는 고전 11,23-26을 거론하면서 성찬을 제정한 예수님의 말씀 이후에도 ‘빵’을 여전히 ‘빵’으로 부른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즉, 예수님이 빵(아르토스)을 떼며 “이는 여러분을 위해 주는 내 몸입니다. 나의 기억으로 이를 행하시오.”(24절)라고 한 뒤에도 용어상의 변화가 없다는 지적이다. “사실 그분이 오실 때까지, 여러분이 이 빵(아르토스)을 먹고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알리는 것입니다.”(26절) 따라서 성찬 ‘안에서’, 성찬과 ‘더불어’, 그 모습 ‘아래서’ 그리스도의 몸이 신앙인에게 주어진다는 설명이 주어졌고(Solida Declaratio VII) 이를 ‘실체공존’(consubstantiatio)이라 불렀다. 성체성사 제정에 대해 가톨릭교회는 제정과 더불어 빵과 포도주가 지속적으로 예수님의 현존을 유지한다고 선언한 반면 루터교회에서는 신자들이 성체를 받는 순간만 현존한다는 주장을 편 것이다.

같은 종교개혁자라 하더라도 츠빙글리 등 또 다른 이들은 성체성사에서 예수님의 현존이 사실로 주어진 게 아니라 성령의 역사를 통해 기억의 형태로 예수님의 현존이 개개인에게 전달된다고 보았다. 실제로 예수님은 빵을 떼시고 “이는 여러분을 위해 주는 내 몸입니다. 나의 기억으로 이를 행하시오”라 했고(24절), 잔을 (드시고) 말씀하기를 “이 잔은 피로 맺는 새 계약입니다. 여러분은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시오.”라 했으니(25절) 아예 일리가 없는 주장도 아니다. 하지만 이쯤 되면 가톨릭의 가르침과 상당한 거리가 생기는 것이다.[3]

트렌트 공의회(1551)에서 종교개혁자들을 단죄한 이후, 개신교에서는 가톨릭의 ‘실체변화’ 가르침을 두고 집단적 ‘우상숭배’로 치부했고, 가톨릭에서는 개신교의 입장을 두고 개인적 ‘신심과시’라며 비난해왔다.

5. 리마문서와 가톨릭의 응답

개신교의 통합기구인 세계 기독교 협의회 산하 ‘신앙과 직제 위원회’는 1982년 남미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총회에서 ‘세례, 성찬 및 사역’에 대한 합의문(BEM)[4]을 공식문서로 채택한 바 있다. 종교개혁이 있는지 약 460년 만에 개신교 공통의 합의가 이루어졌으니 가히 역사적인 문헌이라 할 수 있다.[5] 이 합의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예수님이 제정한 성찬의 성격을 설명한 후(I), 성찬의 의미(II)를 밝히는데 그 중에서도 B의 13항과 부연설명이 중요하다. ‘실체변화’를 다룬 항목이기 때문이다.

항목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는 성찬에 유일무이한 방식으로 현존하시며 그 참된 진리는 성찬을 행할 때마다 매번 실현된다. 그래서 “교회는 성찬 때마다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살아계신 분으로서, 능동적으로 현존하신다고 고백한다. 성찬 때의 그리스도의 실제 현존이 사람들의 신앙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식별하려면 신앙이 요구된다는 사실에 동의한다.”[6] 이해가 불충분한 독자를 위해 다시 한 번 정확하게 설명하면, 어떤 교단(가톨릭 등)에서는 성찬의 빵과 포도주가 실제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된다고 믿지만, 다른 교단(장로교 등)에서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빵과 포도주의 표징에 그처럼 밀착시키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리마문서에 대한 답변에서 가톨릭은 개신교의 합의문에 담긴 신학적 성찰들을 높이 사면서 교회일치운동에 있어 중요한 결실이자 공헌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실체변화’에 대한 입장(II.B.13)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가톨릭 교리에 있어 성찬 요소들의 변화는 신앙의 문제이므로 이 본질적인 변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가능한 새로운 신학적 설명을 기대할 뿐이다. ‘실체변화’라는 말의 내용은 모호함 없이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 가톨릭인들에게 이것은 신앙의 중심 신비이고 따라서 모호한 표현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7]

6. 해석학적 반성

엄격히 말해서, 예수님의 최후만찬은 제자들과 나눈 이별의 만찬이었다. 최후만찬을 통해 비록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 더없이 끈끈한 공동체적 정서가 이루어졌다 할지라도 이를 기억하고 그 의미를 보다 풍부하게 만든 공로는 역시 일세기 교회로 돌려야 한다.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사실을 굳게 믿었던 일세기 교회는 살아생전 마지막 만찬에서 예수님이 한 행동과 말씀을 범상치 않은 눈과 귀로 받아들였다.

“여러분을 위해”, “나의 기억으로”(24절), “새 계약”,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시오.”(25), “그분이 오실 때까지”, “여러분이 이 빵을 먹고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알리는 것입니다.”(26절) 등등은 일세기 교회의 뛰어난 해석과 확고한 신앙을 보여주는 구절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성찬에서 역사의 예수님이 베풀었던 최후만찬을 다시금 반복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현존을 체험하고, 장차 다시 오실 재림의 예수님을 기대했다. 즉, 성찬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아우르는 회상제이자 현존제이자 희망제였던 것이다.[8]

교회의 사정과 달리 로마제국에서는 성찬을 두고 혹 식인종들이 벌이는 축제가 아닌지 의심했고, 묘하게도 이 의심은 후대에 빵과 포도주 속에 예수님이 살과 피로 현존한다는 ‘실체변화’의 차원과 연결된다. 그리고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와 가톨릭의 갈등이 깊어진 것도 기억해 두어야 한다.

