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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는 믿음으로 가는 길 (맥추감사주일, 최도미닉신부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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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14(연중15주, 맥추감사주일)/

승리하는 믿음으로 가는 길

 

 

저는 살아오면서 늘 기억해야할 단어가 하나 있는데 바로 “먼저”라는 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먼저를 아는 사람은 승리합니다. 성공합니다. 군왕이 국민을 먼저 생각하면 성군이 될 것이요, 의사가 환자를 먼저 생각하면 신의가 될 것이요, 선생님이 학생을 먼저 생각하면 위대한 스승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신자가 하느님을 먼저 생각하면 성도가 됩니다. 저는 오는 승리하는 믿음으로 가는 길이란 제목으로 맥추감사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순신은 백위종군해서 전라도로 내려갑니다. 그런데 어머니 부고를 들은 것입니다. 그러나 차마 다시 올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쑥대밭이 된 수군을 다시 일으켜 세우지 않는다면 이 전쟁에서 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위해 효를 포기한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순신의 선택이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언제나 무엇을 먼저 하여야할지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순서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순서에 따라서 어떤 것을 살기도 하고 어떤 것을 죽기도 합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에도 순서가 있습니다. 머리가 먼저 나와야 모두가 삽니다. 만약에 이 순서가 무시 된다면 산모도 아기도 모두 죽을 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먼저 와야 할 것이 있고, 나중에 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영적인 삶에도 우선순위라는 것이 있습니다. 먼저 와야 할 것이 있고, 나중 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선택에 따라서 죽기도 하고, 살기도합니다.

유대인이라면 반드시 지쳐야할 축제가 있습니다. 유월절, 추수절, 그리고 첫 열매를 모두 거두어들인 후 지키는 맥추절입니다. 주님은 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첫 열매를 바치라 했을까요? 첫 열매를 바치며 무엇을 기억하게 했을까요? 맏배의 신앙입니다. 맏배란 우선순위를 말합니다.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켰던 맥추감사는 삶의 우선순위를 가르치는 축제입니다.

신앙에 있어서 우선순위를 정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먼저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고, 먼저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고, 내 삶의 맏배를 떼어놓는 것은 하느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삶의 기초요, 신앙의 기본입니다.

주님은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라고 하십니다. 왜 다른 모든 것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구하라 했을까요? 공부도 해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고, 장가도 가야합니다. 그런데 먼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 먼저를 알아야 신앙을 지켜낼 수 있고, 마지막 날 승리의 월계관을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승리의 월계관을 쓸 수 있는 성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삭은 눈이 어두워지고 늙어서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장자인 에사오를 부릅니다. 그리고는 사냥을 해서 별미를 만들어 오라고 합니다. 그 별미를 먹고 나서 복을 빌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엿들었던 리브가는 야곱을 불러 뒤뜰에 가서 숫염소 두 마리를 끌고 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별미를 만들어 줄터이니 아버지에게 갖다 주고 축복을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염소로 만든 별미를 아버지께 드렸습니다. 아버지는 처음 가져온 이 음식을 먹고 야곱에게 복을 빌어 주었습니다. 곧 이어 에사오도 별미를 만들어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에사오는 눈물을 흘리며 복을 빌어달라고 애원하였지만 이삭은 아무런 축복도 빌어줄 수가 없었습니다.

왜 똑 같은 별미를 만들었는데 어떤 것을 복을 받았고, 어떤 것을 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 비밀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맏배, 곧 우선순위에 있습니다. 음식을 맛있게 했느냐? 좋은 음식을 만들어 왔느냐? 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맏배입니다. 리브가는 알았습니다. 맏배를 드린 사람만이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이 성전에 나와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권능과 그가 주시는 축복을 믿으며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축복을 받지만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하느님의 축복을 받으며, 어떤 사람이 그 신앙을 지켜갈 수 있을까요? 맏배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시간의 맏배, 물질의 맏배, 내 삶의 맏배를 드리십시오. 하느님은 맏배를 받으십니다. 그리고 그 맏배를 통해 당신의 축복을 내려주십니다. 놀랍도록, 넘치도록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은총을 베풀어 주신다고 바울로는 고백했습니다.

때문에 바울로는 로마서 12장 2절에서 믿음이란 맏배를 드리는 삶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그분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지를 분간하도록 하십시오.”

그렇습니다. 맏배란 우선순위였습니다. 믿음이란 우리 삶의 우선순위를 하느님께 향하도록 바꾸어 버립니다. 이 바뀜을 통해 비로소 축복의 통로가 열립니다. 이게 신앙입니다. 우선이 바꾸어 졌습니다. 나에게서 하느님께로, 내가 좋아하는 것에서 하느님께서 기뻐하는 것으로 그 순서가 바뀌어 졌습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명하시기를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첫 추수를 하게 되면 반드시 시켜야할 규정이 있는데 그것은 “첫 열매를 바치는 맥추절”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출애23:16)

사실 온 세상의 하느님의 것입니다. 예언서를 보면 “이 세상이 다 나의 것이 아니냐? 그런데 배가 고파 너희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하겠느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하느님께서 왜 맏배를 바치는 축제를 꼭 지키게 하셨을까요?

우선, 맏배는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게 합니다.