20세기 후반에 개신교 진영에서 작성된 ‘리마문서’에서는 의도적으로 ‘실체변화’라는 용어를 피했다. 그저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살아계신 분으로서, 능동적으로 현존하신다.”라는 다분히 우회적인 표현을 사용했는데, 가능한 한 각 교단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한 것 같다. 하지만 앞뒤 문맥을 살펴보면 가톨릭의 입장까지 널리 수용하려는 의지가 드러난다. 그에 대해 가톨릭에서는 분명한 용어선택을 요구했고, 자신들의 신앙이 유일무이한 진리를 담고 있는 까닭에 결코 다양성이라는 용어 속으로 함몰될 수 없다는 점을 확실히 했다. 따라서 ‘실체변화’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진 개신교인들은 가톨릭 미사에서 성체를 받아 모실 수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가톨릭과 개신교의 공식 입장 사이에 극적인 변화가 없는 한 합동 예배란 언감생심 불가능한 일로 남을 것이다.

성체에 대한 교리 논쟁을 보면 예수님의 최후만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절로 든다. 고리타분한 냄새가 폴폴 풍겨 난다는 뜻이다. 과연 이런 식의 사고방식이 과학적 접근과 이성적 판단이 주를 이루는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설득력을 제공할 수 있을까? 만일 요즘 세상에서 ‘실체변화’를 안하무인격으로 고집한다면 당연히 과학적 증명이라는 난관에 봉착하고 말 것이다. 즉, 모든 지식은 과학적·실증적인 관점을 거쳐야 완성되니까(오귀스트 꽁트) ‘실체변화’도 과학의 입장에선 자칫 허구의 개념으로 전락하고 마는 셈이다. 아무리 과학언어가 아니라 신앙언어라고 우겨도 말이다.[9]

물론 교리 논쟁은 공허하지만 정작 문제는 이런 사고가 교회 일치를 가로막는 데 있다. 필자는 종종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본다. 과연 예수님은 어떨까? 예배에 참여해 성체를 받아 모시러 나오는 사람들의 교파를 차별해 누구는 빵을 주고 누구는 열외를 시킬까?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복음서에 보면 추종자들이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셔 식사를 대접했다는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예수님은 바리사이의 초대를 받아들여 식사를 나눈 적도 있었지만(누가 11,37-54;14,1.12), 세리의 초대에도 선선히 응했다(마가 2,15-17). 어디 그뿐인가. 로마에 빌붙어 유대인을 수탈하는 악명 높은 세리장 자케우스의 초대마저 예수는 받아들였다(누가 19,1-10).

어느 바리사이는 예수님이 세리의 집에 초대받아 죄인들과 한 자리에 앉아 음식을 나누는 것을 보고 “저 사람이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음식을 나누고 있으니 어찌된 일이냐?”라고 불만을 표시했다(마가 2,16). 예수는 비록 재야의 인물이기는 했어도 엄연한 야훼 종교의 지도자들 중 하나였으니 의인임이 분명했다. 그런데 죄인들과 한 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눈 것은 대단히 파격적인 행동이었다. 그런 처사들은 바리사이의 불평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예수의 입장은 확고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가 2,17)

예수님의 식탁은 누구나 앉을 수 있는 평등의 밥상이었다. 하지만 이 평등 개념은 여러 계층들 사이의 중간 어디쯤 형성된 게 아니라 가장 낮은 이들에게 눈높이를 맞춘 평등이었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사실은 함께 식사를 나눈 이들에게 찾아온 변화였다.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하나님 나라의 감동을 전해 받았고 그렇게 찾아온 감동은 각각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냈다. 예수님의 최후만찬에서 이어진 일세기 교회의 성찬 제정이 그 확실한 증거다.

오늘날 우리에게 성체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또한 성체의 의미를 추구하는데 과학적 증명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과학적 증명에 온전히 기대다보면 인간의 사유는 빈곤해질 수도 있는 노릇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당사자의 삶에 변화가 없으면 성체는 전적으로 무의미해지고 말리라는 점이다.

성체란 언제나 성체를 받아 모신 다음이 중요하다. 진정한 성찬은 그래야만 한다.

  1. ^이 부분은 『하나인 믿음』, 서강대신학연구소/한국신학연구소편, 분도 1979, 553-556쪽의 설명을 기반으로 했음.
  2. ^영어로 Baptism, Eucharist and Ministry인 까닭에 약칭 BEM 문서라고도 한다.
  3. ^리마회의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문서가 나왔는데, 번역으로는, 박근원 편저, ‘리마 성찬 예식서’, 한국기독교협의회, 1987년, 32-40쪽이 있다.
  4. ^‘리마문서 성찬’, 정양모역, 『종교신학연구 3집』, 서강대종교신학연구소 1990, 335-36쪽.
  5. ^‘세례, 성찬, 직제에 대한 가톨릭의 응답’, 정태현역,『종교신학연구 3집』, 서강대종교신학연구소 1990, 361-62쪽.
  6. ^『마르코복음서』, 정양모역주, 분도출판사 1981, 158-59쪽.
  7.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화란의 진취적 가톨릭 신학자들이 앞장서서 의미변화(transignificatio) 또는 목적변화(transfinalisatio)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빵은 여전히 빵으로, 포도주는 여전히 포도주로 남아있되, 성만찬의 포도주는 그 의미가 바뀌었고 그 목적도 바뀌었다는 뜻이다.”(유충희,『예수님의 최후만찬과 초대교희의 성만찬』, 우리신학연구소 1999, 198-99쪽) 성체성사 교리에 대한 가톨릭의 변화가 감지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