창세기를 보면 인간은 하느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사탄의 유혹을 빠져 선악과를 따먹게 됩니다. 이렇게 되어 죄가 인간에게 들어오게 되고,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셨습니다. 그대로 놔 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죄를 진 인간에게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십니다. 바로 예배입니다. 아담에게는 가인과 아벨,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두 아들들은 장성해서 농사도 짓고 가축도 길러서 각자가 하느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지만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창세기는 그 이유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11장 4절 말씀을 보면 아벨이 “믿음으로 카인의 것보다 더 나은 제물을 하느님께 바쳤다”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벨은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는데 카인은 믿음으로 드리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드렸다는 그 근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맏배에 있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되 맏배를 드렸느냐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가인은 “땅에서 난 곡식을 예물로 드렸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벨은 아니었습니다. 아벨은 “양떼 가운데 맏배의 기름기를 드렸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맏배의 기름기”, 하느님이 원하시는 예배는 첫 열매였습니다. 왜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첫 열매를 바치라고 했습니까? 땅에서 난 것뿐만이 아닙니다. 가축과 자식까지도 맏배는 하느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 다 하느님의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왜 유독 맏배만은 나에게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믿음을 지켜가도록 하시려는 것입니다. 맏배를 드리는 믿음이 아니고는 그 믿음을 지켜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통로입니다. 아무도 믿음이 아니고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믿음이 아니고는 하느님의 치유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병들어 아파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앉은뱅이고 고쳐주셨고, 문등병자도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하혈병을 앓던 여인도 고쳐 주셨습니다. 이때마다 주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네 믿음이 너를 고쳤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믿음으로부터 하느님의 능력이 옵니다. “네가 믿느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믿는 자에게는 이 산을 옮겨서 저 바다에 빠져라 해도 그대로 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믿음이 없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믿음이 있을 때 구원에 대한 확신도 생기고, 하느님의 치유도 일어나고, 그 능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 믿음을 더 성장시켜 갈 수 있을까요? 성경은 분명히 가르칩니다. 믿음은 첫 열매를 바치는 삶을 통해서만 충만해 진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첫 열매는 바치는 우리의 행위는 신앙을 지켜가는 근본이요, 성화시켜가는 힘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둘째, 첫 열매는 대속의 제물입니다.

출애굽을 할 때 하느님은 에집트의 맏배를 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이것은 맏배가 아니고는 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야말로 모든 사람 중에 장자가 되셨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맏배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맏배이신 그 아들을 십자가의 제물로 바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맏배가 아니고는 대속의 제물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죄에서 헤어나지 못할까요? 안 되는 줄 알면서, 그게 죄인 줄 알면서 떠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죄로부터 떠나야 하는 이 우선을 아는 자만이 회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속죄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셋째, 첫 열매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잠언 3장 9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네 소유를 바치고 땅에서 난 맏물을 드려 야훼를 공경하여라. 그러면 네 곳간이 가득 차고 네 술틀에서 햇 포도주가 넘쳐나리라.”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맏배는 축복의 근본입니다.

이삭에게는 에서와 야곱이란 쌍둥이 아들이 있습니다. 하루는 에서가 사냥을 하고 시장한 터에 야곱이 팥죽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에서는 야곱에게 그 것을 좀 달라고 하니 야곱은 자신에게 장자권을 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장자권이 무엇입니까? 맏배입니다. 에서는 이 장자권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 장자권을 팔고 팥죽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결말이 어떻게 났습니까? 축복을 누가 차지하게 되었습니까? 야곱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에사오는 울며불며 아버지에게 자신에게도 축복을 빌어달라고 해보았지만 이삭은 빌어 줄 축복이 하나도 없다고 냉정하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말합니다. 야곱이 어머니 리브가와 짜고 사기를 쳤다고, 아닙니다. 하느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짜고 한 것을 모르시고 축복을 주실 분이십니까? 아닙니다. 하느님은 분명하신 분이십니다. 장자권을 마음속에서 버린 에사오에게는 작은 축복도 허락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것은 야곱이 사기를 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장자권은 혈육으로 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적으로 난 것입니다. 혈육으로라면 분명히 에사오가 장자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원하시는 장자는 육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입니다.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와야 합니다.

육적으로, 형식적으로는 아직 에사오가 장자입니다. 이삭도 야곱도 그렇게 알았습니다. 야곱은 한 번도 자신이 형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육적인 장자권으로는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영적인 장자가 되어야 합니다. 생각과 마음과 행실로 장자가 되어야합니다. 야곱은 마음으로 장자가 되기를 원했고, 그리고 그 장자권을 얻기 위해 자신의 팥죽을 포기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장자만이 아버지의 상속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맏배를 드리는 축제를 반드시 지키라고 명하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맏배의 믿음만이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고, 부활의 영광을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상에 빠지지 않고 이 믿음을 지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맏배의 축제를 지키게 하신 것입니다.

맥추감사 축제, 열매를 주셨으니 감사하는 그런 축제가 아닙니다. 하박국의 말씀처럼 열매가 없어도 외양간에 소가 없어도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맥추감사는 맏배를 기억하는 축제입니다. 고생 끝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 거두어들인 첫 열매,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그런데 그것을 자신이 취하지 않고 하느님께 드렸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보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삶을 살아갈 때, 다시 말하면 내 삶의 맏배를 드릴 때, 비로소 하느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고, 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열매를 누릴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느님께 드려야할 예배, 맏배입니다. 맏배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요, 처음입니다. 야곱이 맏배를 드렸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맏배를 기꺼이 드릴 수 있는 성도의 삶을 살아갈 것을 결단하는 맥추감사절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아멘.

축문

우리가 드리는 맏배의 삶을 통해 더욱더 주님을 사랑하게 하시고,

주님의 은총 안에 머무는 삶을 살아가게 하시나이다.